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립군(王立群)
[<여후>수정판서문]
<여후>의 재판을 곧 낸다. 신판 <여후>에는 문자를 좀 늘였다. 대체로는 2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원서의 내용을 보충한 것이고, 둘은 고적 원문을 증가시킨 것이다. 현재, 대중역사 읽을거리가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적원문을 붙이지 않는다. 역사문헌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독자에 있어서, 책속의 문자가 문헌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어렵다.
중국고대역사상의 제왕을 얘기하자면, 무측천의 지명도가 상당히 높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인의 몸으로 두 황제에게 시집가고, 국호를 바꾸고,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인으로 통일제국의 황권을 장악한 최초의 인물은 무측천이 아니다. 여후이다. 여후는 비록 정식으로 황제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중국역사상 최초의 황제를 칭하지 않은 '여제(女帝)'이다. 그녀는 '칭제(稱制)'를 8년간 했고, 한혜제가 재위한 7년을 더하면 여후는 실제로 15년간 중국을 통치한다.
중국역사는 한당을 나란히 비교하곤 한다. 한나라에는 여후가 나오고, 당나라에는 무측천이 나왔다. 이것은 서로 기고상당(旗鼓相當)한 일이다.
여후가 정식으로 서한의 역사무대에 등장한 것은 한신을 죽이면서 부터이다. 그후 팽월을 죽이고, 척희를 학살하고, 황자를 주살했다. 죽이면 죽일수록 담이 커졌고, 살심은 더욱 짙어졌다. 유방의 사후에 그녀는 비불발상(秘不發喪)하고 천하공신을 모조리 죽이고자 했다. 죽는데 이골이 난 것같다.
여후가 이처럼 미친듯이 군 것은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는 복수를 하루 빨리 하고 싶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씨가 영원히 부귀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여후는 응보가 걱정되지 않았을까? 두려워했다. 그것도 아주 두려워했다. 다만, 그녀는 너무 늦었다. 임종전에, 그녀는 경성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조카 2명에게 신신당부한다. 너희는 절대로 군영을 떠나지 말라. 설사 내가 죽어서 장례를 치르더라도 너희는 군영을 한발짝도 나가서는 안된다. 이를 보면 여후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여후가 죽은지 2달만에 여씨종족은 멸족당한다.
한마음으로, 만세부귀를 누리고자 했던 여씨종족은 여후가 죽은지 겨우 두 달만 버틴 것이다. 역사는 정말 여후에게 장난을 크게 친 것같다.
작은 인물을 정부를 두려워하고, 큰 인물은 역사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생전에 위풍당당했던 대인물에게 악평을 하여 역사의 단죄를 내릴 수 있을 뿐아니라, 대인물이 죽은 후에 그의 일족을 죽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후는 이리저리 계산했지만, 자신이 죽은 후 여씨종족이 멸족될 것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여후는 생전에 피비린내나는 수단으로 유방이 사랑한 후궁, 여러 아들들을 죽여버린다. 여후가 죽자, 진평, 주발을 우두머리로 하는 공신파와 유장, 유양을 우두머리로 하는 황족파는 손을 잡고, 마찬가지의 피비린내나는 수단으로 여씨를 멸족시킨다. 공신파와 황족파가 여러 여씨를 죽인 것과 여후가 유씨성의 황자, 유방의 후궁을 죽인 것의 다른 점이라면 주살한 대상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그 외에는 양자간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
이것은 필자로 하여금 남아공의 전대통령 만델라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감옥에서 27년간 갇혀 있었고, 갖은 학대를 당한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 3명의 일찌기 그를 학대했던 간수를 참석시킨다. 그리고 그는 3명의 그를 학대한 바 있는 간수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말한다. 내가 만일 원한을 뒤로 미뤄두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정 감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만델라의 관용과 대범함은 정말 내심으로부터의 감복하게 만든다. 여후의 생전사후에 발생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국역사상 가장 두려운 것을 보여준다. 역사가 앞으로 나아갈 때, 앞으로 나가는 것은 단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전환일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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