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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

양면인물 유석홍(劉錫鴻): 군주제가 만들어낸 비극

by 중은우시 2018. 12. 4.

글: 연비(燕飛)


이 편은 <유학자 곽숭도는 왜 매국노라 불리웠을까?>이 자매편이다. 그 글에서는 곽숭도를 썼고, 이 글에서는 유석홍을 쓴다.


곽숭도에 대한 글을 읽어본 사람들이면 유석홍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직 읽어보짐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먼저 곽숭도에 관한 글에서 유석홍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해보기로 한다:


"곽숭도가 파면된 것은, 그가 감히 직언을 하고, 감히 솔직하게 말하였다는 것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부수(副手)의 대거 공격때문이다. 곽숭도가 사신으로 영국에 갔을 때 부사는 유석홍이다. 그는 기실 청나라조정이 대신을 통제하려는 목적에서 곽숭도를 감시하라고 파견한 것이다. 전제권력구조에서 이런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법가의 권모술수이다


부사로서 유석홍은 계속하여 청나라정부에 곽숭도에 관한 '정보'를 보고한다. 예를 들어, 한번은 포대를 참관하면서, 날씨가 갑자기 변해서 돌연 비가 내렸다. 따라왔던 한 영국인이 자기의 외투를 곽숭도에게 덮어주었다. 유석홍은 '설사 얼어죽더라도 입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브라질국왕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곽숭도는 초청을 받아 브라질대사관이 거행하는 다회(茶會)에 참석한다. 브라질국왕이 입장할 때, 곽숭도는 사람들을 따라 같이 일어섰다. 이것은 원래 가장 기본적이 예절이자 에티켓이다. 그러나 유석홍은 국가의 체통을 잃은 행위라고 보았다. 그래서 '당당한 천조에서 어찌 소국의 군주에게 경의를 표한단 말인가'라고 한다.


중국대사관인원이 영국여왕의 버킹검궁전에서의 음악회에 참석했을 때, 곽숭도는 일찌기 음악프로그램을 뒤져보았다. 유석홍은 이것도 서양인을 모방한 행위여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가장 개탄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유석홍은 한편으로 공개적으로 곽숭도를 질책하지만, 사적으로는 그도 서방사회에 대한 견해가 실은 곽숭도와 같았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곽숭도보다 더욱 '반동'적이었다. 더욱 소위 '매국노'에 닮아있었다.


예를 들어, 유석홍은 일찌기 국내의 친하게 지내는 친구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방사회는 '인의의 극단이다' 우리 중국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서방인들은 기실 인의도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일본공사가 왔는데, 식사를 하면서 곽숭도, 유석홍과 한담을 나누었다. 우리 두 나라는 돈이 없다.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는데 백성들이 반감이 크다.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영국은 백성들이 기꺼이 세금을 낸다. 이것은 무엇때문인가?


당시 유석홍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세금을 거두는 것은 백성들이 선출한 의원이 의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모두 이 공공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히 원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징세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당연히 아무도 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기실 '대표가 없으면 세금도 없다'는 뜻인 것이다.


곽숭도는 그의 말을 듣고 신기하게 여긴다. 그는 나중에 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생각도 못했다 유석홍이 그런 견식을 지니고 있을 줄은.


유석홍이라는 사람은 기실 전형적인 '속으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모른 척하는' 인물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곽숭도를 공격하고, 양심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다. 겉으로 하는 행동과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다르다.


자연히 유석홍은 전형적인 양면인물이다. 이런 사람은 당시의 사회에서 기실 다수였다. 곽숭도처럼 겉과 속이 같으며, 진심을 얘기하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였다.


