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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37

현방(玄昉): 환관이 된 일본견당사 글: 장풍(蔣豊) 견당사(遣唐使), 이는 중일양국교류사상의 아름다운 이야기 한토막이다. 또한 사람들이 중일우호의 역사연원을 얘기할 때면 반드시 언급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아마도 여기에 적힌 얘기를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의 당나라때 일본견당사를 거세하여 환관으로 만들었.. 2009. 11. 13.
당나라의 공주들은 왜 여도사(女道士)가 되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여도사는 당나라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황실공주인 여도사라면 더욱 그렇다. 당나라때는 공주들이 여도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나라때 공주가 출가하여 여도사가 된 얘기를 하자면 옥진공주(玉眞公主)를 빠트릴 수 없다. 이 옥진공주는 여황제 무측.. 2009. 10. 10.
양귀비는 왜 황후가 되지 못하였는가? 글: 정계진(丁啓陣)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는 당현종의 양귀비에 대한 사랑을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양귀비 생전의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춘소고단일고기(春宵苦短日高起) 종차군왕부조기(從此君王不早期) 승환시연무한가(承歡侍宴無閑暇) 춘종춘유.. 2008. 11. 26.
안록산(安祿山)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초형유요종비화(草螢有耀終非火) 하로수단기시주(荷露雖團豈是珠) 반딧불이 반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은 아니고, 연잎위의 이슬이 둥글기는 하지만 어찌 구슬이라 하겠는가? -- 백거이 <<방언오수>> 무릇 관계에서 윗자리로 오르려고 하는 자는 모두 담쟁이덩굴과 .. 2007. 5. 29.
양귀비(楊貴妃)의 죽음에 얽힌 몇 가지 의문점 756년, 안사의 난의 폭발했다. 일대의 절세미인 양귀비는 마외파(馬嵬坡)에서 생을 마쳤다. 2년후 양귀비의 묘를 팠는데, 양귀비의 사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설마 양귀비가 마외파에서 죽었다가 살아났단 말인가? 미스터리 1 “양귀비유체”에 대한 신당서와 구당서의 기재가 다르다. 신당서에서는 향주.. 2006. 12. 12.
강채평(江采萍) : 양귀비의 정적 양귀비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강채평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양귀비와 강채평은 당현종의 삼궁육원칠십이비중에서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던 정적이었다. 강채평은 매비(梅妃)라고 불리우며, 복건성 포전 강동촌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강중손(江仲遜)은 시서에 뛰어난 수재였고, .. 2006. 11. 3.
양귀비(楊貴妃)를 황후(皇后)에 봉하지 않은 이유는? 양귀비는 이름은 옥환(玉環)이고 호는 태진(太眞)이며, 현재의 섬서성 화양 사람이다. 양옥환은 대대로 관리를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의식주의 걱정은 없이 자랐다. 그녀는 아무런 걱정없이 금(琴)을 다루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지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인 환경속에서 자랐.. 2006.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