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주군(煮酒君)
부지불식간에 발견한 것이 있다. 한족의 이민족에 대한 칭호도 재미있는 변화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포폄(褒貶)간에 역사의 궤적을 따라가면 한족의 심리가 바뀌어왔음을 알 수 있다.
최초에 한족은 이민족을 극단적으로 차별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남방의 오랑캐 만(蠻), 민(閩)은 벌레(蟲)에서 따왔다. 북방의 오랑캐 적(狄)은 개(犬)에서 따왔고, 서방의 오랑캐 강(羌)은 양(羊)에서 따왔다. 모두 짐승에서 글자를 따온 것이다. 서방의 또 다른 오랑캐인 융(戎)에는 짐승을 의미하는 글자가 없다. 그러나 서융은 견융(犬戎)이라고 부른다. 굳이 거기에다가 짐승을 표시하는 글자를 추가해서 단어를 만든다.
동서남북의 이민족 중에서 오직 동이(東夷)만이 좀 다르게 지었다. 이(夷)자는 큰(大) 활(弓)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이 민족의 몸이 크고, 활을 잘 쏜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한족은 '동이족'을 편애했던 것같다. 필자의 생각에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 동이족은 민풍이 순박하고 화하족의 풍속과 비슷했다. <산해경>에는 '이속인(夷俗仁)'이라고 하였다. 공자마저도 '욕거구이(欲居九夷)'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둘째, 동이족은 일찌감치 화하족과 융합되었다. 삼황(三皇)중의 순제(舜帝)가 바로 동이족이다. 둘의 관계는 사비나인과 로마인의 관계와 같다. 같이 밥을 먹은지 이미 오래 되었고, 너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는 관계로 되었다.
이와 비교하자면 '적(狄)'에 대한 대우는 차이가 컸다. 이 민족은 한족과 교류가 아주 깊었다. 진문공(晋文公) 중이(重耳)는 바로 백적(白狄) 여인이 낳았다. 그리고 적인은 문화가 발달하여 어떤 면에서는 화하족보다 문명정도가 높았다. 완전히 에트루리아인의 판박이이다. 아쉽게도 융합하는 과정에서 중이와 마찬가지로 "중동(重瞳) + 판륵(板肋)"의 기형아가 많이 나타났다. 아니면 중원인의 질투를 사서인지 이 민족은 '적'으로 멸칭된다. 계속하여 동물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후로 이민족의 지위는 약간 올라간다. 마침내 벌레, 개, 양같은 류의 동물에서 사람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고급의 사람은 아니었다. 진한(秦漢)이후의 이민족은 주로 북방의 유목민족인 흉노(匈奴)이다. 오늘날 흉노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히 그의 조상의 한 갈래는 유럽으로 가서, 그들의 진정한 이름을 남긴다. "흉인(匈人, Huns)". 그제서야 그들은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았다. 민족에 어찌 '노(奴)'자를 쓴단 말인가. 이는 분명히 한족이 멸시하는 명칭을 그들에게 가져다 붙인 것이다.
다시 시간이 흘러 오호난화(五胡亂華)시대에 이르러 '호(胡)'자가 이민족의 통칭이 된다. '호(胡)'는 '달(月)'에서 따왔는데, 분명히 신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실 '호'자의 원래 의미는 소의 뺨에서 목아래로 늘어진 고기를 말한다. 이것도 사람을 형용하는 말은 아닌 것이다. 오호난화시대에 선비(鮮卑)는 신흥민족이다. 이때 한족의 문명정도는 약간 올라가서 글자도 훨씬 함축적이 된다. 직접적으로 상대방을 개니 노비니 그렇게 부르지 않고 그저 '비(卑)'자만 썼을 뿐이다. 물론 이것도 좋은 뜻은 아니다.
다만 이 정도로 올라간 것만 해도 오랑캐들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속속 그 말을 받아들인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수십만의 흉노가 스스로 선비라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에서 '비'로의 승격이 이루어진다. 나머지 네 오랑캐 중에서 강족(羌族)은 양에서 따온 예로부터 있는 글자이다. 저(氐)족은 원래 '저(羝)'자에서 왔다. 저(氐)족은 예전에 저(羝)족이라고 불리웠다. 이는 숫양이라는 뜻이다. 소수민족의 한학조예도 깊어진 것같다. 스스로 옆에 붙은 동물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오직 '갈(羯)'족만이 동물을 표시하는 편방을 남겨두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민족은 당시에도 지위가 가장 낮은 민족이었다는 것이다. 항상 '갈노(羯奴)', '갈구(羯狗)'라고 불리웠고, 오호중에서 맨끝을 차지했다.
당나라가 천하를 평정하고나서, 중원은 다시 한문명이 발전하는 궤도에 접어든다. 이민족의 용맹무쌍함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어서인지 아니면 민족융합이 이미 많이 이루어졌고, 당나라황실조차도 이민족혈통이어서인지, 더 이상 신흥이민족을 멸시하는 글자를 쓰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이민족명칭에서는 차별적인 흔적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돌궐(突厥), 철륵(鐵勒), 고차(高車), 듣기에도 비교적 중성적인 글자들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에서 '돌궐'은 '투르크' '터키(Turkey)'이다. 그러므로 이들 이민족에 대한 칭호는 완전히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부르는 칭호에 충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이상 그들을 '흉(匈)'인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奴)'자를 덧붙이지 않았다.
다시 그 후이 거란(契丹), 몽골(蒙古), 여진(女眞)등의 민족은 영어의 독음과 결합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모두 그 민족의 자칭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쓴 한자도 아주 중성적이고 무포무폄(無褒無貶)하다.
근대에 들어, 이민족의 칭호에는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미리견(美利堅, 아메리카)', '영길리(英吉利, 잉글랜드)', '법란서(法蘭西, 프랑스)', '덕의지(德意志, 도이치)' 이런 이름이 나타난 것이다. 국가가 약해지고, 민족이 낙후되니, 이민족에 대한 칭호도 바뀐 것이다. 한자에서 좋은 뜻의 글자는 모두 가져와서 썼다.
이민족에 대한 칭호에서 우리는 이런 궤적을 확연히 엿볼 수 있다. 선진시기에 사방의 이민족을 멸시하다가, 당송때는 평화활달하게 대하다가 청말에는 스스로를 비하하고 이민족에 아첨하는데까지 이른다. 민족심리와 자신감의 변화가 이렇게 분명하다. 특히 마지막의 이 변화는 꽃이 시들어 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는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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