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급암(汲黯): 한무제에게 감히 대들었던 인물.

by 중은우시 2018. 12. 12.

글: 이중천(易中天)


모두 알고 있다. 한무제는 대들기 힘들다는 것을.

예를 들어, 사마천은 몇 마디 다른 의견을 얘기했다가,

결과가 어찌되었는가?

잘렸다. 더 이상 남자도 아니게 되었다.

다만 한 사람이 있다. 굳이 한무제에게 대들었던.

그리고, 말도 아주 심하게 했다.

예를 들어,한무제가 신인을 발탁하는 것을 좋아했고, 새로 발탁한 관리의 지위가 옛날부터 있던 사람보다 높아지기도 했다.

그는 바로 이렇게 말한다:


"폐하께서 신하를 쓰는 것은 마치 장작을 쌓아놓는 것같습니다. 뒤에 오는 자가 위에 올라갑니다(陛下用群臣如積薪耳, 後來者居上)."


의미는 아주 분명하다: 간부선발은 장작을 쌓는게 아니다. 어찌 그렇게 하십니까?

그래서 여기서 성어가 하나 나온다:


후래거상(後來居上)


한무제는 그의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기실 더 듣기 심한 말도 했다.

한번은 한무제가 조당에서 유가의 논리를 한참 얘기하면서 자신은 어떻게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폐하는 속으로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는 인의를 표방하는데, 왜 당우(唐虞)의 통치를 본받으려 하십니까?(陛下內多慾而外施仁義, 奈何欲效唐虞之治乎)"


이것은 코앞에서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너는 마음 속으로 욕심이 많으면서 입으로는 인의도덕을 얘기하는데, 하필이면 요순을 배우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한무제는 화가나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찌한단 말인가

그저 일어나서 한 마디 할 뿐이었다: "해산!"

그 사람이 누구인가? 누구길래 이렇게 대단할까?

하하, 그가 바로 급암(汲黯)이다.


급암은 하마터면 공손홍(公孫弘)을 좇아낼뻔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노신이다. 한무제가 태자로 있을 때 그는 바로 세마(洗馬)였다.

세마는 바로 태자가 출행할 때 말을 타고 앞에서 길을 여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서>의 백관표에는 '선마(先馬)'라고 적어놓았다.

정확한 독음은 아마도 '선마'일 것이다.

나중에, 그는 다시 주작도위(主爵都尉)를 맡는다. 지금으로 치면 장관급이다.

그때, 공손홍은 하급 실무관리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처세는 완전히 반대였다.

공손홍은 여우였고, 급암은 소였다.

실제로 급암의 강직함과 중후함은 일관된다. 그는 한번도 권세를 따르지 않았고, 권력귀족에 빌붙지 않았다. 태후의 동생 전분(田蚡)이 승상으로 있을 때, 황후의 동생 위청(衛靑)이 대장군으로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만나면 절을 했지만, 급암은 그저 두 손을 맞잡았을 뿐이다.

이건 이상할 것도 없다. 황제의 체면조차 봐주지 않는데, 하물며 딴 사람이야.

그는 부딛칠 때는 부딛치는 사람이었다.

승상 공손홍, 혹리 장탕은 모두 조당에서 그에게 혼난 적이 있다.

한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그저 이렇게 말했다:


"심의(甚矣), 급암지당야(汲黯之戇也)"


그 뜻은 이렇다:


"급암 이 자는, 너무 꽉 막혔다!"


꽉 막혔다는 것은 음모궤계를 꾸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무제는 그에 대하여 안심한다.

사실상 급암의 충성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직언을 하는 것도 모두 한무제의 강산사직을 위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 천자가 공경대신을 둔 것이 그저 황상의 뜻에 맞추어 아부하고 아첨하라고 둔 것인가. 나도 명철보신하고 싶다. 그러나 어찌 사명을 욕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그가 일어서서 말하는 것이다.

