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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대간사충(大奸似忠) 소하(蕭何)

by 중은우시 2009. 8. 5.

글: 정만군(程萬軍)

 

서한(西漢)의 개국승상(開國丞相) 소하는 어떤 사람인가? 그의 인생철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은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다. 이들 영향은 정말 민간에서 평가하는 것처럼 공덕무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의 명철보신(明哲保身)이지만, 소하는 장량(張良)처럼 시원스럽지 못했다. 그는 유방 부부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재상의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장량은 "가탁신도(假托神道)"를 내세워 갓(冠)을 걸어놓고 떠나갔지만, 철저히 떠나갔지만, 소하는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명성을 망가뜨릴 지언정 스스로 나서서 관직을 물러나지는 않았다. 장량과 비교하여 말하자면, 그를 죽을때까지 관직에 연연한 인물이라고 말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소하는 황노(黃老) 사상을 숭상했고, 무위(無爲)를 추구했다는 것은 모두 아는 바이다. 서한의 진영에서, 그는 오랫동안 '호호선생(好好先生)'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호호선생'의 실제 지위는 오히려 "노노(老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소하는 오로지 유방과 여치(呂稚)가 보는 쪽만 봤다. 그저 유방 부부가 필요로 하면 그는 뭐든지 다 했다. 그것이 간사한 인간이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한신(韓信)을 유인살해하는 건에 있어서, 소하는 "간사한 인간"의 역할을 했다. 유씨의 한나라천하에서 절반이상은 한신이 얻은 것이다. 이러한 명백한 공로를 소하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유방이 암시하고, 여후가 지시하자, 소하는 적극적으로 조주위학(助紂爲虐)을 하고, "청군입옹(請君入瓮)"의 중임을 맡는다.

 

아쉽게도 일생동안 총명했던 한신 대장군은 죽기 전에도 여전히 "소상국이 나를 구해줄 것이다"라고 갈망했다. 그는 전혀 몰랐다. 그를 지옥으로 보낸 사람이 바로 이 대간사충의 백락이었던 것을.

 

소하가 한신을 유인살해한 것에 대하여 후세인들은 소하를 위하여 변명을 해주기도 한다.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나 소하의 그동안 행적을 보면, 여기에는 전혀 부득이하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소하의 사기술이 얼마나 노모심산(老謀深算)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한신에게 어지를 보내어, 반란군이 이미 모조리 붙잡히고 참살당하였으니 여러 제후, 군신들은 입궁하여 경하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신은 자신을 해치려는 줄 알고,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이때, 소하는 옛 은사의 신분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진지'하게 한신에게 말한다: "네가 비록 몸에 병이 들었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입궁하여 경하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황상이 의심하지 않는다." 한신은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자신의 백락인 소하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신은 함정에 빠진 것이고, 스스로 함정으로 걸어들어갔다.

 

소하가 한신을 죽이는 것을 도운 것은 당연히 주군의 신임을 얻어 관직을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더욱 깊은 측면을 보자면, 이것은 이미 자신이 뽑았지만, 이미 총애를 잃은 천리마와 경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이같은 백락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어디에 선의가 있는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능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남을 해치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대간사충의 소하는 겉으로는 충후한 백락이지만, 그는 자신의 재상자리에 탐욕스러웠다.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주군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그는 조주위학을 마다하지 않았고, 자신의 손으로 기른 천리마를 죽였다. 얼마나 악독한가?

 

소하는 한신을 죽이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유방부부의 그에 대한 은총을 더욱 확실히 얻었다. 이것은 "영혼을 팔아 주인에 의탁하는 것이며, 선혈을 밟고 관직을 구하는 것"이다.

 

역사상의 많은 "호호선생"은 사실 반드시 호인인 것은 아니다. 그들이 신봉하는 중용철학은 '불편불의, 좌우봉원(不偏不倚, 左右逢源, 한편으로 기울거나 의지하지 않고, 양쪽에서 모두 얻어낸다)"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그들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에는 일종의 '담장위의 풀'과 같은 상태이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면 그 편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호호선생"은 중용의 신도이고, 그 본질은 대부분 시류를 따르고 영합하는 무리이다. 그들은 주관이 없다. 선악도 없다. 그저 영원히 가장 실력있는 주인을 따르는 것뿐이다.

 

중용철학의 극성은 강자철학이다. 소하는 앞뒤로 두 극성을 만났다. 앞에는 유방이오, 뒤에는 유방의 처인 여치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소위 중용은 어느 편으로 기울어지든 모두 가능하다. 몸을 온전히 빼내서 목숨을 보전한 장량과 비교하자면, 소하는 명을 지키는 것보다는 관직을 지키고자 했다. 관직을 지키기 위하여, 그는 모든 댓가를 마다하지 않았고, 흉악한 자를 도와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을 짓밟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방이 가장 꺼리는 것은 수하가 야심을 갖는 것이다. 사실 소하는 가장 야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유방에게 자신은 야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를 나타내야 했다.

 

원래, 소하는 "백성들을 잘 보살핀다"는 명성을 통하여 스스로의 호인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그러나 주군의 의심병이 가중되자,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하는 것도 백성들에게 환심을 사서 주군의 공을 덮으려는 야심의 일종이 된다. 그리하여 좋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하는 것도 하면 안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하는 거래강제, 매점매석등의 탐욕스런 일을 벌인다. 이것이 바로 소하가 스스로의 '명성과 절개를 더럽혀서' 관직을 보전했다는 뛰어난 수법이다. 어찌 불쌍하지 않은가.

 

비록 소하가 스스로를 이렇게 짓밟았지만, 주군인 유방은 완전히 그를 놔두지는 않았다. 소하는 60여세때 병중의 유방에 의하여 '대역무도' 죄로 감옥에 갇힌 적도 있다. 나중에 양심이 되살아나서인지 그를 석방해주긴 했다. 출옥후의 소하는 이미 고생을 해서 사람모양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되고서도 그는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종신승상으로 죽을 때까지 그 직에 있었다. 이를 보면, 소하가 관직에 집착하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하의 황노치세는 일종의 정치수단이다. 그리고 그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후세 관료사회의 기풍에 영향을 미쳤는데, 부작용이 아주 컸다. 소하이래로 이천년동안, 중국관료사회에는 '호호선생' 무리가 갈수록 많아졌다. 청나라 도광시절에, 군기처의 조진용은 "머리를 많이 숙이고, 말은 적게 하고.."라는 말로 그들의 생존철학을 농축시킨 좌우명을 삼았다. 그들은 하는 일도 없고 주견도 없다. 중국정계는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강시들의 묘지가 되었다.

 

생존철학이 전승을 보면, 소하는 이천년후의 조진용등의 조사이다. 조진영의 "머리는 많이 숙이고, 말은 적게하고"는 대를 내려갈수록 더욱 못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호선생'은 뒤를 잇는 자가 없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장량은 유방의 합작파트너이다. 그러나 소하는 그저 유방의 노재(奴才)이다. 합작파트너의 인격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다. 그러나 노재는 인격이 없다. 합작파트너는 오는 것도 자기 마음이요, 가는 것도 자기 마음이다. 독립해서도 살아갈 수 있다. 노재는 기생충이다. 주군에 붙어먹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장량과 소하의 본질적인 구분이다. 하나는 시원스럽고 하나는 구차스러운 철학적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