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징(580-643)은 수당시대의 걸출한 인재이다. 자는 현성(玄成)이고, 거록하곡양(지금의 진주) 사람이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매우 빈곤하게 자랐고, 출가해서 도사가 되었었다. 수나라 말에 와강(瓦岡) 반란군에 참여한다. 이밀(李密)이 패한 후, 당(唐)에 귀순하였다. 그 후에 다시 두건덕(竇建德)이 실패한 후에, 당으로 들어와 태자인 이건성(李建成)을 위하여 말을 씻는 일을 맡았다. 그는 원래 태자인 이건성에게 이세민(李世民)을 제거할 것을 권했으나, 이건성은 이를 듣지 않다가 후에 태자는 이세민에게 죽임을 당한다. 위징은 체포된 후 이세민에게 "태자가 만일 내 말을 들었더라면, 절대 오늘의 환란에서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세민은 그가 솔직한 것을 높이 사서, 그를 간의대부(諫議大夫)를 맡긴다. 이 때부터 위징은 이세민을 충심으로 보좌하여 천하를 잘 다스려 소위 정관지치(貞觀之治)라는 태평성대를 열도록 도와준다.
위징이 당태종과의 사이에 있었던 몇가지 얘기는 그의 뛰어남을 알려준다.
한번은 당태종이 위징에게 "황제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시비를 잘 판별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더니 위징은 "겸청즉명, 편청즉암(兼聽則明, 偏聽則暗, 양쪽말을 골고루 들으면 밝은 것이고, 한쪽 말만 들으면 어두운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위징은 당태종에게 황제와 백성의 관계를 말하면서 "수능대주, 역능복주(水能戴舟, 亦能覆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말로써, 배는 황제, 물은 백성이라고 하여, 백성들은 황제를 옹립하기도 하지만, 황제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한 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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