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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기구한 효평황후(孝平皇后): 황후에서 공주로

by 중은우시 2011. 4. 25.

 

 

: 이전원(李殿元)

 

황후에서 공주가 된 기괴한 운명의 여인이 있다.

 

왕망이 한()으로부터 황제위를 찬탈하여 신()나라를 건립하자, 한 사람이 당장 아주 난감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한평제(漢平帝)의 황후인 왕씨(王氏)이다. 그녀는 원래 왕망의 딸이다. 사료를 보면, 왕망은 이 딸을 아주 아꼈다. 그렇다면 그들 부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수2(기원전1), 한애제(漢哀帝)가 미앙궁에서 병사한다. 중산왕 유간(劉衎)이 황제에 올랐으니, 그가 한평제이다. 당시 나이가 겨우 9살이다. 태황태후 왕정군(王政君)은 조카 왕망을 대사마영상서사로 임명한다. 조정의 대소사는 모두 왕망이 조정하며, 한평제는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금방 3년이 지났고, 왕망의 딸은 이미 12살이 되었다. 그녀는 아름답게 성장했다. 이때 한평제도 12살이었다. 왕망은 태황태후에게 글을 올려 황제가 즉위한지 3년이 지났는데, 황후가 거주하는 장추궁과 황비들이 거주하는 액정에 지금 아무도 없으니, 국가의 유감이라고 한다. 왕망은 태황태후에게 어떤 황제에게 후손이 없었던 이유는 황후를 잘못 뽑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태황태후가 현명한 인재를 파견하여 자세히 오경을 연구하고, 황후가 갖추어야할 덕목과 조건을 찾아내도록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은나라 주나라의 왕족, 공자의 후손 및 장안성내의 각 제후등 명문귀족중에서 널리 선택하여 하늘의 뜻에 맞는 황후를 선발하자고 주장한다. 태황태후 왕정군은 왕망의 말이라며 뭐든지 들어주었다. 전문기구를 설치하여 이 일을 추진하게 한다. 왕망이 이렇게 한 목적은 분명했따. 바로 그의 딸을 한평제의 황후로 만드는 것이었다.

 

조건에 부합하는 여자들의 명단이 모여졌다. 왕씨가족중의 묘령소녀들은 대부분 여기에 포함되었다. 왕망은 마음 속으로 걱정이 생긴다. 이렇게 많은 묘령소녀들 중에는 분명히 자신의 딸보다 조건이 좋은 여자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딸과 황후자리를 다투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리하여 그는 태황태후에게 다시 글을 올린다: “저는 덕도 없고 재주도 없고, 제 딸의 여러 조건은 다른 사람만 못하므로, 제 딸을 다른 여자와 함께 뽑지 말아주십시오라고 거짓겸손을 보인다. 태황태후는 왕망이 마음 속으로부터의 겸손과 충성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고 즉시 명을 내린다: “왕망의 딸은 나의 외손녀이다. 그러므로 선발대상에서 제외한다.” 이렇게 하여 왕망은 자신의 딸을 특수한 지위에 놓이게 만든다.

 

왕망을 따르는 자들은 이것이 왕망에게 잘보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대거 여론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일반백성에서 대소관리까지 매일 천여명이 상소를 올려 청원한다. 공경대부는 조정에서 논의할 때건 아니면 한담을 나눌 때건 모두 왕망의 공훈이 탁월하므로 그의 딸이 당연히 국모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뽑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태황태후는 여론에 밀려, 왕망의 딸을 황후의 최우선후보로 뽑는다.

 

원시4(기원4) 이월, 대사도와 대사공이 친히 영친대오를 이끌고 와서 왕망의 딸을 모셔간다. 13살의 왕씨는 봉연에 올라서, 장추궁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여 대한왕조의 퍼스트레이디가 된다. 태황태후 왕정군은 친히 황후인수를 부여한다. 이렇게 하여 13살의 왕황후는 왕망이 권력을 강화하는 하나의 말이 된다. 그녀는 어리벙벙한 사이에 천국이 아닌 황궁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부친의 이러한 조치가 그녀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고, 그녀를 아주 난감한 처지로 몰아넣는 것이라는 점을.

