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한양릉(漢陽陵): 한경제의 무덤

중은우시 2010. 3. 16. 12:45

글: 장명(張鳴)

 

몇년전에 한 친구가 나를 보러왔다가, 헤어지면서 나에게 지전(地)의 부스러진 조각을 몇개 주고 갔다. 한양릉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친구가 떠난 후, 나는 자세히 이미 낡아빠진 깨진 부스러기조각을 들여다 보았다. 비록 잔편(殘片)이기는 하지만, 위에는 정교한 꽃무늬가 있었다. 우리가 현재 바닥에 까는 타일과 비교하자면, 하나는 도기이고 하나는 자기라는 것을 빼고는 별로 큰 차이를 못느낄 정도였다. 보기에, 중국인들은 이천여년전에 벌써 바닥을 까는데 어느 정도 지혜를 발휘하여,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이후로 항상 생각해왔다. 나중에 기회가 있어서 서안을 가게 된다면 반드시 한양릉을 보러 가겠다고. 아쉽기도 나중에 서안에 갈 기회는 있었지만, 항상 바쁘게 다니는 바람에 한경제의 지하궁전을 방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금년(2009년) 5월 에야 비로소 서안에 가면서 하루의 시간을 내어 가볼 수가 있었다.

 

한양릉에 도착하니 먼저 보이는 것은 한나라때의 짙은 색깔의 옷이라고 하는 것을 입은 몇몇 예쁜 여자들이었다. 입은 의복만 고색창연했지, 발에 신고있는 것은 운동화였다. 그녀들은 모두 한양릉의 관광안내원이었다. 비록 바깥에서는 시끄럽게 웃고 떠들고 하였지만, 일단 박물관에 들어가니 설명은 완전히 판에박힌 듯했다. 모든 설명하는 말은 외워서 하는 것이었다. 관련된 다른 문제를 물어보자, 아주 간단한 것인데도, 우물쭈물하며 답을 하지 못했다.

 

한양릉은 현재까지, 일부분만을 발굴했다. 관광객들에게 전시하는 것은 약간의 수장갱(隨葬坑)이다. 한경제의 주묘실은 아직 발굴하지 않았다. 한경제는 서한 초기에 문경지치(文景之治)라는 태평성대를 일군 주인공이다. 그의 부친인 한문제와 비슷하게, 역사상 유명한 근검절약하는 군주였다. 그리하여, 무덤내의 것들도 모두 대단하지는 않았다. 부장된 청동기물 예를 들어, 병기들도 모두 규모를 축소하여 만든 것이었다. 찾아낸 몇 개의 관인도 동으로 된 것이건 도금을 한 것이건 모두 여자들의 새끼손톱만한 크기였다. 이전에 발굴된 증후을묘와는 달랐다. 그 곳은 모두 진짜 금이었다. 대량의 도용도 진시황의 병마용보다 아주 작았다. 정상인의 3분의 1정도 크기였따. 당연히 이 무덤에도 도굴구멍이 있다. 가치있는 부장품은 이미 가져가 버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 볼 수 있는 부장품을 일부러 규격을 작게 한 것까지 보면, 한경제는 자신의 사후에 대하여 조치를 하면서도 확실히 근검절약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같다.

 

중국인들은 생사에 대한 관념이 분명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죽음을 생명의 종결이라고 생각해서, 모두 두려워했고, 융중한 장례의식은 이런 슬픔을 표현하는 일종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마치 죽음은 또 다른 세계에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시신이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썩지않는 옥을 칠교에 박아넣었다. 돈이 더 있는 사람은 옥으로 사람을 싸버렸다. 금루옥의, 사루옥의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정성을 들여 지하에 죽은 자가 살아있을 때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지상의 모든 것을 지하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조금 총명해졌다. 그들은 이것들을 모두 종이로 만들었다. 집이건, 가마건 말이건, 아니면 시녀이건 첩이건, 모조리 묶어서 불에 태우면 그만이엇따. 그러나, 한나라때에는 사람들이 아직도 비교적 실용적인 것들을 무덤 속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양릉에 들어있는 부장품에 일부 실물도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양식과 일부 순장된 동물이 그것이다. 황제가 지하에서도 여전히 쌀도 먹고 고기도 먹기를 바란 것이다. 또한 이들 쌀과 고기를 요리할 수 있는 취사도구와 무사의 병기도 있었다. 또한 대량의 도기로 만든 부장품이 있는데, 당시의 모든 가축, 말, 소, 양, 돼지, 개 그리고 닭이 있었다. 한양릉에 이것들은 줄을 서서 나열되어 있다. 더 많은 도용은 무사, 궁녀, 환관들이다. 수천수만에 이른다.

