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점문사(起點文史)
강희제 말년의 구자탈적(九子奪嫡)과 비교하면, 건륭제 말년의 후계자선택은 범위가 넓지 않았다. 그가 너무 오래 살아서, 대다수의 황자는 이미 사망했다. 17명의 황자들 중에서 겨우 4명만 남았다. 바로 황팔자(皇八子) 영선(永璇), 황십일자 영성, 황십오자 영염(永琰) 그리고 황십칠자 영린(永璘)이다.
이 네 명의 황자들 중에서, 황팔자 영선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고, 황십칠자 영린은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후계자에서 제외된다. 결국 남는 것은 영성과 영염의 두 황자이다.
재능으로 따지면 영성은 서화(書畵)에 모두 뛰어났다. 옹방강(翁方綱), 유용(劉鏞), 철보(鐵保)와 함께 건륭조 4대서예가로 꼽힐 정도이다. 명실상부한 대재자(大才子)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재자'는 황제에 적합할까? 왕왕 아닌 경우가 많다.
재자는 문예창작에서는 뛰어나다. 그러나 성격이 지나치게 고괴(古怪)하거나, 연약하고 겁이 많거나, 감성적이어서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혹은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거나, 성격이 괴팍하여 화를 잘 내거나, 고집이 세서 꺽이지 않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된다.
재자가 황제에 오르면 성공한 경우가 아주 적다. 실패한 경우는 아주 많다. 당현종 이융기, 남당후주 이욱, 송휘종 조길등등이 있다. 모두 전철이 된다. 그래서 건륭제는 영성을 포기하고 영염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확실히 역사에서 교훈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영성은 재자이고, 한문화에 아주 심취해 있어서, 한화정도가 심했다. 말을 탈 줄도 모르고, 활을 쏠 줄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철저히 문약한 서생 사대부에 동화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건륭제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건륭제가 전세명화에 자신의 도장을 찍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만 봐서는 안된다. 또한 타유시(打油詩)를 짓기를 즐기고, <사고전서>를 편찬하게 하고, 6번이나 남순을 하여 강남지방을 유람했다는 것만 봐서는 안된다. 이는 많은 정도에서 한족 사대부를 회유하기 위한 수단이다. 실제로 그 자신은 날로 심해지는 한화에 경계심을 가졌다. 그는 만주귀족이 한족사대부에 동화되어 점점 말타고 활쏘는 생활과 강건하고 무를 숭상하는 성격을 잃게 되어 근본을 잊고 무기력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중원의 통치권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건륭제는 한족사대부의 분위기에 동화된 만주귀족들을 싫어했다. 영성은 바로 이 점에서 건륭제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건륭제는 당연히 영성을 후계자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외에 영성은 또 하나의 결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색하고 각박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보면 그는 군자의 도량이 없었다고 보인다.
황자로서, 영성의 경제상황은 분명 일반 백성들이나 대신들보다 좋았다. 다만 그는 아주 인색하고 각박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재물을 목숨처럼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의 처이 푸차씨(富察氏)에 아주 가혹했다. 푸차씨는 푸헝(傅恒)의 딸이다. 명문대가 출신이다. 그러나 그녀가 시집을 오자마자, 가져온 재산을 모조리 영성에게 빼앗겨 버린다. 그후 그녀는 베옷을 입고, 형편없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그리고, 영성의 왕부에서 말이 한 마리 죽었다. 영성의 인색한 성격이 다시 드러난다. 그는 죽은 말을 그냥 내버리기 아까워해서, 말고기를 요리해서 왕부의 사람들에게 먹인다. 말 한 마리로 3일이나 먹었다. 건륭이 그 소식을 들은 후, 화가 나서 기절할 정도였다. 황실의 체면을 모조리 내팽겨쳤다고 질책한다. 그러나, 영성은 여전히 하던대로 한다. 건륭제는 이런 자라면 죄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임금의 그릇은 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영성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생각을 접게 된다.
황십오자 영염을 보면, 활쏘기나 말타기, 아니면 시사가부나 치국능력에서 그는 모두 두드러진 점이 없다. 그는 잘 해야 평범했고, 그저 평안하고 온건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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