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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1389

열국(夨國): 서북에 존재했던 수수께끼의 국가 글: 소연부독서(召燕不讀書) "보천지하(普天之下), 막비왕토(莫非王土), 솔토지빈(率土之濱), 막비왕신(莫非王臣)"(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고, 땅 위에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 이는 역사학자들이 서주(西周)시대를 개괄한 말 중에서 가장 적절한 말이다. 그 의미는 주왕조의 통치범위내에 모든 사람은 주나라천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칭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치대로라면 일반적으로 다른 어느 사람도 '왕'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 그랬을까? 섬서성(陝西省) 농현(隴縣)에는 서주의 도성에서 10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열왕(夨王)"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동기(銅器)가 나왔다. 이는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럼 서주시기에 감히 '왕'을 칭할 담량을 .. 2023. 5. 22.
대청의 흠차대신(欽差大臣)이 어린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만나다. 글: 왕정(王丁) 1877년 초여름의 어느 일요일 오후, 청나라의 주영공사관(駐英公使館)의 일행 4명이 러셀 공작의 집을 방문한다. 나중에 이 방문에 참가했던 사람중 3명이 기록을 남기는데, 각각 정부(正副) 흠차대신인 곽숭도(郭嵩燾),유석홍(劉錫鴻)과 통역관 장덕이(張德彛)이다. 어린 러셀이라 함은 바로 나중에 대철학가로 195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다. 그는 일찌기 2차례에 걸쳐 영국수상을 맡은 John Russell 공작의 둘째손자이다. 중문으로 번역된 외국사람의 이름이 기이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린 버트런드 러셀을 만난 내용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하여 그 이야기를 알리고 근대대외교류과정에서 러셀과 중국의 인연에 대하여 하나의.. 2023. 5. 20.
발해(渤海)와 일본(日本)의 해상교류 글: 송정(宋靖) 발해국(698-926)은 '해동성국'으로 불리웠고, 나라는 200여년간 존속하면서, 동북아 여러 나라, 지역과 문화 및 경제교류를 진행했다. 발해국은 동북아에서 중요한 항구를 보유하고 있었고, 해상교통로를 통하여 발해국 남경(북한 함경남도 북청군의 청해토성(靑海土城))에서 출발하여 직접 신라로 가고, 다시 일본으로 갔다; 발해국 동경(지금의 길림성 훈춘시 팔련성. 일설에는 북한 부거리)에서 출발하여, 직접 일본으로 갔다. 대일항로는 비교적 안전했다. 발해국은 강역이 동해에 닿았고, 5개의 교통간선중 하나로서 일본도(日本道)는 발해의 제2대왕인 대무예(大武藝, 718-737)시기부터 개척되었다. 그때 일본은 신라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일부러 발해와 '친인결원(親仁結援)'의 우호관계를 건립.. 2023. 5. 19.
왜 이전에는 장진호(長津湖)전투를 꺼내지 않았을까? 작자: 운(雲) 한국대통령 윤석열이 4월 27일 미국의회에서 연설하면서, 미국해병대가 1950년 장진호전투에서의 공헌을 찬양했다. 윤석열의 연설은 장진호전투를 다시 한번 조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장진호전투에 관해서 몇가지를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첫째, 왜 이전에는 장진호전투를 꺼내지 않았을까? 10년전 대륙에서는 기본적으로 장진호전투를 꺼내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은 장진호전투를 몰랐다. 이건 무엇때문이었을까? 먼저 유백승(劉伯承) 원수가 장진호전투에 대하여 평가한 말을 들어보자: "하나의 병단(兵團, 3개軍)이 한개 사단을 포위해서, 거대한 댓가를 치른 후에도 적을 섬멸하지 못하고, 적을 궤멸시키지도 못했다. 적은 편제를 갖추어 전투에서 철수했고, 모든 장비와 부상병까지 데려갔다." 유백승 원수.. 2023. 5. 18.
주은래(周恩來)와 유소기(劉少奇)의 암중각축(暗中角逐) 글: 고문겸(高文謙) 1966년 8월 5일, 모택동은 에서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어조로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유소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반동의 부르조아계급입장에 서서, 부르조아계급독재를 실행하여,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거대한 문화대혁명운동을 탄압하고, 시비를 전도하고, 흑백을 혼동하며, 혁명파를 토벌하고, 다른 의견을 억누르며 백색공포를 실행하며 스스로 득의하며 부르조아계급의 위풍을 키우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뜻을 꺽었다. 어찌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 모택동은 글에서 1962년 조정시기의 소위 '우경'문제를 연결시켜, 기세등등하게 유소기와 최종대결을 벌이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모택동의 이 글은 그후 전체회의에 인쇄되어 배부되어, 회의참석자들이 유소기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전체회의는 바로 .. 2023. 5. 18.
정화(鄭和)는 미주대륙을 발견했을까? 글: 범금민(范金民) 2002년 3월, 영국의 퇴역장교인 개빈 맨지스(Gavin Menzies)는 1421년 정화함대가 미주대륙을 발견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견해가 나오자 석파천경(石破天驚, 천지가 찢어지는 듯한 굉읍에 사람들이 놀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깜짝 놀라다라는 의미임)처럼 세계를 뒤흔들었다. 학계에서는 정화함대가 가장 멀리 어디까지 갔을까에 대하여 다시 한번 연구붐이 일어난다. 그해 10월, 맨지스는 미국에서 그의 저작 를 출판한다. 2003년 11월, 타이페이의 위안류(遠流)출판사업주식유한공사가 바오자칭(鮑家慶)이 번역한 중문본을 출판한다. 중문본의 겉표지에는 이런 광고문구가 붙어 있었다: "폭발적인 내용, 기존의 인식을 뒤집다. 역사를 고쳐쓸 수 있는 놀아운 작품 과거의 역사교과.. 2023.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