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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36

권력이 없었다면 여후는 행복했을까? 글: 후홍빈(侯虹斌) 1 여후는 정치세력의 투쟁과 후계자 다툼에서 잠시 승리한다. 그러나 국가관리층면에서 여후는 여러가지 곤경에 빠진다. 그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농촌에서 농사나 짓던 출신의 여인이 어찌 나라를 다스리는 교육을 받아보았겠는가? 실제로, 여후의 집정기간동안 중.. 2015. 4. 25.
항우는 왜 제국을 잃어야 했는가? 글: 후홍빈(侯虹斌) 1 부득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시기에 성을 도살하는 것(屠城)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항우는 특히 이를 좋아했다. <사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2세 2년(기원전208년), 항우는 양성(襄城)을 도살한다. 같은 해, 유방, 항우는 성양(城陽)을 도살한다. 2년후, .. 2015. 3. 26.
진평(陳平)의 "태도"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진평의 "태도"는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할 태도이다. 진평이 유방에 투신한 후, 금방 유방의 인정을 받고 중용된다. 유방의 수하중 "오래된 사람들" 경력이 비교적 많은 주발과 관영같은 사람들은 그를 못마땅해 하고, 마음 속으로 질투를 한다. 그리하.. 2015. 2. 24.
양영태(楊永泰): 장개석의 제일모사 글: 유계흥(劉繼興) 역사상 일종의 지식엘리트들은 "문객(門客)", "군사(軍師)", "막료(幕僚)"등의 신분으로 자신의 '주인', '주공'을 위하여 계책을 내고, 근심거리와 어려움을 해결해주는데, 이들을 "모사(謀士)"라고 불렀다. 고대의 저명한 모사로는 범증, 진평, 곽가, 가후(賈詡)등이 있.. 2015. 2. 20.
항우가 죽은 후 항우의 부장(部將)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방이 항우를 물리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서 그는 즉시 공신들에게 작위를 내리고 상을 내리지 않고 그가 생각하기에 더욱 중요한 한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것은 항우의 부하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는 원래 그를 옹호했던 몇몇 제후를 다시 한번 확.. 2014. 12. 12.
여후(呂后)는 심이기(審食其)와 사통했는가? 글: 복녕객(福寧客) 벽양후(辟陽侯) 심이기는 유방과 같은 고향사람이고, 얼굴과 눈이 청수하고, 말재주가 뛰어났다. 유방이 거병한 후, 집안을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자, 심이기를 '사인(舍人)'으로 삼아 집안일을 대신 처리하게 하였다. 여후는 심이기와 밤낮으로 모여서 얘기하여, .. 2014. 10. 2.
유방의 부하는 어떤 사람들인가? 글: 이치아(李治亞) 유방은 한고조이다. 참백사기의(斬白蛇起義)부터 삼년만에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오년만에 초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마침내 천하를 가진다. 포의천자이므로, 유방의 건국에는 개국공신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유방의 수하인 개국공신은 모두 어떤 사람들일까/ 첫째, 반.. 2014. 5. 30.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전환 글: 왕립군(王立群) [<여후>수정판서문] <여후>의 재판을 곧 낸다. 신판 <여후>에는 문자를 좀 늘였다. 대체로는 2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원서의 내용을 보충한 것이고, 둘은 고적 원문을 증가시킨 것이다. 현재, 대중역사 읽을거리가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적원문.. 2014. 1. 29.
한고조 유방의 유언 분석: 환환상구(環環相扣), 백밀무일소(百密無一疎) 글: 하목풍(何木風) "유씨가 아니면서 왕이 되면, 천하가 모두 그를 쳐라." ---<사기.여태후본기> "여후가 고조에게 물어 말하기를: 폐하가 세상을 떠난 후 소상국이 죽으면 누가 대신합니까. 황상이 말하기를: 조참이 괜찮다.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니 답하기를: 왕릉이 괜찮다.. 2013. 12. 21.
사마상여(司馬相如): 금전 위에 건립한 애정 글: 후홍빈(侯虹斌) 나는 지금까지 한 사람이 정말 재능이 있다면, 처에 의지해서 성취를 거두더라도 별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리안(李安)이 두번째로 오스카상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후,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안과 왕샤오보(王小波)는 한 때 변변한 일도 없이, 마누.. 2013.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