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한국/한중관계

추욱: 중국문화의 성이 한(韓)씨라고 해서 누가 신경쓸 것인가?

중은우시 2006. 11. 2. 22:52

작자: 추욱(秋旭)

 

중국이 고구려왕릉과 장군총 유적에 대하여 세계인류문화유산신청을 한 이래로, 한국에서는 이에 대하여 항의를 제기한 후, 일부 사람들이 역사를 가지고 조작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중국의 역사나 역사인물에 대하여 하나하나 한국의 표찰을 붙이기 시작했다. 마치 중화역사는 모두 한국역사의 일부분인 것처럼. 이러한 행동은 일부 중국인들의 분노를 불러왔고, 그들은 이것이 한국에 의한 문화침략이라고 받아들이고 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그러나, 중국내에서 누가 한국인의 이런 행동에 신경을 쓰고 있는가?

 

한국이 문화측면에서 중국인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부분은 단오절에 대한 세계문화유산신청, 공자세사, 한국인이 한자를 발명했다는 주장등이다. 이런 것들은 마치 예수가 백인이냐 흑인이냐와 같이 사람들의 이상을 표현하는 성격을 담고 있고, 원래의 역사적인 모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유럽에서 미주까지, 러시아에서 남아프리카까지, 교회에서 성상을 보면 예수는 표준적인 백인이다. 이탈리아인이 그린 예수는 이탈리아인같고, 러시아인이 그린 예수는 러시아인을 닮았다.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인을 닯았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예수는 이탈리아인도, 러시아인도, 더구나 아일랜드인도 아니다. 그는 유태인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유태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예수가 유태인이 아니라면, 예수가 배신당하고 박해당할 동기가 없지 않겠는가? 바로 유태교장로들이 예수는 유태교의 교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로마인에게 그를 넘겨 처단받게 하지 않았는가. 나중에 유명한 사상가인 마르크스도 유태인이다. 비록 그의 부친은 이미 신교로 개종하였으나, 유태주의자들은 여전히 마르크스를 유태인으로 보고 있다. 나치도 이렇게 보았고, 그래서 그들은 극력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하였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가지이다. 한국측에서 어떻게 주장하더라도, 중화문화의 원래 모습은 바뀔 수 없다는 것이다. 중화문화는 포용성이 매우 강한 문화시스템이다.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것은 유럽의 희랍문화와 로마문화 및 나중에 형성된 유럽문화와 아랍지구에 형성된 이슬람문화등이 있다. 중화문화는 그 형성, 발전과 영향범위가 중국의 국경선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재 많은 아시아국가들은 중화문화를 영위하고 있다. 일본, 월남, 북한, 한국등이다. 비록 몽고는 일찌감치 중국에서 독립해 나갔지만, 중국역사는 북방민족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었다. 중국북방지역에서는 농업문명과 유목문화간에 계속적인 충돌이 있어왔고, 이러한 충돌은 중화문화에서 아주 중요한 하나의 구성부분이다.

 

일본은 계속 스스로 중화문화를 계승해서 크게 발전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이후, 일본은 중화문화가 이미 낙후되었다고 보고 서방문명을 받아들였다. 현재 일본은 스스로 서방문명를 성공시킨 아시아에서의 대표적인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이 중화문화를 발전시키는 측면에서는 중국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는 것을 서법, 바둑, 차도, 태극권등이 그것이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일본이 이런 측면에서 세계문화유산을 신청한다면 그들이 훨씬 더 많은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왜 이런 부분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일까? 분명히, 일본인들은 이성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중화문화에서 받아들여서 발전시킨 문화이고, 이런 노력을 함으로써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자신들의 문화가 독창성이 없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특징만 드러낼 뿐이라는 것을. 일본은 사상문화의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낙후한 문명에 의존했다고 하고 싶지 않고, 유럽의 현대문명에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중국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시키는데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한국은 마치 중국문화를 외래문화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많은 한국인들은 마치 그들이 중국에서 분가해나간 형제로 생각하는 듯하고, 부모집에서 편하게 얻어먹고 몇 가지를 집어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가다. 사실 이것은 한국이 오랫동안 억압받고 착취당해온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역사에 의하여 형성된 자비감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기 전에, 조선은 계속 중국의 속국이었다. 그저 왕으로 봉함을 받았을 뿐이다. 조선인들은 중국의 속국이라는데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 중국을 대체하여 조선을 철저히 식민지로 만든 후, 한국은 중국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들은 일본인들은 조선을 통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조선은 스스로 독립하려고 한 것이다. 독립과 자주는 조선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압박으로부터 독립한 조선이 발견한 것은 자기의 문화전통이 양대종주국과 이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문화상의 독립은 양대종주국의 몸에서 살을 떼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세계문화유산신청에서 한국은 일본과 차도문제에서 충돌을 일으킨 적이 있다. 사실 이러한 충돌이 많을수록 문화가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한국이 이후에 중국에서 익숙한 문화내용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다면 여전히 동일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공자가 한국사람이라는 주장에 대하여는 도저히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편집증적인 바람만으로 수천년의 역사를 뒤집을 수는 없다. 더구나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하더라도, 공자가 중화문화에 미친 거대한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중국인이 아니지만 중국에서의 지위는 대단하다.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은 프랑스인이 아니지만, 그를 언급하는 사람은 모두 프랑스대혁명과 프랑스제국을 생각한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인이지만 히틀러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하는 것은 제3제국이다.

 

모든 논쟁은 의미가 없다. 특히 길거리에서 장난꾸러기 어린애들이 싸우는 것과 같다. 목소리가 쉬는 걸 겨루는 외에 뭘 얻을 수 있겠는가.

 

한가지 중국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아니면 세계의 다른 지역이든 중국의 우수한 문화가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중화문화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이러한 우수한 문화가 활력을 잃었고, 심지어 쇠락했다. 이것이 우리가 슬퍼해야할 일이 아닌가. 특히 중화문화의 주체인 한족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한족을 대표하는 노래, , 결혼의식 또는 생활방식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조상이 발명한 문자로 쓰는 것들이 모두 외국의 문장을 번역한 것들이고, 소개하는 것들은 모두 외국의 문화내용과 생활양식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마르크스사상은 공자의 사상보다 훨씬 잘 알려져 있고, 익숙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생활양식은 우리의 전통생활양식보다 훨씬 더 익숙하다. 우리는 중국도 아니고 서양도 아니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의 집단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중화의 전통문화가 다른 나라에게 잘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우리는 기뻐해야 할 것인가?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