예를 들어, 청화대학의 저명한 학자인 진휘(秦暉)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청나라말기 미국에 파견된 정사(正使)는 진란빈(陳蘭彬)이다. 그도 역시 유석홍과 같은 양면인물이다. 이 진란빈은 일찌기 청나라정부가 소년을 미국에 유학보내는데 극력 반대한 바 있다. 중국의 정인군자가 서방에 가면 나쁜 것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 일은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방해로, 소수의 사람만이 미국에 계속 머물 수 있었다. 그중에는 저명한 첨천우(詹天佑)가 있다.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서둘러 귀국시켰다.


이 진란빈은 조정에서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로 활동한다. 일단 서방만 얘기하면 '주먹을 쥐고 소매를 휘두른다' 서방인들을 치는 흉내를 내면서. 그러나 사적으로는 서양의 국정과 민풍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찌기 이홍장(李鴻章)의 부수였던 장수성(張樹聲)도 있다. 그는 관료사회의 노련한 인물이다. 관직도 높았다. 이 장수성은 이홍장의 부수로 있을 때나 자신이 연해일대의 지방관으로 있을 때나 양무(洋務)와의 접촉이 아주 많았다. 서방문화에 대하여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스승이나 친구들과 얘기하거나, 서신왕래를 할 때는 그가 서방문화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평상시 관료로 있을때는 아주 보수적으로 활동한다. 절대로 서양이 좋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1884년이 되어, 이때 그가 중병을 앓는다. 그는 구두로 황상에게 보내는 유절(遺折)을 남긴다. 이 유절은 즉시 북경으로 보내어진다. 그리고 북경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죽었다.

장수성은 유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양의 학교에서의 인재육성, 의원에서의 토론, 군민일체, 상하일심, 이것이 바로 서양의 체용(體用)이다." 서양의 교육, 서양의 정치체제가 중요한 것이다. 윤선, 대포, 철로 전선은 그 쓰임일 뿐이다. '중국이 그 체를 버리고 용을 추구하면, 아무리 따라가더라도 부족할 것입니다. 철함이 줄을 서고, 철로가 사방으로 다녀도 과연 충분하겠습니까?"


그는 견선이포(堅船利砲)는 아무 엇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이런 것들은 첫째로 '체'가 없고, 배워도 쓸 데가 없다고 했다. 둘째로 이들은 배워서 쓰더라도 기실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광서제에게 '서양인의 체를 채택하여 서양인의 용을 행하십시오'라고 한다. 


장수성의 유절의 핵심관점은 서방의 정치제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들 자료를 뒤져볼 때, 내심으로 아주 탄식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유석홍, 진란빈, 장수성과 같은 양면인물이 이렇게 많은가. 도대체 무슨 원인때문인가. 그들은 부득이 양면인물이 되었는가. 이들 양면인물은 도데체 어떻게 양성되엇는가. 장수성은 왜 죽기 전에 비로소 진심을 얘기했는가?


기실 만일 우리가 유석홍, 진란빈, 장수성을 전형적인 사례로 놓고 분석하자면, 원인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대체로 아래의 세 가지이다:


첫째, 진실을 얘기하면 최고권력자에게 밉보이게 된다.


유석홍이건 장수성이건 그들이 사적으로 서방의 정치체제를 인정했고, 심지어  아주 좋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관료사회에서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다른 서방의 기술들, 심지어 견선이포등등은 얘기해도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권력자도 이것들은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으 ㄴ왜 유독 서방의 정치체제에 대하여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을까?


도리는 아주 간단하다. 영미의 정치체제는 헌정이다. 하늘아래에 헌정민주를 누가 가장 싫어하고 누가 가장 미워하고 누가 가장 반대할까? 그것은 바로 군왕이다. 그리고 서태후와 같은 최고권력자이다. 헌정의 가장 관건, 가장 핵심은 바로 권력자를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으로서, 매일 서태후의 앞에서 서방의 헌정이 좋다고 얘기하면, 그것은 그녀를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녀의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곽숭도같이 파면되는 것은 가벼운 벌이다.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둘째, 진실을 얘기하면 관리 자신의 이익을 해친다.


