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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114

건륭제는 왜 재덕을 겸비한 황십일자(皇十一子) 영성(永瑆)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았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강희제 말년의 구자탈적(九子奪嫡)과 비교하면, 건륭제 말년의 후계자선택은 범위가 넓지 않았다. 그가 너무 오래 살아서, 대다수의 황자는 이미 사망했다. 17명의 황자들 중에서 겨우 4명만 남았다. 바로 황팔자(皇八子) 영선(永璇), 황십일자 영성, 황십오자 영염(永琰) 그리고 황십칠자 영린(永璘)이다. 이 네 명의 황자들 중에서, 황팔자 영선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고, 황십칠자 영린은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후계자에서 제외된다. 결국 남는 것은 영성과 영염의 두 황자이다. 재능으로 따지면 영성은 서화(書畵)에 모두 뛰어났다. 옹방강(翁方綱), 유용(劉鏞), 철보(鐵保)와 함께 건륭조 4대서예가로 꼽힐 정도이다. 명실상부한 대재자(大才子)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재.. 2021. 2. 7.
건륭의 천수연(千叟宴)이 실패작으로 끝난 이유는...? 글: 연의적서자호(漣漪的西子湖) 중국고대의 수천년 역사상 수백명의 황제가 나타났다. 그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던 황제는 강희제(康熙帝)이다. 그의 재위기간은 61년에 달한다. 강희제 본인도 자부심이 컸다. 그는 일찌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한이래 황제를 칭한 자는 일백 구십하고도 셋이다. 재위기간이 짐만큼 오래인 경우는 없었다." 강희제는 이를 축하할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60세생일이 되는 해에, 천수연을 연다. 천하의 모든 65세이상의 노인을 모셔서 연회를 펼친 것이다. 역사상 강희제는 무슨 '호대희공(好大喜功)'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8살에 등극했고, 아오바이(鰲拜)를 체포하고, 삼번(三藩)을 평정하였으며, 정성공을 격패시키고, 갈단을 토벌했다. 그는 여러 곤란을 겪으며 극복해.. 2020. 8. 24.
심하고보군(沁河古堡群): 북방제일문화거족지택(北方第一文化巨族之宅) 글: 손량전(孫亮全) 일찌기 선진(先秦)시기의 에는 산서(山西)라는 이 지역을 "표리산하(表裏山河)"라고 표현했다. 안에는 높은 산이 있고, 밖에는 큰 강이 있다는 것이다. 산과 강의 천험(天險)이 병풍역할을 한다. 황토고원의 동족에 있는 산서의 가장 동쪽은 동북방향으로 이어지고 다시 남으로 뻗어나간 태행산맥(太行山脈)이 있고, 서부는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여량산맥(呂梁山脈)이 있다. '좌수일지시태행(左手一指是太行), 우수일지시여량(右手一指是呂梁)" 두 개의 산맥 사이에 동북에서 서남으로 뻗은 분지에서 분하(汾河)는 북에서 남으로 흘러, '양산협일천(兩山夾一川)" 두 산이 강 하나를 끼고 있는 독특한 지형의 면모를 보인다. 이 '양산일천'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로 물길이 거센 황하(黃河)이다. 산서는.. 2020. 7. 10.
건륭제는 왜 자질이 평범한 가경제를 후계자로 선택했을까?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가경제(嘉慶帝)는 청나라의 제7대황제이다. 가경제는 청나라역사상 비교적 평범한 황제이다. 재위기간동안 특별한 업적도 없고, 그 이후부터 청나라는 쇠락기에 접어든다. 가겅제는 이처럼 평범했는데, 왜 건륭제(乾隆帝)는 그를 후계자로 삼아서 황위를 잇게 하.. 2020. 3. 3.
왜 청나라의 황후들은 곤녕궁(坤寧宮)에 거처하지 않았을까? 글: 역사순간(歷史瞬間) 항간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청나라때 황후가 곤녕궁에 거처하지 않은 것은 망자(亡者)의 회기(晦氣), 즉 죽은 사람의 나쁜 기운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나라 숭정제(崇禎帝)의 주황후(周皇后)는 이곳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 기실 청나라가.. 2020. 2. 26.
광서제의 비극: 동년, 사업 그리고 애정 글: 풍현일(馮玄一) 광서제는 청나라의 제11대황제이다. 그의 이름은 애신각라 재첨(載㵇)인데, '첨'자는 물리 조용히 흐르는 모습을 가리킨다. 그의 성격과는 아주 잘 들어맞는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화상(畵像)을 보면, 그는 문약하고 청수(淸秀)한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준수한 얼굴 .. 2020. 1. 16.
시진핑이 말한 "도화원중인(桃花源中人)"의 의미는....? 글: 왕혁(王赫) 1월 8일, 중국공산당은 "불망초심(不忘初心), 뇌기사명(牢記使命)"주제의 교육총결대회를 소집개최했다. 시진핑은 연설에서 전체 당에 이런 말을 했다: "여시구진(與時俱進)해야 하며, '부지유한(不知有漢), 무론위진(無論魏晉)'의 도화원중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시진핑이 .. 2020. 1. 13.
낭세녕(郎世寧): 중국에 51년간 머문 이탈리아화가 글: 희랄인(嘻剌人) 낭세녕은 청나라의 유명한 궁중화가이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낭세녕의 대명을 오랫동안 앙모하여 왔다. 나이가 들면서, 청나라황제의 배경에 대하여는 더 잘 알게 되었지만, 낭세녕에 대한 이해는 그저 "서양에서 온 궁중화가"라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청나라때 궁.. 2019. 6. 8.
"만한불통혼(滿漢不通婚)" 글: 살사(薩沙) 청나라는 약사상 민족압박정책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다툼이 없다. 가장 현저한 즈거는 바로 통치자가 규정한 '만한불통혼'즉 만주족과 한족은 혼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정책은 200년간 실행되다가 1902년에 비로소 폐지된다. 1902년 1월 31일, 광서제는 '만한불통혼'의 금.. 2019. 2. 1.
중국본토와 대만간의 7차례 전투 글: 양녕양경(兩寧兩京) 제1차전투 삼국시대, 오나라의 군주인 손권(孫權)은 중원의 잔혹한 투쟁에서 벗어나, 이미 해상으로 발전을 시작했다. 227년, 손권은 동치(東治, 지금의 하문)에서 원해작전이 가능한 수군을 훈련시키고, 대형전선 수백척을 건조한다. 230년, 손권은 위온(衛溫), 제갈.. 2019.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