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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현종)

당현종 이융기는 왜 하루동안에 3명의 황자를 폐했는가?

by 중은우시 2012. 12. 22.

글: 양영춘(梁迎春) 

 

개원25년, 천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태자(太子) 이영(李瑛), 악왕(卾王) 이요(李瑤), 광왕(光王) 이거(李琚)를 이모(異謀)라는 죄명을 받아 황제 이융기에 의하여 폐위되고 서인이 되어 궁안의 동성에 갇힌다. 반달도 지나지 않아, 이융기는 세 아들을 모두 사사한다. 이 '이모'라는 죄명은 정말 기이하기 그지없다. 세 명의 황자에는 태자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부친인 황제가 아들을 죽일 정도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단 말인가?

 

사건은 돌연하게 발생했고, 당현종 이융기도 의외였을 것이다. 당시 총애를 받고 있던 무혜비(武惠妃)가 당현종에게 고한다: "태자와 두 왕이 모반을 꾀하고 있으며 속에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융기는 즉시 내시를 보내어 확인해보았더니 무혜비의 말이 맞았다. 현종은 대노하여 즉시 이영, 이요, 이거를 폐위시키고 서인으로 만든다. 이 사건은 영향이 너무 컸다. 하룻만에 세 명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거기에 태자까지 포함되었으므로 조정이 발칵 뒤집힌다. 그러나, 황제가 너무 단호하여 감히 태자를 위하여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저 암중으로 구해줄 방안만 찾았다.

 

그러나, 이것은 무혜비가 파놓은 함정이었다. 세 명의 천진한 황자들은 손쉽게 속아넘어간 것이다. 먼저 무혜비에 대하여 얘기해보자. 그녀는 원래 궁중의 보잘것 없는 궁녀에 불과했다. 하급의 잡일을 처리했다. 어릴 때 무측천이 궁중으로 불러들였다. 세상의 감정은 이렇게 기이하다. 이융기는 무씨자손을 주살하였는데, 궁중에서 단아하고 아름다운 무혜비를 발견하고는 첫눈에 반해버린다. 이틀 후에 후궁으로 들인다. 그러나 이 무혜비가 독사일줄은 아마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태자 이영에 대하여 얘기해보자. 그는 현종이 번왕으로 있을 때 총애하는 여인인 조여비(趙麗妃)의 소생이다. 현종이 즉위할 때 이미 30살이었다.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당현종이 아주 좋아했다. 무혜비의 출현으로 조여비는 점점 현종의 총애를 잃어간다. 이영은 모친이 자주 무혜비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분을 참지 못했고 몰래 뒤에서 화풀이를 했다. 그러나 이런 소식이 무혜비의 귀에 들어가자 상황은 달라지낟. 그녀는 당현종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 호소한 바 있다: "태자가 일당을 모아서 우리 모자를 해치려 합니다." 이융기는 처음에 믿지 않았다. 게다가 왕황후가 궁중에서 위신이 있었고, 조여비를 좋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이융기는 무혜비가 하는 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왕황후는 이융기가 임치왕으로 있을 때의 본부인이다. 이융기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위씨와 태평공주를 죽일 때 그녀가 이융기를 많이 도와주었다. 후궁도 잘 관리했기 때문에, 이융기는 조정의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무혜비는 조용하게 후궁을 관찰한 후, 만일 후궁내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으려면 왕황후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은 출신이 미천하여, 자신의 지혜로 황제의 환심을 살 수밖에없었다. 그리하여 황족인원들과 가까이 지내고, 이임보는 금방 그녀의 사림이 된다. 무혜비는 이융기의 총애를 받은 후 귀여운 함의공주(咸宜公主)를 낳고, 다음 해에는 잘생긴 이모(李瑁)를 낳는다. 그리고 이 이모가 바로 양씨집안의 양옥환(楊玉環)과 결혼한다. 양옥환은 나중에 그 유명한 양귀비(楊貴妃)이다.

 

왕황후의 남동생인 왕수일(王守一)은 누나가 무혜비에게 억눌리고 있는데 불만을 품고 방문좌도의 방법을 강구하여 저주를 한다. 나무로 사람을 깍았다. 그러다가 고발을 당한다. 당현종은 그를 서인으로 강등시켰다. 왕황후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게 되었고, 역시 서인으로 강등되고, 나중에 우울증에 빠져 죽는다. 곧이어 조여비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어버린다. 태자 이영은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자주 이요, 이거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무혜비를 언급했다. 무혜비는 후환을 없애기 위하여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녀의 딸인 함의공주를 보내어 그들과 함께 술마시고 놀게 하면서 그들의 허실을 탐지한다.

 

하루는 이영이 이요, 이거와 술을 마셔서 만취해 있을 때, 무혜비가 그들 3명에게 궁안에 도적이 침입했다고 말하며, 세 사람에게 갑옷을 차려입고 궁을 호위하여 황제를 보위하라고 할한다. 세 황제는 그 말을 사실로 믿고 그말대로 따랐다. 그 결과 첫머리에 언급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세 황자는 감옥에 들어갔고, 친구와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구명활동을 벌인다. 무혜비는 그 모습을 보고는 풀을 뽑으려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다시한번 이융기에게 무고한다. 이융기는 자신의 사례를 되돌아보며 세 아들이 정말로 반란을 꾀했다고 생각하여 살심을 품는다. 그들이 폐위된지 반달도 되지 않아 세 아들을 사사하도록 명령하게 된다.

 

이제 무혜비는 아들 이모를 태자로 올리고, 자신이 황후에 오르는 길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하여 항상 꿈속에서 세 황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얼마후 그녀는 정신이상이 되어, 세 황자가 폐위된지 7개월만에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황후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 사건에 이융기에게 미친 영향은 너무나 컸다. 후궁이 불안하면 조정의 기강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황후를 다시는 세우지 않기로 결정한다. 양귀비에게도 황후의 명호를 주지 않았다. 이를 보면 이융기가 이때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