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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51

급암(汲黯): 한무제에게 감히 대들었던 인물. 글: 이중천(易中天) 모두 알고 있다. 한무제는 대들기 힘들다는 것을. 예를 들어, 사마천은 몇 마디 다른 의견을 얘기했다가, 결과가 어찌되었는가? 잘렸다. 더 이상 남자도 아니게 되었다. 다만 한 사람이 있다. 굳이 한무제에게 대들었던. 그리고, 말도 아주 심하게 했다. 예를 들어,한무.. 2018. 12. 12.
한족의 이민족에 대한 호칭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글: 자주군(煮酒君) 부지불식간에 발견한 것이 있다. 한족의 이민족에 대한 칭호도 재미있는 변화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포폄(褒貶)간에 역사의 궤적을 따라가면 한족의 심리가 바뀌어왔음을 알 수 있다. 최초에 한족은 이민족을 극단적으로 차별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으로 보지 .. 2018. 12. 12.
왕망(王莽)의 화폐개혁 글: 서준기(徐俊琦) "육천십포(六泉十布)"는 왕망의 신나라에서 발행한 화폐중 주요한 16가지를 가리킨다. 왕망은 5차에 걸쳐 화폐제도를 개혁하는데, 이로 인하여, "농상업이 실업되고, 무역이 모두 폐지되어" 경제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다 준다. 그리하여 정권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다. 다.. 2018. 11. 28.
오호십육국의 오호(五胡)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글: 희랄인(嘻辣人) '오호십육국'은 혼란의 시기이다. 필자는 도대체 어느 16개국을 말하는지 항상 헷갈린다. 다만 '오호'가 나중에 어디로 갔는지에 대하여는 호기심이 많다. 265년, 사마염이 위원제를 핍박하여 선양하게 하고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서진(西晋)을 건립한다. 291년, 서진에 '.. 2018. 11. 20.
두 왕조에서 황후를 지낸 비정황후 양헌용(羊獻容) 글: andy 먼저 진혜제(晋惠帝)의 황후로 있었고, 나중에는 흉노이 전조(前趙)에서 헌문황후(獻文皇后)로 있었던 양헌용은 일찌기 6변 폐위되고, 7번 황후에 오르며 두 나라의 황후를 지낸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비참하면서도 가장 운이 좋고, 가장 전설적인 황후중 한 명이다. 양헌용은 한.. 2018. 10. 30.
흉노에 문자가 있었을까? 작자: 미상 흉노는 기원전3세기, 몽골초원에 건립된 유목을 위주로 한 강대한 민족정권이다. 이들은 대막남북, 동북평원, 하투 및 황토고원을 400여년간 통치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중국역사와 세계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점은 이렇게 수세기동안 활약한 흉노.. 2018. 8. 2.
낭중기병(郞中騎兵): 유방의 최정예부대 글: 김릉물(金陵物) 초한전투에서 항우(項羽)의 무력은 엄청났다.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이다. 그의 지휘를 받는 초군(楚軍)은 백전백승의 부대였다. 진군을 격패한 후 제후들은 더더욱 그의 앞에 줄을 섰고, 항우는 자신의 영웅기개를 최대한 드러낸다. 항우의 군대는 전투력이.. 2018. 7. 17.
돌궐(突厥)은 어떤 민족인가?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돌궐은 철륵(鐵勒)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개락 예니사이강 상류에 거주했다. 5세기 중엽, 돌궐인은 유연(柔然)의 노예가 되어, 알타이산의 남쪽으로 강제이주된다. 그리고 유연의 노예주를 위하여 철(鐵)을 제련한다. 그리하여 "단노(锻奴)"라고 불렸다. 5세기후엽, .. 2018. 7. 4.
장손성(長孫晟): 당태종의 장인은 일전쌍조(一箭雙雕)의 고수 글: 임염(任艶) 돌궐(突厥)은 막북지역에서 흉노, 선비, 유연의 뒤를 이어 일어난 또 하나의 유목민족이다. 남북조시기가 전성기였고, 항상 남하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중원을 교란했다. 북조때의 북제, 북주는 부득이 화친과 조공의 책량으로 평화를 얻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 2018. 6. 25.
누가 진정한 흉노(匈奴)의 후예인가? 글: 하필(何必), 양풍(凉風) 최근 고고학계에 큰 뉴스가 하나 나왔다. 몽골국 고비성 더리거르 항아이쑤무 경내에서, 중국몽골 연합고고팀은 한문(漢文) 마애석각(摩崖石刻)을 현지조사했으며, 그것이 동한 영원원년(89년) 반고(班固)가 쓴 <봉연연산명(封燕然山銘)>이라는 것을 확인한.. 2017.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