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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106

명나라 대예의지쟁(大禮儀之爭)의 진상 글: 자작자애2(自作自愛2) 정덕제(正德堤)가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가 오기까지 35일간, 양정화(楊廷和)는 실제로 대명제국을 통치한다. 그는 즉시 이미 죽은 황제의 조정을 해체하고, 변방주둔군을 불러들여 태감들을 제압하고 나서, 경사의 부대는 그들 원래의 지휘관들에게 돌려주었다... 2013. 4. 13.
왕기재연(王氣在燕): 명나라의 수도가 북경으로 정해진 경위는? 글: 우좌(于左) 명성조 주체(영락제)가 등극한 후, 공신들에게 크게 상을 하사한다. 장신(張信)도 봉상(封償)을 받은 사람중 하나이다. 그는 융평후(隆平侯)에 봉해지고, 식록(食祿) 1천석을 받았다. 자손들은 융평백(隆平伯)을 세습할 수 있다. 장신이 중요한 순간에 한 선택은 자신에게 그.. 2013. 3. 13.
청류오국(淸流誤國) - 대예의(大禮儀) 글: 불요이분법(不要二分法) 한비자의 저작중 <난(難)>은 상당히 별다르다. "난"은 반박이다. 먼저 이미 정설도 되어 있는 역사이야기를 한 후에, 다시 반박하는 것이다. 즉, 먼저 과녁을 고정시킨 후 다시 무너뜨리는 것이다. 먼저 '대예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예의'는 소.. 2012. 8. 15.
명나라와 서역(西域)의 관계 작자: 미상 종객파 토번(吐蕃)과 중국은 오래된 적수이고, 교분이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다. 당왕조가 멸망한 후, 토번도 내란에 빠진다. 이때부터 쌍방간의 교류는 적어진다. 남송시기에, 징기스칸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토번은 부득이 복종하여, 원나라의 종주국지위를 인정하게 .. 2012. 2. 1.
마테오 리치 시대에 중국과 서방은 서로를 어떻게 보았는가? 글: 고수선(高壽仙) 오래전부터 중국과 서방은 서로 약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유럽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중국에 대하여 언급한 사람은 기원전4세기에 살았던 고대그리스인 크테시아스(Ktesias)이다. 그는 중국을 "세레스(Seres)"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사국(絲國)'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유럽을 가장 .. 2011. 1. 1.
임진왜란: 명, 청, 조선의 관계변화 글: 장개봉(張凱峰) 가정연간의 어느 날 밤. 명나라의 요동대원수 이성량(李成梁)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시종으로 하여금 발을 씻게 하고 있었다. 시종이 이성량이 발을 보니 발바닥에 점이 3개 있었다. 이성량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의 복과 관운은 모두 이 점 세 개 덕분이다." 그러자, 시종이 대꾸.. 2010. 12. 10.
명나라멸망후 숭정제의 자녀들은 어디로 갔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명나라 숭정17년(1644년), 이자성이 서안에서 대순정권을 건립한 후, 농민군을 이끌고 북경으로 진격했다. 같은해 삼월 십육일 북경을 포위하고, 맹공을 개시한다. 숭정17년 삼월 십구일, 숭정제는 대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느끼고, 주황후는 자결케 하고, 비, 빈, 공주를 직접 칼을 들.. 2010. 11. 29.
명나라는 지나친 언론자유로 멸망했는가? 글: 주가웅(朱家雄) 청나라는 100년이상에 걸치는 잔혹한 문자옥(文字獄)정책을 썼다. 명나라때 살았던 사람들이 누린 언론의 자유라는 행복은 청나라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상, 명나라 통치자들의 언론자유에 대한 포용력은 대단했다. 역대왕조와 비교하더라도 첫손에 꼽힐 정도.. 2010. 11. 22.
임인궁변(壬寅宮變): 십여명의 궁녀가 가정제를 죽이는데 성공못한 이유는? 글: 방지원(方志遠) 가정제(嘉靖帝)는 양정화(楊廷和)를 핍박하여 은퇴하게 하고, 좌순문(左順門)에서 청원하던 관리들을 엄벌에 처하고, 장총(張璁)과 같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발탁하고, 양신(楊愼)등 반대파들은 징벌에 처하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흥하고 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식으로 자.. 2010. 11. 18.
살이호(薩爾滸)전투: 명나라와 청나라의 운명을 가른 전투 글: 유계흥(劉繼興) 한 전투가 있다.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명나라에게는 쇠망의 조종을 울리고, 청나라에게는 굴기의 표지가 된다. 이는 청나라가 268년간이나 중국을 통치하는데 기반을 쌓은 전투였다. 후세의 사가들은 "명나라가 쇠망하고 후금이 흥기한 것은 모두 이 전투에서 비.. 2010.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