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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37

이세민의 양숙비(楊淑妃)는 어떤 사람인가? 글: 이치아(李治亞) 이세민 부자가 대수(大隋)의 강산을 빼앗은 후, 전리품으로, 이세민은 다시 양광(楊廣)의 딸을 후궁으로 취한다. 그 양비의 몸에는 비록 황가의 혈맥이 흐르지만, 아주 겸허하게 지냈다. 어쨌든 그녀는 망국의 군주의 후손이므로 그녀의 일거일동은 문무대신들이 주목.. 2015. 2. 10.
조비연(趙飛燕)은 왜 평생 불임이었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역사적으로 "환비연수(環肥燕瘦)"라는 말이 있다. '연수'는 바로 한성제의 황후인 조비연을 가리킨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녀는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었다고 한다그래서, "미인이 말을 타면 말이 알지 못한다(美人上馬馬不知)"라고 형용한다. 조비연은 바로.. 2014. 10. 6.
이임보: 당현종과 양귀비를 연결시킨 막후인물 글: 복녕객(福寧客) 양귀비는 <신당서>, <구당서>에 모두 전(傳)이 있다. 그녀는 719년에 태어났는데, 이 해는 그의 미래 남편 이융기가 황제에 오른지 이미 7년째 되는 해이다. 아마 그 어느 누구도 그녀와 당현종 이융기가 부부로 맺어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양옥환은 .. 2014. 4. 29.
장당취한(贓唐臭漢)이라는 말은 왜 나왔는가? 글: 혜룡(惠龍) <홍루몽>을 읽은 사람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책에서 초대(焦大)가 장당(贓唐)을 욕한다: "배회(扒灰)할 자는 배회하고, 양소숙자(養小叔子)할 자는 양소숙자한다" '배회'는 당연히 당현종(唐玄宗)이 첫 손 꼽힌다. 양소숙자한 자도 있다. 안락공주(安樂公主)가 그 예.. 2014. 1. 15.
사대미녀는 어떻게 뽑았을까? 글: 이치아(李治亞) 중국의 전통적인 관념상 4대미녀는 바로 서시(西施), 초선(貂蟬),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이다. 현재 어떤 사람은 왜 무측천(武則天)이 4대미녀중 한 명에 들지 못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기실 이런 관념은 전통관념에 대한 도전이다. 무측천이 4대미.. 2013. 12. 21.
서태후와 치파오(旗袍) 글: 홍촉(洪燭) 1 홍콩,타이완의 여자배우중에서 장만옥(張曼玉)가 치파오에 가장 어울린다. 한때 유행했던 영화 <화양연화>는 여인과 치파오의 가장 경전적이고 가장 완벽한 결합이었다; 장만옥은 금사를 넣은 대홍(大紅)치파오를 입었고, 구상해(舊上海)의 유원소부(幽怨少婦)를 연.. 2013.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