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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배 준결승 한큐바둑 해설: 신진서 vs 커제 [제7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의 해설자 장쉐빈입니다. 오늘 이 준결승대국은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8수] (장상적초01 6단) 장사범님 갈고리를 등에 짊어질 준비가 되었습니까. 갈고리로 솥을 질 수 있나요?(중국어에서 솥을 등에 진다는 것은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임) [제11수] (애흘계마인 4단) 초반이 익숙한 모양입니다. 이 초반은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저도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제16수] 쌍방은 LG배에서 2승2패입니다. 전체 전적도 반반입니다. (포도수인 9단) 장사범님, 이 초반 모양은 서로 손해가 없지 않나요. 해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초반은 어떻게 두어도 괜찮지요. [제17수] (a500117085 1단) 반드시.. 2023. 12. 14.
리커창(李克强)은 왜 반드시 죽어야만 했을까? 글: 호도도(弧度度) 어떤 사람은 중공당내에 좋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말한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왜 리펑(李鵬), 장쩌민(江澤民)이 죽었을 때는 그렇게 많은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길거리로 나와서 꽃을 바치면서 추모하지 않았을까? 인터넷이 날로 보급되고 발전하면서 중국에는 깨달은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민심의 향방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이 꽃을 바치고, 어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폭죽을 쏜다. 어떤 사람은 리커창이 아무런 업적도 내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시진핑이 헌법을 고치고 연임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그건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다만,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이 대거 개혁을 진행할 수.. 2023. 11. 7.
만력제(萬曆帝):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 것인가? 글: 역사기실유취(歷史其實有趣) 만력14년, 서력1586년. 만력제 명신종(明神宗) 주익균(朱翊鈞)의 후계자분제가 정식으로 의사일정에 올라왔다. 황제의 나이가 적지 않고, 황제에게 아들도 있으니, 국본(國本)을 안정시키고 국조(國祚)를 이어가기 위하여는 반드시 하루빨리 후계자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당사자인 만력제는 후계자인 황태자의 후보와 관련하여, 일찌감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은 황삼자(皇三子) 주상순(朱常洵)이었다. 당연히 그가 이 아들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애옥급오(愛屋及烏)의 느낌이 있다. 왜냐하면 주상순의 모친은 바로 만력제가 가장 좋아한 비인 정귀비(鄭貴妃)였기 때문이다. 먼저, 만력제는 일찌기 정귀비에 대하여 "유가옥질(柔嘉玉質), 완닉란의(婉嬺蘭.. 2023. 11. 7.
"헝다(恒大)사건": 한 시대의 몰락... 글: 이군(李郡) 두달 전, 국내에서는 헝다부동산회사가 파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사건은 기실 모두 의외라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헝다는 이미 2년전에 이미 파산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이 사건은 영향이 너무 커서 국내에 헝다파산시의 대응책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다시 "삽관(揷管)"을 하는 방식으로 헝다를 2년간 연명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현재 국내의 주택과잉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 되었고, 시장에서는 부동산거래가 정체되는 상태가 되었으며, 게다가 지방정부는 재정위기를 맞고 있다. 헝다를 구해주는 것은 필요도 없을 뿐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헝다의 최종파산은 시대의 필연적인 결말이다. 헝타파산은 부동산시대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 시대의 몰락과 더불어, 지방의 토지재정.. 2023. 11. 3.
청나라말기의 "섬감회란"과 하마스 글: 사감 (2023. 10. 17) 청나라말기 동치연간의 섬감회란은 1862년부터 1873년까지, 10여년간 지속된 후 청나라조정에 의해 진압되었다. 폭란은 섬서와 감숙 외에도 영하, 청해와 신강까지 파급되어, 중국의 서북지구의 경제와 문화에 엄청난 파괴를 초래했다. 사료를 보면, 섬감 두 개 성의 인구손실이 약 2000여만명에 이르렀다. 전후 청나라조정은 섬서,감숙의 나머지 회민을 강제로 서부의 더욱 편벽한 지역으로 이주시켜, 그들이 다시 한번 중국의 중심지역의 안녕을 파괴하지 못하게 조치했다. 19세기 하반기, 태평천국운동이 전체 남부중국을 석권하다가, 마지막으로 최후의 근거지 남경이 함락되면서, 일찌기 기세등등했던 태평천국은 쇠망한다. 그러나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시작한다. 북방의 여러 성에서.. 2023. 10. 24.
