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천안문사태때 진압명령을 내린 핵심인물은......?
글: 일진천설(一眞濺雪) 1986년말, 베이징, 상하이, 허페이...등지의 대학생들은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학생들은 탐관오리의 부패를 처벌하고, 정치체제개혁을 진행하고, 민주, 자유를 실현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당과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등소평과 그 주위의 완고한 원로들은 등소평의 추종자들인 리펑, 천시통같은 자들과 함께 학생들의 행위는 국외반중세력의 책동에 의한 반당, 반사회주의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당시 당중앙주석을 맡고 있던 후야오방등 당내의 개혁파들은 학생들의 행위를 애국행위로 보았다. 그들의 많은 요구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을 정확하게 인도하고, 설명하고 소통하여 갈등을 해소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보았으며, 학생들에 대한 무력진압에 반대했다..
2021. 10. 27.
칠종칠금(七縱七擒)(II): 맹획은 남만의 오랑캐가 아니다.
글: 의사리(衣賜履) 건흥3년(225년)의 봄날, 제갈량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남하한다: 문하독(門下督), 파서군(巴西郡, 사천성 낭중시)사람인 마충(馬忠)이 장가군(牂牁郡, 귀주성 복천현)을 공격하고, 내항도독(庲降都督) 이회(李恢, 이때의 이회는 평이현에 주둔하고 있었고, 평이현은 장가군 소속이며 귀주성의 필절시이다)은 익주군을 공격하고, 제갈량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수로를 통해 월전군(越嶲郡, 사천성 서창시)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건위군태수이자 광한 사람인 왕사(王士)를 익주군태수로 임명한다. 오랑캐왕 고정(高定)은 모우현(旄牛縣, 사천성 한원현 동북), 정작현(定筰縣, 사천성 염원현), 비수현(卑水縣, 사천성 소각현)의 일선을 따라서 내려오며 많은 보루에 주둔시켰다. 제갈량은 고정의 인마가 ..
2021. 10. 25.
위,촉,오 삼국의 승상제도는 어떻게 달랐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삼국이 정립된 후, 가장 먼저 건국하여 황제를 칭한 위(魏)는 승상을 두지 않는다. 그후에 건립된 촉(蜀)과 오(吳)는 처음부터 승상을 둔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오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상을 두었지만, 촉한은 제갈량이후에 더 이상 승상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위나라. 건안13년 조조가 승상에 오른다. 건안18년에 이르러 조조는 위공(魏公)이 되고, 기주(冀州)내의 10군은 그의 봉지가 된다. 두달 후, 조조는 위나라의 종묘사직을 건립하고, 십일월에 이르러, 상서(尙書), 시중(侍中)과 육경(六卿)을 설치한다. 원래 건안연간에, 조정백관은 모두 조조의 말을 들었고, 승상이 되었으며, 승상부를 두며, 모든 정령은 승상부에서 나왔다. 조조..
2021.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