 

당시에도 돼지를 길렀다. 나는 한양릉에 부장된 도기로 만든 돼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것들은 현재의 돼지와는 달랐다. 주둥이가 많이 튀어나왔고,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이것은 분명히 멧돼지의 특징이다. 이를 보면, 당시의 돼지는 순화된지 얼마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진한시대에는 말이 가장 아름다웠다. 도기로 만든 말이건, 아니면 한묘벽돌의 말이건, 모두 키는 크고, 다리는 길다. 튼튼하기 그지없다. 이런 말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마답비연(馬踏飛燕)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당시는 서북 유목민족과 마필교역이 아주 활발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품종의 좋은 말들을 들여와서, 교배시켜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냈다. 바로 이러한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사람들은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나라사람들은 기동성에서 밀리지 않았고, 무기에서도 우세를 차지했다. 흉노는 자연히 밀릴 수밖에 없다. 나중에 누군가가 고증한 바에 따르면, 송나라이후 한족들이 대외전쟁에서 패배를 많이 한 것은 말이 좋지 않았던 것이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당연히 한양릉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도용(陶俑)이다. 진시황릉의 병마용과 비교하자면, 한양릉의 도용은 훨씬 작다. 작을 뿐아니라, 모양도 기괴하다. 모조리 손과 팔이 없다. 머리가 사람같은 점을 제외하면, 몸이나 다리도 그냥 아무 것도 없이 가늘고 길다. 그저 얼굴만 사람모습을 하고 다리는 무슨 해오라기 같다. 원래 우리가 보는 도용의 '육신', 원래의 도용에는 나무로 만든 팔과 손이 있었고, 움직일 수가 있었다. 몸에는 여러가지 색깔의 옷과 갑옷을 입혔다. 이것이 진용과 다른 점이다. 의복과 갑옥까지도 모두 만들어서 입힌 것이다. 이 각도에서 보자면 한용(漢俑)은 더욱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뿐아니라, 의복도 입는다. 그러므로, 모든 도용은 남녀로 나뉘고, 성기도 갖추고 있다. 환관은 성기를 잘라낸 흔적이 있다. 아쉽게도 이들의 나무팔과 의복은 연대가 너무 오래되어 부식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겨우 약간의 흔적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한양릉의 도용은 아주 많은데, 무사가 대량 있는데, 보병, 기병, 마차병이 모두 다 있다. 그외에 대량의 궁녀가 있고, 대량의 환관이 있다. 진시황의 병마용보다 전혀 적지가 않다. 도용을 만드는데는 조금 힘이 덜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팔을 만들어 붙이고, 의복을 입히고 하는 일까지 합치면 진용보다 돈이나 힘이 덜들지도 않았을 것같다. 그러므로, 근검절약했다는 점은, 부장품을 도둑맞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별로 맞지 않는 말이다.

 

가장 재미있는 점은, 양릉박물관안에 있는 수장갱을 관청의 서열에 따라 배치하였따는 점이다. 하나의 갱은 바로 한경제 생전에 그를 모셨던 하나의 기구이다. 구경중 태상아문의 태악, 태축, 태복아문의 차부등 사령오감, 위위, 중위와 같은 호위기구를 모조리 지하로 옮겨왔다. 차기장군과 같은 군대의 수령 및 부하들도 모조리 도용으로 만들어, 지하에서 황제를 보위하게 하였다. 특히 황제의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을 관장하는 소부아문의 모든 기구, 예를 들어 태관, 탕관, 악부, 태창, 그리고 포인, 알자, 황문, 환자, 영항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갱 안에는 모조리 생식기가 잘린 환관이 있었다. 하나의 갱 안에는 모조리 궁녀이다. 영항(永巷)과 같이 죄를 범한 궁녀가 가는 곳까지 모조리 지하세계로 옮겨왔다. 아마도 지하에서도 법률을 시행하려고 했나보다. 비빈이나 궁녀가 죄를 범하면 가야할 곳이 있어야 하니까.

 

만일 여기에 배장된 공신, 황제의 능침까지 합친다면, 상당히 완벽한 지하왕조가 된다. 지상에서 했던 것을 지하로 옮겨와서 계속 하는 것이다. 언제나 끝이 날까? 분묘가 도굴되면 끝장나는 것이다. 한나라황제의 능은 도굴당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무제의 무릉은 부장품이 가장 풍부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장 심하게 도굴당했다. 서한말기에 적미군이 마차를 가지고 와서 안의 것을 들어냈는데, 여러날을 들어내도 다 들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다 들어내고나니 남은 것은 흙뿐이다. 아무리 대단했던 황제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