헌정민주를 싫어하는 것은 군왕외에 관리도 있다. 이치는 마찬가지이다. 군주전제하에서는 관본위의 사회이고, 관리가 모든 것을 주도한다. 가장 기분좋은 것은 관리이다. 이런 관본위 구조에서 관리들은 상사에만 책임지면 된다. 그저 상사에만 잘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위로부터 아래까지 하나의 기득이익집단이 형성되는 것이다. 백성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뿐아니라, 명태조 주원장처럼 각종 혹형을 쓰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봐도 관료집단의 부정부패문제는 해결할 도리가 없었다.


일단 헌정민주가 되면 관리들은 매일 감시당한다. 이탈리아 총리와 마찬가지로, 공금으로 포도주 한 명을 마시는 것도 안된다. 다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대청의 관리들이 어찌 헌정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곽숭도처럼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단으로 몰린다. 누구나 공격하고 비난하는 인물이 된다. 그가 진실을 얘기했기 때문에 관료집단의 이익을 건드린 것이다. 장지동(張之洞) 혹은 유석홍같은 관료사회의 노련한 인물들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셋째, 군주전제사회의 잔혹한 사상통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전제통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군주와 관료사회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상언론에 대한 통제는 아주 잔혹했다. 단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만 하면, 감히 조정에 대하여 헛소리를 하면, 너를 기다리는 것은 파면이나 목이 잘리는 것이나, 능지처참이나 요참이나 삼족을 멸하는 것이다. 이런 참혹한 국가공포주의통치하에서 사람들은 모두 조심해야 하고, 여리박빙해야 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실을 감히 얘기할 수 있을까?


"이천년의 정치는 진정(秦政)이다, 모두 대도(大盜)이다. 이천년의 학문은 모두 순학(荀學)이다. 모두 향원(鄕願)이다. 대도만이 향원을 이용할 수 있고, 향원만이 대도에게 아첨할 수 있다." 향원은 시골의 겉으로는 돈후해 보이지만 실은 세속에 영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위선자를 가리킨다.


담사동의 <인학>에 나오는 이 말은 중국사회의 실질을 그대로 말해준다. 양면인물은 실제로 전형적인 향원이다. 간단히 말해서, 강도정치와 향원은 전제사회의 하나의 몸이고 두 가지 얼굴이다. 전제사회의 파트너이다. 강도정치가 존재하면, 향원도 영원히 존재한다. 양면인물도 영원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모두 제도의 문제인가? 개인으로서 양면인물은 조금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가? 그들 자신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곽숭도와 같이 진실을 얘기하고, 진리를 견지하려는 사람을 설명하겠는가. 다만, 필자는 주요책임은 역시 전제제도에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경골한이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제제도하에서, 설사 네가 경골한이더라도 만일 전제자가 동창, 서창의 사람을 보내어 너의 부모를 심문하고, 너의 처자식을 끌고가면, 네가 계속 고집을 부릴 수 있겠는가? 아마 어려울 것이다.


유일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헌정민주이다.


헌정만이 통치자가 함부로 행돟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고 진정한 법치로 백성의 기본권리를 보장할 수 있으며, 사회에 아주 양호하고 정상적이며 느긋한 여론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얘기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유석홍같은 양면인물이 반드시 다수를 이룬다. 그들은 '대도'와 상호이용하고, 공모하여, 거젓말을 정교하게 포장하여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삼는다. 그리하여 민중을 우롱하고, 이를 통해 진인각선생이 말한 '상사하우(上詐下愚)의 사회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의 동방에 일종의 가장 특이한 사회광경이 나타났다: 무수한 부추가 기꺼이 남의 손에 잘리길 원하고, 기꺼이 통치자의 이익을 보호한다. 이것은 인류이래 보기 드문 현상일 뿐아니라, 동뭉계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이다.


오호애재라


이것은 전체 민족의 비애이다. 전체 만족이 집단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