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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51

소군출새(昭君出塞)의 동기는 무엇인가? 글: 문재봉(文裁縫) "소군출새"의 이야기는 중국역사상의 아름다운 이야기중 하나이다. 그 내용은 한원제(漢元帝) 시기에 남군(南郡) 자귀(秭歸)(지금의 호북성 흥산현) 사람인 왕소군(王昭君)이 수녀(秀女)의 신분으로 선발되어 궁중으로 들어간다. 궁중에 미녀가 너무 많아서, 한원제.. 2013. 12. 1.
유방은 왜 죽마고우 노관(盧綰)에게 배신당하는가? 글: 하당월색(荷塘月色) 한고조 유방은 대한왕조의 개국황제이다. 동시에 역사상 영향력이 아주 큰 정치가 겸 군사지휘가이다. 그는 비록 미천한 출신이지만, 인간관계가 아주 좋았다. 떠도는 생애에서도 그의 '죽마고우' 노관은 그를 떠나지 않았고, 기꺼이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한왕.. 2013. 11. 25.
통만성(統萬城): 마지막 흉노 글: 김만루(金滿樓) 최근, 섬서 정변현(靖邊縣)의 통만성 유적지내에서 의외로 규모가 거대한 건축기지가 발굴되었다. 4면의 기울어진 토목구조형식은 당시 높은 누각식건축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추측으로는, 이 건축의 건조연대가 당말오대시기일 것이라는 것이다. 통만성은 이전에 .. 2013. 11. 10.
만리장성은 단지 외적을 막기 위한 것일까? 글: 양혜왕(梁惠王) 고대에 "관량(關梁)"은 합쳐서 불렀다. 바로 교량(橋梁)과 관문(중국어로는 '關卡')을 합친 말이다. 고대인들이 보기에, 이는 같은 것이었다. 왜 "교량"을 "관문"과 같이 취급했을까? 첫째는 고대인들이 변경(국경선)은 자연스러운 산(山)과 물(水)을 기초로 한다. 강물.. 2013. 11. 10.
주발과 주아부: 서한(西漢) 부자명장과 감옥 글: 풍점우(馮占宇) 주발(周勃) 은 서한(西漢)의 개국공산이다. 유방을 따라 남정북전(南征北戰), 공성약지(攻城掠地)에 큰 공을 세우고, 강후(絳侯)의 작위에 봉해진다. 주발의 아들인 조후(條侯) 주아부(周亞夫)는 치군(治軍)이 엄명하고, 용병(用兵)에 능한 것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 .. 2013. 11. 10.
최후의 흉노왕국 대선우 혁련발발(赫連勃勃)의 능묘 글: 악남(岳南) 1 필자가 혁련발발의 신비한 매장장소 - 가평릉(嘉平陵)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많이 늦었다. 그가 사망한 후 1580년이 지난 이후이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 흉노대선우의 능침을 알게 된 것은 2013년 9월 27일 그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던 오전이었다. "대도건곤, 미려.. 2013. 10. 9.
진(秦)나라 병기표준의 수수께끼 글: 호반청천(湖畔聽泉) 오늘날의 섬서성 함양부근의 함양궁은 진제국의 심장이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나서, 함양궁은 황토무더기로 바뀌었고, 진나라군대라는 한때 최강의 군대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를 남겼다. 도대체 어떤 군대였을까? 진군이 강대한 근원은 무엇이었을가? .. 2013. 8. 22.
곽거병은 어떻게 흉노에 승리할 수 있었는가? 글: 몽고창랑 흉노는 유목민족이다. 어린아이도 어려서부터 말 등에서 자랐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 중원의 한병(漢兵)과 비교하면 속도가 빠르고, 전투력이 강했다. 동시에, 흉노는 먹는 것도 육식위주였다. 그래서 말린 소고기 양고기를 군량으로 삼았다. 말린 소고기, 말린 양고.. 2013. 6. 10.
흉노의 후예들은 어디로 갔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흉노는 기원전3세기경 중국북방에서 흥기한 고대민족이고, 하투(河套)지대(지금의 내몽고,산서일대)에서 번성했고, 대막남북에서 유복생활을 했다. 흉노의 수령은 선우(單于)라고 하는데, 중원의 국왕에 해당한다. 선우의 아래에는 좌현왕, 우현왕이 있고, 각각 대부.. 2013. 4. 15.
위구르와 돌궐의 역사적 연원 글: 백작(伯爵) 위구르족이 독립을 주장하면서 왜 신강을 동투르키스탄(東突厥)이라고 부를까? 위구르족이 돌궐족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런 관계는 1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원래 몽골고원의 흉노, 선비등 민족이 서진(西晋)을 멸망시.. 2013.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