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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1394

"연(燕)": 팔백년 제후국... 글: 최애역사(最愛歷史)​기원전 318년, 한 국군(國君)이 퇴위를 결정한다.​연(燕)나라는 중원의 동북에 위치하고, 계(薊, 지금의 북경 방산구)를 수도로 하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였다. 위치가 구석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중원, 관중지구에서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던 제후국들은 영토쟁탈전을 벌일 때 이 구석진 국가는 기본적으로 생각지 않고 있었다.​그러나, 천하에게 잊혀진 연나라는 천하를 잊지 않고 있었다.​국군의 지위가 희쾌(姬噲)"의 손에 들어왔을 때, 상고의 성왕인군(聖王仁君)을 본받기 위해, 재위기간이 3년도 되지 않는 그는 천하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결정을 내린다: "과인은 현명한 사람에게 국군의 자리를 양보하고자 한다. 국군을 안하겠다! 이후 국가의 대소사는 모두 승상 자지(子之)가 .. 2025. 2. 28.
"내무부(內務府)": 청나라의 가장 강력한 기구 글: 한림냉지식(翰林冷知識)​청나라의 관제(官制)중에 이런 기구가 있다. 총관(總管)은 반드시 만주인이 맡아야 하며, 한번도 한인(漢人)이 맡은 바가 없다.​대명이 자자한 납란명주(納蘭明珠), 연희요(年希堯), 부항(傅恒), 복륭안(福隆安), 복장안(福長安), 화신(和珅), 풍신은덕(豊紳殷德), 숙순(肅順), 문상(文祥)같은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장친왕(莊親王) 윤록(胤祿), 질친왕(質親王) 영용(永瑢), 공친왕(恭親王) 혁흔(奕訢)까지도 이 기구의 총관을 맡은 바 있다.​이런 것만 보더라도 이 기구가 절대로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뿐아니라, 나중에는 심지어 황제를 기만하기까지 했다. ​이 기구는 바로 내무부(內務府)이다. 전칭은 "총관내무부(總管內務府)"이다.. 2025. 2. 27.
미중교섭사(美中交涉史): "안평사건(安平事件)" 글: 사로(思蘆)​라는 옛날 영화를 기억하는가?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은 국공내전(國共內戰)중의 안평사건(安平事件)이다. 영화의 주장은 이러하다: 1946년 미국의 마샬장군이 국공간의 정전을 조정하기 위해 중국으로 왔다. 다만 미국은 암중으로 장개석을 지지하며 평화협상을 깨트려버린다. 미국의 해병대 비첼 소령은 미군과 정부군을 이끌고 해방구인 안평진(安平鎭)을 습격한다. 그러나 중공군대에 의해 격퇴당하고, 쌍방은 모두 사상자를 낸다. 사건발생후, 미국과 중곡은 공동조사팀을 안평으로 보내어 조사를 벌인다. 미군과 장개석이 증거를 위조하다가 중공에 발각되어 명예가 바닥에 떨어진다. 영화에서는 미군과 장개석이 중국의 내전을 도발했고, 유언비어를 퍼트렸으며, 그리하여 중공은 어쩔 수 없이 자위를 위해 반격했으며,.. 2025. 2. 26.
"석륵(石勒)": 노예에서 황제까지, 중국역사상 유일한 인물 글: 최애역사(最愛歷史)​왕연(王衍)과 석륵(石勒)이 처음으로 서로 스쳐지나쳤는데, 하마터면 역사가 바뀔 뻔했다.​그때는 진무제(晋武帝) 태강9년(288년)의 평범한 어느 날이었고, 15살짜리 석륵은 마을의 부자 곽경(郭敬)을 따라 낙양(洛陽)으로 말을 팔기 위해 갔다. ​당시 그의 이름은 석륵이 아니었다. 서진(西晋) 초기, 새외(塞外)지역은 가뭄과 장마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살기 어려워진 갈족(羯族)은 큰 강물을 따라 내려와 병주(幷州)일대로 옮겨올 수밖에 없었다. 석륵의 일가도 그러했다. 비록 그는 갈족 부락의 우두머리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석륵은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다. 부르기 편하도록, 집안사람들은 그에게 아명을 지어주었는데 매일 "아배(阿㔨)"라고 불렸다.​갈족의 힘들기 그지없는 생.. 2025. 2. 20.
북송 "모요안(帽妖案)": 정사(正史)에 기록된 UFO사건일까? 글: 뇌동오탁방(腦洞烏托邦)​송진종(宋眞宗) 천희2년(1018년) 오월, 낙양고성(洛陽古城)은 사상유례없는 공포에 휩싸였다.​하나의 괴이한 소문이 도시 구석구석까지 퍼진다: 한 시민이 밤중에 모양이 밀집모자(席帽)같은 요물이 공중을 떠다녔고, 이 요물은 하늘을 날아다닐 뿐아니라, 땅으로 내려와서는 견랑(犬狼)으로 변신해 사람을 해친다는 것이다.​시민들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모두 삽같은 물건을 무기로 삼아 대비하였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저명한 북송의 "모요안(帽妖案)"이다.​이 사건은 정사에 기록된 고대의 UFO목격사건일까? 아니면 인위적인 귀신놀음이었을까? 모요안은 또 어떻게 요란한 "엽요(獵妖)"행동으로 옮아가게 되었을까? 심지어 하마터면 북송의 정변까지 일으킬 지경에 처했을까? 오늘은 이 .. 2025. 2. 19.
서로군(西路軍)의 전멸은 누구의 책임인가? 글: 조대부화실(趙大夫話室)​어릴 때 본 영화가 있는데, 라는 제목이었고, 기억하기로 니핑(倪萍)등이 주연을 맡았다. 그 비장한 장면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서로군(西路軍)은 중공당사에서 거의 '비장(悲壯)'의 대명사가 되었다. 1936년 10월, 홍사방면군(紅四方面軍)의 2만여명(당시 홍군총수의 거의 절반에 상당함)이 서쪽으로 황하를 건너고, 나중에 "서로군"으로 명명된다. 150여일동안 이 군대는 하서주랑(河西走廊)에서 거의 전멸하고, 최종적으로 겨우 서향전(徐向前), 이선념(李先念)등만이 생존한다.​이는 일찌기 언급하기 꺼렸던 역사이고, 오랫동안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중공군사에서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 대하여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라고 적고 있을까? 모택동(毛澤東) 아니면 장국도(張國濤)?​모.. 202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