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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도박꾼 쉬자인(許家印): 헝다(恒大)사태의 심층적 원인

by 중은우시 2023. 10. 6.

글: 뇌가시각(雷歌視角)

 

2008년 3월, 미국의 서브프라임위기가 급속히 만연했고, 글로벌경제가 불황에 빠졌다. 쉬자인은 미국에서의 자금조달에 실패했고, 홍콩상장도 어쩔 수 없이 중단되었다.

 

2004년이래 전국으로 급격히 확장하였고, 특히 2007년 헝다는 도처에서 토지를 매입했다. 토지보유량이 2006년에는 600만평방미터가 되지 않았는데, 2007년에는 4,580만평방미터로 급등했다. 이로 인해 헝다는 비꾸이위안(碧桂園), 완커(萬科)를 넘어 중국최대의 '지주'가 된다. 다만 은행부채도 따라서 몇배 증가했으며, 채무상환압력이 급증했다. 게다가 금융위기로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헝다는 최초로 자금줄이 끊길 생사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1. 첫번째 도박: 대성공을 거두다

 

당시 쉬자인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째, 처분. 2007년 헝다는 전국에 36개의 프로젝트를 건설중이었다. 건축면적이 750만평방미터였고, 그중 400만평방미터는 이미 분양가능한 상태였다. 가격을 낮추어 일부를 처분했더라면, 자금압박을 완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합작. 30-50%의 프로젝트를 제3자와 합작한다면 역시 곤경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셋째, 사모융자.

 

앞의 두 가지 선택지는 상대적으로 온당하고 효과도 빠르지만, 쉬자인으로서는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이었다. 일부 프로젝트에 대한 주도권과 지배권을 잃게 될 것이다. 사모융자는 지분을 희석시키고, 또한 불확정성이 크다. 그러나 장점은 자신이 계속하여 프로젝트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쉬자인은 빠르게 앞의 두 가지 선택지를 버렸다. 그는 이미 펼쳐놓은 전국이 배치국면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모융자의 외줄타기에 나선다.

 

2008년 4월에서 6월까지, 쉬자인은 계속하여 홍콩에 머물면서, 홍콩의 부동산거물 정위퉁(鄭裕彤)등과 어울렸다. 매주 정위퉁과는 한두번 식사를 했고, 정회장이 좋아하는 카드놀이도 함께 했다. 이 서클내에서 쉬자인은 류란슝(劉鑾雄), 양셔우청(楊受成)등 홍콩의 거물들을 알게 된다. 이들 거물들은 비지니스계에서 광범위한 인맥과 자원이 있었다. 6월말, 쉬자인은 카드판과 식사자리에서 6억달러의 사모융자를 성공적으로 받아낸다. 그중 5.06억달러는 이미 입금되었다. 정위퉁이 1.5억달러를 투자했고, 쿠웨이트투자국도 1.46억달러를 투자했으며, 도이치방크, 메릴린치증권등 5개의 기관이 2.1억달러를 투자했다.

 

2008년 필자는 상해의 한 금융전문매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6월하순의 어느 날, 신문사 사장이 돌연 내게 전화를 걸어, 최근 헝다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은 더 이상 싣지 말라고 말했다(이전 1,2년간 헝다가 4000만위안의 세금탈루등 적지 않은 내용을 보도한 바 있었다). 뉴스쪽과 평론쪽이 모두 통제해야 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편집센터주임과 평론판편집자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 사장이 말하기를, 쉬자인이 한밤중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장시간 얘기를 나누었는데, 신문사에게 많이 도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광고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사장도 탄식을 하며 말했다. 쉬자인도 쉽지 않을 거다. 상장도 막히고, 현재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마치 뜨거운 솥 위에 올라가 있는 개미같다. 그가 힘들게 부탁하니 우리도 체면을 봐주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어야 겠다.