원수2년(기원전121년) 가을, 흉노의 한 왕이 부하를 이끌고 한왕조에 투항한다.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무제는 2만냥의 마차를 보내어 영접한다. 국고에 그렇게 많은 돈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민간에서 말을 빌린다. 백성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 일은 십중팔구 호랑이가 돼지를 빌려달라는 것이나 같다는 것을. 그래서 모두 말을 숨겨놓는다. 그래서 말의 숫자를 맞출 수가 없었다.

한무제는 대노하여, 장안현령(長安縣令)을 죽이고자 한다.

그때, 급암은 마침 우내사(右內史)를 맡고 있었다. 그는 장안현령의 상사이다.

그리하여 그가 즉시 나서서 말한다:


"장안현령은 무죄입니다. 나 급암 한 사람을 죽이면, 말이 생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투항해오는 자가 도대체 뭡니까. 이렇게 융중하게 대접해야 합니까. 그저 연도의 역참에서 규정대로 접대하며 하나하나 데려오면 되지 않습니까?


한무제는 할 수 없이 명을 거두었다.

벽립천인(壁立千仞) 무욕위강(無慾爲剛)이다.

아마도, 급암의 배짱은 여기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예를 들어 위청을 보자.

누군가 급암에게 이렇게 권한다: 당신이 설마 모르고 있단 말입니까. 천자께서는 문무백관들이 대장군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만나면 절을 하십시오.

급암이 말한다. 대장군의 존귀함으로 장읍을 하는 손님이 있다면 어찌 더욱 귀중하지 않겠습니까.

그 결과, 위청은 평생 급암을 존경한다.


한무제도 그러했다.

대장군 위청이 입궁하면 그는 마통(馬桶)에 앉아서 맞이했다.

승상 공손홍이 뵙기를 청하면,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 바로 만났다.

그러나, 급암이 뵙기를 청하면, 한무제는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서야 만난다.

만일 의복을 바뀌입을 시간이 되지 않으면, 커튼을 치고서 건너편에서 말했다. 예를 잃지 않기 위해서.

조야 상하가 모두 급암을 두려워했는데,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급암도 깨닫고 있었다. 황제의 신임을 남용하여 조야에서 그를 꺼리게 만든 적이 없다. 그대 대시대비(大是大非)의 문제에 대하여만 이치를 내세워 다투었고, 자잘한 문제들에 대하여는 신경쓰지 않았다. 실제로 노장철학의 신봉자로서, 급암은 청정무위(淸淨無爲)를 주장한다. 이것은 바로 그가 원칙을 지키면서도 힘을 과하게 쓰지 않아,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만일 그가 황제의 앞에서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하였다면 누구든지 그를 좋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다른 사람의 미움을 샀을 뿐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 했을 것이다.

기실 급암의 정적들은 모두 그가 사고를 치기를 기다렸다. 공손홍은 심지어 황제에게 그를 수도의 시장으로 취임시키자고도 말했다. 이유는 거기에는 황친국척이 많아서, 일반사람들도 골치아파하는 자리이므로 덕고망중(德高望重)한 사람이 아니면 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실한 의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급암은 부임한 후, 예전처럼 큰 것은 붙잡고 작은 것은 놔주며 무위이치(無爲而治)했다. 아무에게도 밉보이지 않고, 수도지역은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웠다.

공손홍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말해준다.


일신정기(一身正氣)를 가지고 유소불위(有所不爲)해야 비로소 존경과 안전을 보장받는다.


당연히 존경한다는 것이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급암도 파직된 적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는 다시 회양태수에 임명된다.

그리고 다른 태수는 급여가 1만6천인데, 급암은 2만이었다.

급암은 '신이 병이 있어, 중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한무제는 이렇게 말한다: '짐은 경의 숭고한 위망을 빌리고자 할 뿐이다. 그대가 진짜 일을 처리할 필요는 없다. 경의 도덕적 호소력만으로도 그냥 누워있으면 잘 다스려질 것이다.'

이 황제는 그래도 제대로 볼 줄 알았다.

만일 멍청하고 속좁은 황제를 만났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