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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현무문의 변"에서 감추어진 중요한 부분

by 중은우시 2007. 5. 17.

 

 

글: 맹헌실(孟憲實)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현무문사건의 많은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가려졌는데, 왜 위지경덕(尉遲敬德)이 황제(당고조 이연)를 연금한 내용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는가? 처음에는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발견한 것은 이 글은 모두 위지경덕전에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다. 현무문사건의 많은 내용은 가릴 필요가 있지만, 그렇지만 공을 세운 위지경덕의 경우에는 그의 공덕을 나타낼 필요도 있었다. 만일 한 마디도 기재하지 않는다면, 이는 위지경덕의 공로를 말살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모호하게 기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오늘날에도 진상을 알아낼 단서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커다란 비밀이다. 아무도 말한 적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무런 계기도 없이 모두 추정해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에서 단서를 얻은 것이다. 그것은 당나라때에 관한 소설인데, 나에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다.

 

1900년 막고굴의 한 동굴이 열리면서, 안에는 900여년전의 문헌이 발견되었다. 이것이 바로 돈황장경동이다. 이런 중국의 국보는 나중에 세계각지로 흩어졌다. 그중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모두 중요한 수장지이다. 영국의 돈황문서는 스타인이 가져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분류번호는 모두 S를 사용한다. S.2630호 문서는 당나라때 사람이 쓴 소설이다. 소설은 시작도 끝도 없지만, 내용은 아주 중요하다. 중국에서 학자 왕국유는 처음으로 이 소설을 연구한 사람이다. 그는 이 소설을 <<당태종입명기(唐太宗入冥記)>>라고 이름지었다. 이 고대소설의 이야기는 원래 불완전하다. 대체적인 내용은 그래도 알아볼 만하다. 현무문사변이후, 이건성(李建成)과 이원길(李元吉)의 영혼이 흩어지지 않고, 저승의 염라대왕전에 고발을 했다. 결국 염라대왕이 사람을 보내어 이세민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와서 이건성등과 대질심문했다. 그 가운데, 저승의 판관은 최자옥(崔子玉)이라고 하는데, 보양현의 현위였고, 인간과 저승세계를 오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의 황제가 저승에 붙잡혀 온 것을 보고는 승진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처음에는 당태종과 밀고당기며 협상을 했고, 당태종은 할 수 없이 그와 거래를 한다. 최자옥은 당태종을 대신하여 대답을 해주겠다고 하며, 당태종에게 보수를 요구한 것이다. 무슨 문제에 대한 회답인가하면 바로 "무덕7년(현무문사변은 무덕9년에 발생했는데, 소설에서는 무덕7년이라고 적었다)에 왜 형제를 전전에서 죽였고, 부친을 후궁에 연금했는가"라는 것이었다. 당태종은 이 문제를 보고는 바로 할 말이 없었다. "고민을 거듭했고, 방망이로 가슴을 맞은 것같았다" 당태종은 이 문제에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자옥이 당태종을 대신하여 이 문제에 대답하는데, 대체로 "대의멸친"이라는 정도의 얘기이다. 그래서 이세민은 그에게 포주자사의 직위를 주고 하북24주채방사라는 큰 관직을 준다. 소설에서 당태종의 영혼은 전전긍긍하는데, 이유는 마음 속에 캥기는 것이 있어서이다. 마지막에 할 수 없이 최자옥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저승의 대질을 순조롭게 통과한다.

 

이 소설의 창작년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히 당나라때이다. 소설은 여러 사람들이 여러 시기를 거치면서 수정되었을 것이다. 대체로 무측천시대에 이미 형성된 것같다. 소설은 이세민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분명하게 얘기하는 것은 "부친을 후궁에 연금하였다"는 것이다. 형제를 죽였다는 기록은 많으나, 부친을 연금하였다는 기재는 한 글자도 없었다. 이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얻게 했다. 당나라때 벌써 이세민이 부황을 연금하였다는 견해가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무문사건후에 위지경덕이 당고조 이연의 면전에 나타나는 장면에서 많은 불분명한 부분들이 모두 명확해 진다. 위지경덕은 완전무장상태로 이연이 있는 곳으로 온다. 분명 혼자 온 것은 아니다. 한 무리를 군대를 이끌고 갔다. 이연은 그의 대신들과 함께 즉시, 신체의 자유를 상실한다. 신체의 자유를 잃었으므로, 국면을 통제했을 가능성도 없다. 그들은 그저 이세민이 요구하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다.

 

이연은 이세민이 해달라는대로 해주었다. 이것은 그가 좋아서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이미 이세민의 계하수(階下囚)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버티고 말고 할 것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연의 퇴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고조 이연은 때를 읽을 줄 알았다. 이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적극적인 권력양도는 아닌 것이다.

 

당고조가 1시간을 연금되었던 1년을 연금되었던 이는 본질적으로 같다. 이세민의 황제 지위는 부친의 손에서 강제로 빼앗아 온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와 부친은 모두 분명히 알고 있었다. 비록 부자 2인이 잠시 평화공존을 하긴 하였지만, 이연도 몸부림을 쳐서 더 큰 비극이 나는 것은 막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마음 속으로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이연은 살아있는 동안, 묵묵히 옆에서 이세민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것은 이세민에게 있어서는 사실 또 다른 압력이다. 그는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각성시켰다. 부친이 보고 있다고. 압력은 동력이 된다. 이것이 바로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룬 또 다른 동력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