 

7월초, 신문사는 산업경영뉴스부서의 주임인 커펑(柯鵬)등을 광저우로 보내어 쉬자인과 독점인터뷰를 했다(쉬자인은 최소 5년간 매체와 독점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쉬자인이 계획하고 있는 전국전략을 심도있게 보도하면서, 상장이 실패한 후 사모융자를 선택했으며, 홍콩에서 성공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내용을 실었다. 이 보도는 질이 높았고, 정보량도 많았다. 실린 후에는 많은 매체에서 전재했고, 헝다의 브랜드이미지에 긍정적이었다. 쉬자인은 이에 아주 만족했고, 신문사에 감사를 표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며칠간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쉬자인은 커펑을 마음에 들어했고, 그를 헝다에 가입시킨다. 그리고 그를 위해 브랜드관리와 PR선전을 담당하도록 했다. 신문사의 수입이 당시 전국에서 최고수준이었다고는 하지만, 쉬자인이 제시한 연봉과 플랫폼은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것이었다. 커펑은 즉시 전직했고, 헝다의 총재조리부터 시작하여 금방 부총재 겸 헝다문화집단의 동사장, 헝다축구클럽 동사장등등을 맡는다. 헝다본사를 선전으로 옮긴 후, 다시 헝다선전회사의 동사장이 된다. 2020년에는 헝다지산집단총재, 중국헝다집단집행총재등등이 되어, 쉬자인에게 크게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나중에 웃으면서 말했다. 커펑은 2008년에 헝다와 쉬자인의 바닥을 훑었다고. 이건 나중의 말이다. 

 

새로운 사모융자는 헝다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그러나 비용이 너무 높았다. 12%가 넘는 주권을 넘겨주는 외에, 청위퉁의 자금에는 고액의 연리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건 쌍방 모두에게 도박이다. 정위퉁등은 돈을 중국부동산가격이 두 배이상 뛸 것이라는데 걸었다. 그래야 그들이 헝다에 투자한 것으로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쉬자인은 고액의 댓가를 기꺼이 지불했다. 그건 당시 불황이던 부동산시장이 금방 활황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2009년, 중국정부의 4조위안 자금투입으로 부동산업은 신속히 살아난다. 쉬자인이 마련해둔 대량의 토지도 급속히 가치가 올라갔다. 이로 인하여 헝다는 2009년 11월 홍콩에 순조롭게 상장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헝다의 발전은 고속도로를 달리게 된다.

 

이번에 쉬자인은 도박에서 이겼다.

 

2. 두번째 도박: 의외로 실패하다.

 

이런 도박근성은 단지 쉬자인이 1996년초 헝다를 창업할 때 도박근성의 연속이다.

 

1994년, 선전에서 일하던 쉬자인은 몇명을 데리고 오너를 대신하여 광저우에서 아직 해보지 않았던 부동산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프로젝트는 주다오화원(珠島花園)인데, 오너에게 2억위안을 벌게 해주었다. 당시 급여가 겨우 2천위안이던 쉬자인은 사장에게 연봉 10만위안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다.

 

쉬자인은 즉시 사직했고, 혼자서 해보겠다고 결정한다. 그러나 자신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부동산업을 할 수 있겠는가? 헝다의 첫번째 프로젝트인 광저우 진비화원(金碧花園)부터 쉬자인은 레버리지를 활용한다. 혹은 "공수투백랑(空手套白狼, 맨손으로 늑대를 잡는다)"이다. 

 

그는 하이주구(海珠區)의 1억이 넘는 토지를 선택한 후, 분할지급하기로 합의하여, 제1차지급금이 겨우 500만위안밖에 되지 않도록 합의를 끌어낸다. 그후 관계를 통해 은행에서 600만위안을 빌려, 500만위안의 제1차지급금을 지급한다. 남는 100만위안은 운영자금으로 활용했다. 그는 시공사에 먼저 자신의 자금으로 건설한 후, 나중에 정산하자고 말한다. 그 결과 그 자신은 한푼도 내지 않고 진비화원을 지을 수 있었다. 분양 첫날 완판되었고, 쉬자인은 이렇게 하여 8000만위안을 벌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을 쉬자인은 그후 20여년간 해온다. 헝다가 파탄날 때까지. 소위 성공도 레버리지때문이고, 실패도 레버리지때문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헝다는 레버리지를 이용하여 신속히 확장하고, 완커를 넘어 중국부동산업계의 1위업체가 된다. 2017년 쉬자인은 중국최고부자에 오른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으로 헝다는 부채율이 높은 기업이 되었다. 2016년말, 만일 몇년동안 발생한 천억이 넘는 고이자의 채권을 포함한다면, 헝다의 실질적인 부채비율은 이미 95%에 가까웠다.