 

국장(國丈)’이 왕망의 최종목표는 아니었다. 그는 황제의 자리를 오랫동안 탐내왔다. 금방 딸과 한평제의 혼사를 성사시킨 왕망은 14세의 어린황제가 후손을 낳아서 그가 황제위를 찬탈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 부부에 대한 음모를 꾸민다.

 

원시5(기원5), 십이월 초파일, 속칭 납팔에 왕망은 한평제에게 술을 권하면서, 독약을 술잔에 넣는다. 그리하여 한평제는 중독을 당해 병이 위중해진다. 그리고 얼마후 미앙궁에서 세상을 떠난다. 왕망의 딸은 겨우 22개월간 황후로 있다가, 한평제의 죽음과 더불어 황후의 지위를 잃게 된다.

 

권력찬탈의 발걸음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왕망은 나이 겨우 2살인 유영(劉嬰)유자(孺子)’로 하고 15세된 왕황후는 황태후가 된다. 미성년의 나이에 벌써 과부가 된 것이다. 거섭3(기원8), 왕망은 유자 유영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다. 그리고 한나라를 신나라로 바꾼다. 왕태후는 안정공태후(安定公太后)로 격하시킨다. 부친의 찬탈행위를 그녀는 대역무도한 행위로 보았다. 왕황후는 한나라에 대한 충정을 지켜서, 문을 걸어잠그고 바깥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병석에 눕는다. 이때 그녀의 나이 겨우 20살이다.

 

신나라의 황제 왕망은 딸에 대하여 걱정을 하면서도 화가 났고, 또한 두렵기도 했다. 걱정되는 것은 그녀의 존재이다. 천하백성들이 한나라를 그리워하는데 영향을 준다. 화가나는 것은 자신의 딸이면서, 그녀는 부친을 지지하지 않고, 부친이 대역무도하다고 질책하는 것이다. 두려운 것은 그녀의 한나라에 대한 충정은 왕망을 백성들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병이 일어나서 한나라강산을 되찾자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왕망이 황제에 오른 후 하나의 골치거리가 된다.

 

왕망은 여러 번 딸에게 개가를 권한다. 그리고 그녀를 위하여 젊고 영준한 청년들을 많이 소개시켜준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그리하여 왕망은 그녀에 대한 봉호를 황황실주(黃皇室主)로 바꾼다. 그 뜻은 그녀가 더 이상 한나라의 황태후가 아니고, 신나라황제 왕망의 시집가지 않은 공주라는 것이다. 동시에 왕망은 계속하여 귀중한 장식품을 보내준다. 사람을 보내어 얘기도 하게 했는데, 목적은 그녀를 설득하여 개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는 사람마다 화난 눈으로 노려보고, 채찍질을 해서 문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왕망의 노력은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하고싶은대로 하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

 

지황3(기원23), 왕망의 신나라는 위기에 닥친다. 마침 큰 가뭄이 들어, 메뚜기떼가 사방에서 설쳤다. 관중지방에서는 곡식을 한 톨도 거두지 못했다. 굶주린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왕봉이 이끄는 녹림군이 밀고 들어와서 왕망의 군대를 무찌른다. 한나라 종실의 유씨 후손들은 이 기회를 틈타서 병사를 일으킨다. 일시에 신나라는 누란의 위기에 처한다. 구월, 녹림군이 장안으로 쳐들어오고, 신나라의 고관대작들은 평소에 왕망을 쫓아다니면서 왕망에게 아부를 했었는데, 이때는 상가집 개처럼 도망가기에 바빴다. 황궁을 지키는 군대도 투항하고, 의병은 황궁으로 들이닥친다.

 

이때, 효평황후, 즉 황황실주가 거주하는 궁전도 불이 붙는다. 의병 병사들은 도끼로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반적 왕망은 아직도 투항하지 않느냐고 소리친다. 왕씨는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비록 한나라황실에 충성을 다하였지만, 자신은 반적 왕망을 딸이므로 아무리 천하사람들에게 설명해봐야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무슨 면목으로 한나라사람들을 만날 것인가라고 말하며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