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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명나라 황족들은 왜 많이 요절했을까?

by 중은우시 2019. 1. 6.

작자: 미상


1627년 명나라 제15대항제 명희종 주유교가 붕어한다. 나이 겨우 22살이다. 명희종은 연호가 천계여서 천계제라고도 부른다. 천계제는 7년간 재위했고, 3남3녀를 낳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두 요절한다. 한명도 자라서 성인이 되지못한다. 후계자가 없었던 천계제는 어절 수 없이 비바람이 흔들리는 제국을 동생인 신왕(信王) 주유검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바로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이다.


천계제는 22살까지밖에 살지 못하고 6명의 자녀가 모두 요절하여 안타까움을 남긴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명나라황제의 수명과 자손상황을 살펴보면, 단명하고 자녀가 요절하는 것은 거의 모든 명나라황제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북경이 함락될 때까지 명나라는 모두 16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그중 50세를 넘긴 사람은 단지 4명이다. 명태조 주원장이 70세, 명성조 주체가 64세, 가정제가 59세, 만력제가 57세이다. 나머지 황제는 대부분 40세가량에 사망한다.


수명 외에, 대부분의 황제는 자손문제도 좋지 못했다. 경태제, 천순제, 홍치제, 가정제는 아들 1명이 뒤를 이었다; 정덕제, 천계제는 후사가 없었다; 후대가 비교적 많았던 황제는 홍희제, 선덕제, 성화제, 만력제 4명정도 뿐이다. 명나라때 영아사망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만 제왕가에서 아이가 요절하는 율이 100%에 달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런 기괴한 현상이 일어났을까?


명나라때의 태감인 유약우(劉若愚)가 쓴 <작중지(酌中志)>에는 천계연간의 궁내상황을 가장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요절의 원인을 엿볼 수 있다. 유약우 가족은 연경위지휘첨사를 세습했고, 어려서부터 비교적 좋은 교육을 받았다. 만력29년, 유약우는 궁으로 들어가 태감이 된다. 태감중에서는 지식분자이다. 그리고 궁내에서 잘 지냈다. 천계초년 유약우는 내직방으로 보내어져서 문서를 관리한다.


천계제가 사망한 후, 숭정제는 위충현세력을 제거한다. 유약우도 무고로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옥중에서 <작중지>를 썼다. 거기에 자신이 궁중에서 수십년간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다. 그리고 자신은 억울하다는 점도 밝힌다. 나중에 그는 석방되었다. 유약우는 궁내에서 내시로 수십년간있었고, 전체 천계조를 지냈다. 게다가 그는 문화수준도 있고, 궁내의 지위도 비교적 높았다. 황궁내의 각종 사정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신뢰성이 있다.


유약우는 책에서 황궁내의 각 직능부문을 소개한다. '적신사(積薪司)'에 대하여 얘기할 때 그는 이렇게 적었다; "무릇 궁중에서 쓰는 홍라탄(紅籮炭)은...... 만일 비를 오래 맞으면, 성질이 다 하지 못해서, 화기가 너무 세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어지럽고 혼미하며 구토를 일으키게 된다. 어른은 그래도 괜찮지만, 황자녀가 어리면 어찌 견디겠는가? 궁중은 모두 나무로 바닥과 벽을 해서 흙기운이 부족하다. 유모는 추위를 겁내서, 황자녀들이 혹은 그 독에 중독되어, 여러번 요절하니,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설명한 현상은 바로 일산화탄소중독이다. 일단 유약우의 기재가 사실이라고 보면, 여러 황족자녀는 겨울에 목탄을 태우는 바람에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사망한 것이다.


사실상 황족이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사망하는 것은 명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게 아니다. 청나라의 마지막 항제 부의도 하나터면 일산화탄소중독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부의는 선통12년 십일월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십구일, 맑음. 밤1시경, 누가 불러서 깼다. 정신이 드니 몸이 좋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가니 비로소 이미 일산화탄소중독이라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이 부축해서 걸었고, 전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혼절했다."


중국의 북방은 겨울에 아주 춥다. 일단 문과 창을 봉해버리면, 실ㄹ내에서 목탄이나 석탄을 사용하여 온기를 취하다가 일산화탄소중독에 걸리기 쉽다. 일산화탄소중독을 피하려면, 실내에 일산화탄소가 누적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 방법은 통풍을 시키는 것 외에는 연통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만, 자금성내에는 연통이 없다.


알려진 바로는 자금성에서 겨울에 탄을 피우는 도구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큰 것은 '훈롱(薰籠)'이라 하며 1미터 높이에 수백근의 무게가 나간다. 작은 것은 '탄로(炭爐)'라고 부르는데, 손안에 두는 수로(手爐)와 발옆에 두는 각로(脚爐)가 있다. 그외에 각종 화분(火盆)이 있다. 다만 이들 도구는 배연장치가 없다. 황궁황족이 사용하는 연료는 연기가 나서 안되기 때문이다. <작중지>의 기록에 따르면, 궁중에서 쓰는 연로는 '홍라탄'이라고 부르는데, 역주(易州)일대의 산에서 나는 경목(硬木)을 태워서 만든 것이다. 태운 후 홍라창으로 보내어져 가공된다. '기운이 따스하며 오래가고, 재는 흰색이며 터지지 않는다." 이런 고급원료를 때면 연기가 나지 않는다. 연기가 나지 않으니, 고대인들의 상식으로는 연통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통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성인은 반드시 실내에만 있지 않다. 그러나 강보에 싸인 용자용손들은 아무도 감히 추운 겨울에 안고서 밖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랫동안 일산화탄소의 독에 노출되고 결국은 사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