 

즉 2016년말, 위대한 자도자(시진핑을 가리킴)께서 "집은 사는 것이지, 투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최고지시를 내리면서, 정책이 급변한다. 각 대형부동산기업들은 온갖 방법을 써서 레버리지를 줄이려고 했다. 이를 통해 이후의 엄격한 통제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쉬자인이 가장 잘나갔던 2017년, 왕스(王石, 완커의 총재)가 은퇴하고, 위량(郁亮)이 넘겨받았는데, 첫마디가 바로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살아납는 것"이라고 했다.

 

쉬자인은 헝다는 '레버리지를 낮추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가 서택한 '레버리지를 낮추는' 방식은 차입을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회상장을 통해서 자금조달채널을 늘이는 것이었다. 즉 분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분모를 늘이는 것이었다.

 

2017년, 쉬자인은 선전의 국유기업 선선팡(深深房)A라는 상장기업을 찍어서 반드시 차지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헝다가 A주로 돌아와서 상장하는데 자신감이 넘쳤고, 전략투자자들과의 배팅계약까지도 마쳤다. 그러나 상장이 성공하지 못하자, 쉬자인은 할 수 없이 이들 주식을 매입해주어야 했고, 거액의 보상금과 고액의 이자까지 부담해야 했다.

 

2009년, 헝다가 홍콩에 상장할 때, 쉬자인은 전략투자자들과 배팅합의를 한 적이 있다. 상장만1주년전의 6개월내에ㅐ, 만일 헝다주식의 평균주가가 발행가를 밑돌면, 헝다는 전략투자자들에게 보상을 지급해야 했다. 그때 쉬자인은 도박에서 졌고, 12억위안을 보상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헝다는 예전의 헝다가 아니다. 자금조달을 위하여, 쉬자인은 다시 한번 도박을 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다만 이번의 우회상장은 예상외로 순탄하지 못했다.

 

그 몇년간, 쉬자인은 선전시정부에 170억위안이상을 투입했다. 거기에는 선전의 가난구제를 위해 100여억위안의 가난구제자금을 출연한 것고, 바오완지쟁(寶萬之爭, 바오능과 완커의 경영권다툼)에 끼어들어 70억위안을 손해보면서, 헝다가 보유한 14.07%의 완커 지분을 싼값에 선전지하철집단에 매각하여 선전지하철이 완커의 제1대주주가 되도록 해주었다. 쉬자인은 선전시의 각급 지도자들과 증감회의 각 부서에 적지 않은 돈을 뿌렸다고 생각했고, 헝다 홍루의 여자들도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회상장에 성공하지 못한다. 선전의 어느 단계에서 막힌 것인지, 아니면 성정부에서 지시를 내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당시의 성지도자는 이미 시진핑의 측근이 된 리시(李希)이다.

 

2020년 9월, 최종기한이 도래했고, 헝다는 조급해져서 성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공개적으로 성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성정부에서 헝다가 A주로 돌아오는 것을 도와주지 않아서 금융리스크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헝다가 원래 순조롭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우회상장이 왜 막혔던 것일까? 지금까지도 그 내막을 분명하게 말해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느낌으로 이건 중남해의 뜻이라고 보인다. 헝다를 빌어 전체 부동산업계에 경고를 한 것이다. "집은 사는 것이지 투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최고지시를 집행하기 위해서. 

 

쉬자인은 자신의 도박적논리에 빠져 있었고,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여겼다. 위대한 지도자가 "집은 사는 것이지 투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깃발을 들고나오고, 자신의 헝다가 장기판에서 버려지는 말이 될 줄은 몰랐다. 

