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돌궐은 철륵(鐵勒)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개락 예니사이강 상류에 거주했다. 5세기 중엽, 돌궐인은 유연(柔然)의 노예가 되어, 알타이산의 남쪽으로 강제이주된다. 그리고 유연의 노예주를 위하여 철(鐵)을 제련한다. 그리하여 "단노(锻奴)"라고 불렸다.
5세기후엽, 유연의 노비로 있던 부락들이 계속하여 반항하고 도망간다. 칙륵(勅勒) 각부의 반항이 가장 격렬했다. 돌궐은 아사나(阿史那)를 핵심으로 하여 함께 유연을 치려고 준비하던 5만여 고차인(高車人)을 격패시키고, 그들의 항복을 받아낸다. 이 기초 위에서, 막북에서 이미 백여년간 웅거하던 유연칸국을 멸망시킨다.
552년, 아르훈강 유역에 참신한 국가를 새로 건설한다. 바로 돌궐칸국이다. 그후 중앙아시아를 정복하여 강역이 동으로는 요하상류에서 서로는 카스피해, 남으로는 대막이북, 북으로 바이칼호에 이른다. 그러나 수(隋)나라때 돌궐은 동, 서 두 부분으로 나뉜다. 동돌궐은 630년 중국 당나라에 멸망한다. 서돌궐은 서쪽으로 이주하여, 11-13세기 서돌궐인중에서 셀주크와 오스만 두 부락이 각각 방대한 셀주크제국과 오스만투르크제국을 건립한다. 현재의 터키 국가명칭은 바로 돌궐에서 유래한다. 터키민족은 돌궐인과 소아시아 및 근동의 원주민이 장기간 융합하여 이루어졌다.
돌궐인이 궐기할 때, 군기(軍旗)에는 황금색의 늑대머리(狼頭)를 그려서 낭기(狼旗)라고 불렀다. 돌궐인은 왜 늑대를 자기민족의 토템으로 삼았을까? 어떤 사람은 늑대가 돌궐인의 조상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생식숭배의 결과라고 한다. 이렇게 늑대를 토템으로 하여 숭배하는 현상은 원시 유목민족의 늑대에 대한 경외심리를 나타내거나, 혹은 늑대가 선량한 마음을 발휘해주기를 바라거나, 혹은 늑대의 비호를 기도하거나, 혹은 여러가지 원인이 모두 있는 것은 아닐까?
<주서.돌궐전>, <수서.돌궐전>에는 돌궐인에 대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돌궐인의 조상은 서해(西海, 청해호)에 건국했는데, 이웃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고, 구성원들은 모조리 살륙당한다. 단지 어린아이 한 명을 병사들이 차마 죽이지 못했다. 다만 그의 다리를 자르고 그의 팔을 자른 다음에 초택(草澤)에 버린다. 한 암늑대가 매일 고기를 주어서 이 사내아이를 기른다. 사내아이는 어른이 된 후에 늑대와 결합하여 암늑대가 임신을 한다. 이웃나라의 임금이 이를 알고 난 후에 다시 사람을 보내어 그를 죽인다. 온 사람은 그의 곁에 늑대가 있는 것을 보고, 늑대까지 함께 죽이려 한다. 그러나 늑대가 도망쳤다. 나중에 고창(高昌)의 서북에 있는 한 산으로 간다. 산에는 동굴이 있었고, 동굴안의 토지는 평탄하고 풀이 무성했다. 주위는 수백리가 되었다. 늑대는 거기에 몸을 숨기고, 10명의 사내아이를 낳는다. 그들은 어른이 된 후에 각각 성(姓)을 하나씩 갖고 모두 결혼해서 사직을 낳는다. 그중 아사나씨(阿史那氏)가 가장 현명했고 능력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두머리가 된다.
<북사>, <주서>의 돌궐본전에는 또 다른 전설도 기록하고 있다. 돌궐인의 조상은 원래 흉노(匈奴) 북쪽의 색국(索國)이었다. 부락의 우두머리는 아방보(阿謗步)였고, 형제가 17명이었다. 그중 한 형제는 암늑대가 낳았다. 이름은 이질니사도(伊質泥師都)였다. 이질니사도는 천지간의 특별한 영기를 얻어 호풍환우(呼風喚雨)할 수 있었다. 그는 2명의 처를 맞았는데, 각각 하신(夏神)과 동신(冬神)의 딸이었다. 한 처가 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큰아들 납도육(納都六)은 천사처절시산(踐斯處折施山, 지금의 예니세이강 상류)에 살았다. 같은 부락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구해주어 사람들에게 군주로 옹립되고, 나라이름을 돌궐이라 한다. 납도육이 죽자, 그의 여러 아들이 큰 나무 아래에 모여서 후계자문제를 논의한다. 그들은 공동으로 이렇게 약속한다. 나무로 뛰어올라서, 가장 높이 뛰어오르는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도록 하자고. 아사나자(阿史那子)는 나이가 어려서 가장 높이 뛰어오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군주로 모시고 아현설(阿賢設)이라 불렀다. 이 주장은 특이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늑대종자라는 말이다.
이상의 두 개 전설이 비록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두 늑대가 돌궐인의 선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돌궐인은 '암늑대'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은 돌궐인 묘지의 석비조각도안에서도 아주 생생하게 반영된다. 예를 들어, 1956년 몽골경내 하누이강 평원에서 발견된 불고특석비(不古特石碑)에 부조된 화면은 바로 한 마리 늑대이다. 그리고 마침 암늑대이다. 이 석비는 보편적으로 돌궐칸국시기에 아사나왕족구성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남긴 유물이라고 인정된다. 돌궐인이 늑대를 자신의 조상으로 보고 늑대를 자기민족의 '토템'으로 존중했다는 생생한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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