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릉지전(夷陵之戰)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이릉지전은 동한말기 3대전투중 하나이고, 또한 최후의 대형전투이다. 이 전투이전에 촉한과 동오의 합작관계는 육손이 관우를 기습함으로써 끝났다. 쌍방은 전우에서 적이 된 것이다. 조위는 그래서 잠시 숨돌릴 기회를 갖느다. 촉한은 이 전투에서 일패도지했고, 명장과 정예병사들의 손실이 참혹했다. 이릉지전을 시작하기 전에, 동오는 위에서 아래까지 촉한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육손이 한 행위는 군자의 행동은 아니었다. 동맹국이 적국과 싸우는 틈을 타서, 힘을 보태지 않는 것 정도라면 몰라도, 오히려 등뒤에서 칼질을 했다. 그리하여 관우, 관흥 부자는 피살되고, 유비, 유봉부자는 멀어졌으며, 맹달이 촉한에 투항하고, 더더욱 간접적으로 장비의 죽음을 가져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2021. 2. 27.
아편전쟁때 청군과 영국군의 진실한 사상자 숫자는...?
글: 문방장거(文房掌柜) 제1차 하문지전(厦門之戰): 1840년 7월 3일 청군 전사 9명, 부상 16명. 영국군 사상자 없음. 제1차 정해지전(定海之戰): 1840년 7월 5일 청군 전사 13명, 부상 13명, 영국군 사상자 없음 (청군참전병력 1540명, 정해총병 장조발(張朝發)은 부상을 입은 후 사망했고, 정해지현 요회상(姚懷祥)은 자결함. 대각사각지전(大角沙角之戰): 1841년 1월 7일, 영국군은 정면포격을 선택하고, 육군은 측면에서 포위공격하는 전술을 쓴다. 청군은 277명이 전사하고, 중상을 입고 사망한 자가 5명, 부상 462명이다. 영국군은 부상 38명이다. 청군의 부장(副將) 진련승(陳連昇), 좌령(佐領) 유륭(裕隆, 만주족)이 전사하다. 호문지전(虎門之戰): 청군총병력 11,000명,..
2021.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