 

2020년 11월, 헝다가 선선팡A를 통해 우회상장하려던 계획은 중단된다. 이로 인하여 헝다는 수백억위안의 손실을 입고, 헝다의 채무위기와 자금줄리스크를 가속화시킨다.

 

3. 세번째 도박: 목숨을 잃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2021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 중앙은행과 주택건설부가 발표한 "3개의 레드라인" 융자규정이 전면실시된다. 헝다는 "3개의 레드라인"에 다 걸렸다. 이는 헝다가 더 이상 새로운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헝다에게 최후의 치명적타격이 된다.

 

2,3개월후, 헝다는 협력공급업체에게 대금지급을 할 수 없게 된다. 2021년 9월에 이르러, 헝다의 400억위안에 이르는 국내이재상품이 먼저 상환불능으로 되고, 12월에는 해외달러채권에서 상환불능되기 시작한다.

 

높은 레버리지로 25년간을 미친 듯이 달려온 후, 마침내 헝다는 궤도를 벗어나서 전복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도 쉬자인은 예전의 왕젠린(王健林, 완다의 오너)처럼 신속하게 우량자산을 처분하고, 단비구생(斷譬求生, 팔을 자르고 목숨을 구하다)할 생각이 없었다. 쉬자인은 2008년에 도박을 한번 걸었다가 전성기를 맞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도박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계속하여 자신의 헝다는 "너무 커서 파산시킬 수 없다"는 환상을 가졌다. 정부가 반드시 돈을 투입하여 구해줄 것이고, 정책이 완화될 것이라는데 도박을 건다.

 

2년후의 오늘, 부동산정책은 확실히 방향을 전환했고, 완화되었다. 다만 이미 시간은 흘렀고, 헝다의 결손은 8천억위안이 넘는다. 2년전 막 사태가 터졌을 때 헝다의 순자산은 그래도 3,800억위안이 있었다. 지금은 이미 부채가 6000억위안이 넘는 상태가 되었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인 것이다.

 

쉬자인은 도박꾼티다. 그는 야심만만하고 과감했다. 그는 박력도 있고 수완도 있다. 다만 그는 결국 중국정치의 국면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그의 도박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쉬자인과 헝다의 붕괴는 그 자신의 논리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쉬자인같은 토황제(土皇帝)의 작태에 반감이 있었다. 마웨이두(馬未都)가 쉬자인과 만날 때 직접 한 무리의 개같은 노재(奴才)들이 주인을 둘러싸고 있는 장면을 모고 역겹다고 느꼈었다. 이를 보면 헝다의 내부 분위기가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헝다는 그저 이런 극권문화에 침투된 토지에서 길러진 하나의 소제국이다. 그런 것은 붕괴되어도 전혀 아까울 것이 없다.

 

4. 누가 원흉인가?

 

쉬자인이 체포된 후, 국내여론의 주류를 개괄하면 이러하다: 쉬자인은 나쁜 놈이다. 그 자신이 돈을 물처럼 쓰면서, 헝다를 우주급 쓰레기로 만들었다. 수백만의 주택구매백성들을 해쳤을 뿐아니라, 국가이익도 해쳤다. 쉬자인은 대사기꾼이고,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러 죽어 마땅하다....

 

이 논리대로라면, 중국부동산업의 불황 내지 중국 거시경제의 문제는 모두 쉬자인의 책임이다. 현재 경제는 악화되고 여러 업종들이 불황을 겪고, 백성들의 원성이 가득하다. 모두 분풀이를 할 대상을 찾고 있다. 그때 쉬자인이 올라온 것이다. 이건 당과 국가에서 원하는 효과이다.

