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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37

[황자쟁위술] 선참후주술(先斬後奏術) – 고천즉위패(告天卽位牌) 중국인들이 잘 쓰는 말 중에 “쌀이 익어 밥이 되었다(生米煮成熟飯)”, “나무로 벌써 배를 만들어 버렸다(木已成舟)”라는 말이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황제가 수도를 벗어나 도망쳐 있거나, 적군에 포로로 잡히는 등 황제로서의 권력을 정상적으로 행사할 수 없.. 2015. 7. 27.
영무즉위(靈武即位): 정교하게 포장된 황위찬탈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발발한 후, 낙양, 장안이 차례로 무너지고, 당현종은 황급히 "행촉(幸蜀, 촉 즉 사천으로 행차하다)". 장안을 떠나서, 태자 이형이 영무에서 즉위한 것을 알고 스스로 황위를 물려줄 때까지, 당현종은 계속 대당정부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장.. 2015. 2. 24.
이세민의 양숙비(楊淑妃)는 어떤 사람인가? 글: 이치아(李治亞) 이세민 부자가 대수(大隋)의 강산을 빼앗은 후, 전리품으로, 이세민은 다시 양광(楊廣)의 딸을 후궁으로 취한다. 그 양비의 몸에는 비록 황가의 혈맥이 흐르지만, 아주 겸허하게 지냈다. 어쨌든 그녀는 망국의 군주의 후손이므로 그녀의 일거일동은 문무대신들이 주목.. 2015. 2. 10.
조비연(趙飛燕)은 왜 평생 불임이었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역사적으로 "환비연수(環肥燕瘦)"라는 말이 있다. '연수'는 바로 한성제의 황후인 조비연을 가리킨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녀는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었다고 한다그래서, "미인이 말을 타면 말이 알지 못한다(美人上馬馬不知)"라고 형용한다. 조비연은 바로.. 2014. 10. 6.
이임보: 당현종과 양귀비를 연결시킨 막후인물 글: 복녕객(福寧客) 양귀비는 <신당서>, <구당서>에 모두 전(傳)이 있다. 그녀는 719년에 태어났는데, 이 해는 그의 미래 남편 이융기가 황제에 오른지 이미 7년째 되는 해이다. 아마 그 어느 누구도 그녀와 당현종 이융기가 부부로 맺어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양옥환은 .. 2014. 4. 29.
장당취한(贓唐臭漢)이라는 말은 왜 나왔는가? 글: 혜룡(惠龍) <홍루몽>을 읽은 사람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책에서 초대(焦大)가 장당(贓唐)을 욕한다: "배회(扒灰)할 자는 배회하고, 양소숙자(養小叔子)할 자는 양소숙자한다" '배회'는 당연히 당현종(唐玄宗)이 첫 손 꼽힌다. 양소숙자한 자도 있다. 안락공주(安樂公主)가 그 예.. 2014. 1. 15.
사대미녀는 어떻게 뽑았을까? 글: 이치아(李治亞) 중국의 전통적인 관념상 4대미녀는 바로 서시(西施), 초선(貂蟬),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이다. 현재 어떤 사람은 왜 무측천(武則天)이 4대미녀중 한 명에 들지 못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기실 이런 관념은 전통관념에 대한 도전이다. 무측천이 4대미.. 2013. 12. 21.
서태후와 치파오(旗袍) 글: 홍촉(洪燭) 1 홍콩,타이완의 여자배우중에서 장만옥(張曼玉)가 치파오에 가장 어울린다. 한때 유행했던 영화 <화양연화>는 여인과 치파오의 가장 경전적이고 가장 완벽한 결합이었다; 장만옥은 금사를 넣은 대홍(大紅)치파오를 입었고, 구상해(舊上海)의 유원소부(幽怨少婦)를 연.. 2013. 11. 10.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보낸 미녀는 서시가 아니었다 글: 유지혜(兪志慧) 한번은 동창모임이 있었는데 나의 한쪽은 소산구(蕭山區) 부구장이고, 한쪽은 제기시(諸暨市)의 선전부장이었다. 그들은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책을 내가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여, 나에게 물었다: 서시는 도대체 제기 사람인가, 아니면 소산 사람인가? 나는 난 내 .. 2013. 11. 10.
중국고대 미녀표준의 변천 글: 석불이(石不易) 1 여인이 예쁜 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남자가 결정한다. 그리고, 이 원칙은 고금이래로 바뀌지 않았다. 한 여인이 모든 여성친구들에게 예쁘다고 칭찬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낯선 남자 한 사람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것만 못하다. 현재의 남성은 여자들이 약간 마른 .. 2013.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