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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제20

한소제(漢少帝): 환관묘에 묻힌 유일한 황제 글: 문재봉(文裁縫) 고대인들은 사후의 묘를 쓰는 것을 아주 중시하였다. 백성의 집안들도 그러했으니, 황실귀족은 더욱 그러했다. 이치대로라면, 황제의 묘는 설사 금벽휘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신경써야 할 것이다. 다만, 한소제가 죽은 후, 그저 아무렇게나 환관의 묘에 묻어버린다.. 2014. 12. 15.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 (3): 흔들리는 한영제와 떠오르는 영웅들 한영제는 역사적으로 혼군(昏君)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점에 관하여 얘기한 사람은 너무 많다. 동탁마저도 한 마디를 했다: "매번 한영제를 생각하면, 분독(憤毒)하게 된다"(<후한서.원소열전>)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 한영제에 대하여 개관논정(蓋棺論定)한 사람으로 가장 뛰어.. 2014. 12. 12.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1): 의의 글: 낙극(洛克)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의 난"은 난을 일으킨 해에 동한정권에 의하여 진압된다. 이 점에 있어서 이전 두 왕조말기의 농민의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진말과 서한말기(정확히 말하면 왕망의 신말기)의 농민의거는 모두 난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정권이 .. 2014. 12. 12.
유황숙(劉皇叔)의 신세내력 글: 마백용(馬伯庸) <삼국연의>의 첫부분 제1회에 유비가 등장하면서 자신은 한실종친이라고 내세운다: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으로, 한경제(漢景帝) 각하의 현손(玄孫)으로 성은 유(劉)이고 이름은 비(備)이며, 자는 현덕(玄德)이다." 이 부분은 정사(正史)의 기재에 부.. 2014. 8. 26.
유언(劉焉): 동한말 난세의 원흉 글: 섭지추(葉之秋) 동한말기의 난세를 얘기하자면, 일반 사람들은 항상 동탁(董卓)을 떠올린다. 확실히 동탁이 입경하여 한나라황제를 폐위시키고 새로 세운 것은 동한이 쇠망으로 가는 중요한 사건이다. 천하의 제후들은 동탁을 통하여 한 가지 이치를 확실히 깨달았다. 동탁처럼 아무.. 2012. 8. 15.
장양(張讓): 황제가 '아버지'라고 부른 환관 글: 이치아(李治亞) 태감은 몸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역사상 적지 않은 일을 했다. 어떤 사람은 황제를 끼고 명령을 내렸으며, 어떤 사람은 여러 신하들을 압도했다. 어떤 때는 모든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지만, 일단 득세하면 왕왕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횡한다. 처자식이 없기.. 2012. 6. 3.
한영제(漢靈帝): 부자가 되고 싶었던 황제 글: 섭지추(葉之秋) 한영제를 얘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릴 것이다: "선제(유비)께서는 한환제, 한영제에 대해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先帝未嘗不嘆息於桓靈也)". 제갈량이 보기에, 그리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보기에, 한나라가 쇠망한 것.. 2012. 3. 31.
채옹(蔡邕): 동탁은 왜 그를 좋아했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중국고대의 유명한 재녀 채문희의 부친은 채옹이다. 그는 중요한 인물이다. 자는 백개(伯喈)였고, 진류어(陳留圉, 지금의 하남성 기현 남쪽)사람이다. 한헌제때, 그는 좌중랑장(左中郞將)을 지낸다. 그리하여 후인들은 그를 "채중랑(蔡中郞)"이라고 부른다. 채옹.. 2012. 2. 6.
한헌제(漢獻帝) 유협(劉協): 중국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망국황제 글: 유병광(劉秉光) 파소지하기완란(破巢之下幾完卵) 망국지군다비참(亡國之君多悲慘) 새집이 부서지면 온전한 새알이 남아있겠는가 나라가 망한 군주는 대부분 비참했다. 역사적으로, 망국황제는 독살당하거나 암살당하거나, 목이 잘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구차하.. 2011. 9. 6.
대당제국: 융합의 시대 타림하(塔里木河)는 중원으로 흘러서 도도한 황하와 면면한 장강과 서로 섞일 수는 없다. 타림하가 기른 서역문화는 문명의 새처럼, 지혜의 꽃처럼 중원문명의 정원으로 날아왔고,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일시간에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형국이 되었으며 흥성하고 번영하는 국면을 형성하.. 2007.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