 

헝다는 쉬자인의 헝다이고, 헝다가 무너진 것은 쉬자인이 책임져야 한다. 이건 맞는 말이다. 다만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걸핏하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인에게는 이런 통병이 있다. 너무 도덕을 중시하고, 도덕을 얘기하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도덕은 확실히 얘기해야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다만 여러가지 사정의 핵심은 도덕이나 인품이 아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 주위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나쁜 놈이 비지니스계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본다. 그가 부동산업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파산하거나 부도나지 않는다. 그리고 명성이 좋은 기업가들 예를 들어 쑨다우(孫大午)같이 정직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고, 기업은 문을 닫고, 수십억 수백억에 이르는 재산을 남에게 강탈당했다. 이런 일들은 개인의 인품이나 도덕수준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해서, 도덕감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왕왕 두뇌가 간단하여 손쉽게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속임을 당하게 된다. 많은 구경꾼들처럼 여론을 한번 이끌기만 하면 자신이 잘 살지 못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모두 양심없는 자본가들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건 당과 국가에서 원하는 바이다.

 

같은 이치로, 간단하게 헝다의 붕괴를 쉬자인이 나쁜 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 배후의 많은 것들을 감추게 된다.

 

만일 우리가 헝다를 벗어나, 최근 몇년의 중국전체 부동산업, 내지 거시경제를 살펴본다면, 하나의 두드러진 사실은 2021년의 "세가지 레드라인"이 실시된 이래, 연이어 부도난 부동산회사가 백개이상이라는 것이다. 그중 많은 경우는 부동산업계에서 랭킹100위내에 드는 저명한 기업들이다. 헝다는 그저 가장 먼저 문제가 터지고 비교적 유명할 뿐이다. 이런 현상이 광범위하게 출현한다는 것은 분명 헝다 자체를 넘어서는 원인이 있는 것이다.

 

중국의 부동산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원인이 무엇인가,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계산을 명확하게 해두었다. 국내부동산가격중 절반이상은 모두 정부에서 거두어가는 각종 세금비용 및 토지낙찰대금이다. 부동산가격을 억제하는 근본은 바로 정부가 각 단계에서 거두는 비용을 줄이는데 있지 않겠는가. 그저 "집은 사는 곳이지 투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3가지 레드라인"으로 부동산기업을 폭격하면서 마치 부동산기업이야말로 부동산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원인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시비를 혼동시키고, 남원북철하는 것이 아닌가?

 

부동산은 고도로 자금에 의존하는 업종이다. 부동산가격을 억제하기 위해서 거칠게 부동산기업에 대한 자금조달을 끊어버린다면, 사태가 터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부돈산업은 전후방이 연결되어 있고, 국민경제의 1/3을 차지한다. 부동산업이 전체적으로 불황이 되면, 반드시 거시경제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된다. 만일 이런 문제를 모조리 쉬자인에게 덮어씌운다면 그건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부동산기업이 대규모로 부도나고 거시경제가 불황인 근본원인은 정부에 있다. 현재의 지도자들을 보라. 기본적으로 모두 주인을 모시는 내시출신들이다. 누가 경제를 아는가. 중공의 시정기본정책은 기분내키는대로 결정해버리는 것이다. 경제원칙은 신경쓰지도 않고, 그저 윗사람의 눈치만 본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부동산시장을 다시 살리기 위해, 전국각지의 부동산구매제한을 취소하고 있다. "3가지 레드라인"도 흐지부지되어 버렸고, 지금은 "집은 사는 곳이지 투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쏙 들어갔다. 다만 부동산시장은 아직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뺨을 너무 빨리 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애당초 왜 그랬을까? 

 

최근 소식을 보면, 정부가 부동산가격을 완전히 개방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가격이 알아서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요 며칠 베이징, 지난, 광저우 등지의 국유자산위원회플랫폼에는 속속 대량의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 올라오고 있다. 이는 내부인사들이 이미 소식을 듣고 미리 물건을 처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다시 시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지나 않을까?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회상해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조치들은 3년동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제로코로나, 도시봉쇄를 해대다가 돌연 아무런 준비도 없이 풀어버리면서 180도 전환하여, 죽은 사람들을 화장하는데만도 줄을 서서 몇날 며칠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과 같은 식이 아닌가. 위대한 지도자가 딴 것은 할 줄 모르지만, 혼란을 조성할 줄은 아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