모택동(毛澤東)과 유소기(劉少奇)가 내부투쟁을 벌인 진정한 원인은...? 글: 무덕산(武德山) 중국정부가 공식적으로 공개한 글에서 모택동과 유소기간의 갈등에 관하여 대부분 "사청(四淸)"운동때의 "심각한 의견차이"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이데올로기 층면에서 고도로 일치했고, 모택동이 유소기를 비판한 관점과 방법은 기실 모두 모택동의 인가를 받아 대거 제창한 것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택동이 유소기와 "중대한 이론상의 의견차이"때문이 아니라, 유소기에 대한 불만때문이다. 더 나아가 모택동은 유소기에 대한불만때문에 "중대한 이론상의 의견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간의 갈등은 더욱 실질적인 원인이 있다.... 모택동 71세생일때의 식사자리 12월 26일, 모택동의 71세 생일이었다. 그날 저녁 모택동은 인민대회당 노북경청(老北京廳)에서 일부 사람들을 불러 .. 2023. 10. 17.
이자성(李自成)의 세 명의 부인: 왜 2명은 바람이 났을까? 글: 유노사(劉老師) 명나라말기의 역사를 얘기하자면, 이자성은 반드시 언급해야할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자성과 그의 대순(大順)정권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의 처첩에 대하여는 논의가 비교적 적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주로 관방사료에 이들 여자들에 대한 기록이 적고, 그녀들에 대한 사적은 대다수가 , 등 비관방사료와 지방지에 나온다. 오늘 우리가 얘기할 것은 바로 이자성의 세 명의 처, 한씨(韓氏), 형씨(邢氏)와 고씨(高氏)이다. 1. 한금아(韓金兒): 비록 용모가 출중했지만, 부도(婦道)를 지키지 않아, 나중에 이자성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자성의 첫번째 부인 한금아에 대하여 관방사료에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극히 적다. 심지어 어떤 사료에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 , , 등 비관.. 2023. 10. 10.
중국의 실제 실업률... 글: 노만(老蠻) 오늘 우리는 각종 공개된 데이타를 이용하여, 중국의 2022년 실제 실업률 상황을 추정해 보고자 한다. 이는 아주 재미있는 추사박형(抽絲剝螢)의 과정이다. 나를 믿어보면, 여러분들이 끝까지 보았을 때, 놀라움이라는 말 이외에 심정을 형용할 다른 말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취업분야의 수치는 다음과 같다: 2022년 도시취업인구 4억 5,931만명, 농촌인구 2억 7,420만명, 합계 7조 3,351만명. 2022년말까지, 중국에서 조사된 도시실업률은 5.5%이다. 이 실업률 수치에 대하여, 우리는 교차검증을 해서 그 진실성을 확인해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는 인구방면의 수치를 보자. 우리는 이 부분의 수치를 통해 노동가능인구의 총수를 계산해낼 수 있다. 이는 .. 2023. 10. 10.
도박꾼 쉬자인(許家印): 헝다(恒大)사태의 심층적 원인 글: 뇌가시각(雷歌視角) 2008년 3월, 미국의 서브프라임위기가 급속히 만연했고, 글로벌경제가 불황에 빠졌다. 쉬자인은 미국에서의 자금조달에 실패했고, 홍콩상장도 어쩔 수 없이 중단되었다. 2004년이래 전국으로 급격히 확장하였고, 특히 2007년 헝다는 도처에서 토지를 매입했다. 토지보유량이 2006년에는 600만평방미터가 되지 않았는데, 2007년에는 4,580만평방미터로 급등했다. 이로 인해 헝다는 비꾸이위안(碧桂園), 완커(萬科)를 넘어 중국최대의 '지주'가 된다. 다만 은행부채도 따라서 몇배 증가했으며, 채무상환압력이 급증했다. 게다가 금융위기로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헝다는 최초로 자금줄이 끊길 생사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1. 첫번째 도박: 대성공을 거두다 당시 쉬자인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2023. 10. 6.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글: 주한경(周漢卿) 누군가 블로그글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러빠이건 우빠이건 왜 모두 중화빠일까? 내가 이 블로거의 질문에 답을 하겠다. 그 답은 바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중국인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지지하거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구미사회의 두 가지 정치역량이다. 중국인은 구미사회의 주변인이고, 그저 피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할 뿐이다. 근대이래, 국제질서의 중심은 계속하여 유럽과 서방이었다. 세계의 다른 지역은 그저 피동적으로 서방질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동아시아지역이 특히 대표적이다. 1848년이후, 민족국가는 유럽에서 주류가 되고, 세계의 다른 지방으로 확산하게 되며, 동아시아지역까지 확산된다. 일본은 유럽을 모방하여, 민족국가를 건립했다. 독프전쟁이후, 독일민족이 .. 2023.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