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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만리장성은 단지 외적을 막기 위한 것일까?

by 중은우시 2013. 11. 10.

글: 양혜왕(梁惠王) 

 

고대에 "관량(關梁)"은 합쳐서 불렀다. 바로 교량(橋梁)과 관문(중국어로는 '關卡')을 합친 말이다. 고대인들이 보기에, 이는 같은 것이었다. 왜 "교량"을 "관문"과 같이 취급했을까? 첫째는 고대인들이 변경(국경선)은 자연스러운 산(山)과 물(水)을 기초로 한다. 강물에는 '교량'을 설치하면 자연스럽게 관문으로 된다. 둘째는 "양(梁)"의 원래 뜻은 바로 '하나의 횡목(橫木, 가로지른 나무)'이다. 즉 물이 없는 곳이라고 나무 하나를 가로질러놓으면, 행인을 막을 수 있고,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다. 이것은 합법적인 것이다. 만일 불법적인 것이라면 수시로 뛰어넘어가면서 크게 소리치면 된다. "전경(剪徑, 길을 막고 강탈하다)" 도로를 막는 것은 안과 밖을 격리시키는 것이다. 양자가 서로 통하지 않게 만든다. 이것은 횡목의 기능과 같다.

 

필자는 일찌기 "농단(壟斷, 독점이라는 뜻)"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 글을 쓴 바 있다. 소위 '농단'은 바로 관문을 가로로 설치하는 것이다. 도로를 "농조(籠罩, 덮어씌우다)", "절단(截斷)"하여 양쪽을 서로 통하지 않게 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의 두 눈을 가려서, 바깥이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게 한다바깥쪽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천지는 넓고, 안쪽만큼 가련하지 않다. 그 말의 의미와 '차폐(遮蔽)'는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통로를 막는 것은 눈을 가리는 것과 같고, 시선을 가리는 것과 같다. <우공이산>의 고사에서, 마지막에 우공은 하늘을 감동시켜, 과아씨(瓜娥氏)의 두 아들이 태행산, 왕옥산 두 산을 우공의 집문 앞으로 옮겨왔다. "이때부터 기(冀)의 남쪽, 한의 북쪽(漢陰)에는 농단이 없었다." 그 뜻은 기주의 남쪽, 한수의 북쪽에는 이때부터 탁 트여서 더 이상 가리는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농단이 없다"는 것은 "가리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말하는 농단집단은 기실 다른 사람을 가리고, 자신이 이익을 독점하는 것이다. <염철론>에서는 "장산택(障山澤)"이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뜻이다. "장"이라는 것은 가린다는 것이고 가리는 것은 독점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추단할 수 있다. 내외를 절단하고 자원을 독점하는 것을 고인들은 '농단'이라고 불렀다. 거기서 '농(壟)'자는 ,<염철론>에서는 "농(籠)'이라고 썼다. 상홍양(桑弘羊)은 한무제를 도와서 염철전매를 시행하고, 민간기업이 취급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를 "농염철(籠鹽鐵)"이라고 불렀다. 이는 아주 생동적이었다. "염(소금)"과 "철(쇠)"는 '새장'안에 집어넣고 그가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한 나라를 새장으로 만들어 버리면, 안에 있는 사람의 운명도 자연히 같아진다. 그래서, 전제사회의 본질은 '농단' 두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제(專制)의 '전(專)'은 '전유(專有, 독점적으로 가진다)'는 것이고, 제(制)는 재단(裁斷)한다는 말이다. 전제는 혼자서 재단하는 권리이다. '농단'과 의미가 서로 통한다.

 

그래서, 변경관리가 엄한 국가에서는 통치자들이 모두 백성을 전매권을 취득한 가축으로 취급한다. 이런 국가는 완전히 국민의 재난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누가 당신은 새장 속에 갇힌 동물이 되도록 했는가.

 

이로서 계속 추단해보면, 위대한 만리장성은 절대로 중국의 자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통치자들은 일찌감치 말했다. 장성은 전문적으로 대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원제(漢元帝)때, 장기간의 밀고당기기식의 전투를 거쳐, 흉노는 내란이 발생한다. 호한사선우가 한나라에 귀순하고, 양국은 더 이상 싸우지 않겠따고 맹세한다. 그리고 한원제에게 변새수위(邊塞守衛)를 철거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는 한왕조를 위하여 변경을 자신이 지키겠다는 것이다. 한원제는 여러 신하들과 토론했다. 낭중령 후응(侯應)은 반대의견을 낸다. 그는 10가지 이유를 내세웠는데, 몇 가지는 특별히 장성의 또 다른 공능을 얘기했다. 그중 4번째는 이렇다:

 

"중국이 관량(關梁)을 설치하여 제후를 견제했다. 그래서 신하들이 쳐다보는 것을 막았다. 새요(塞徼)를 두고, 둔융(屯戎)을 설치한 것은 선우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 속국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투항한 백성은 원래 옛 흉노의 사람이고, 그들이 옛고향을 생각하여 도망갈까 두려워해서이다."

 

그 뜻은 중국국내에 무수한 관량을 설치하는데. 이것으로 국내 제후를 상대한다. 장성은 선우만을 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각 투항한 속국 백성을 방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전에 흉노인이었다. 그들이 고향을 생각하여 도망갈까봐 겁냈다는 것이다.

 

이 것은 아주 솔직하다. <장가산한간>에 따르면, 한나라의 중앙정부는 함곡관(函谷關)의 방어를 아주 중시했다. 무릇 대규모의 살상무기 예를 들어 몇 석이상의 노(弩)는 모두 함곡관을 나갈 수 없게 금지했다. 동쪽의 제후국민들이 관중의 여자와 결혼하려는 것은 한나라사람이 도망가도록 유인하는 것이므로 중형에 처했다. 관중은 한왕조의 직접적인 금지이다. 농단중의 농단이다. 그외에 후응은 다른 3가지 이유를 열거했는데 아주 솔직했다:

 

"가는 자들은 군대에 들어가서 죽고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자손은 빈곤하다. 일단 떠나면 그 친척들이 따른다. 이것이 여섯째이다. 그리고 변방의 노비는 힘들고 원망스러워 가고 싶어하는 자가 많다. 흉노로 가서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방을 잘 지키고 있어서 언제 떠날까 생각만 하고 있다. 이것이 일곱째이다. 도적은 교활하다. 무리를 지어 법을 어긴다. 만일 급박해지면 북쪽으로 도망치더라도 막을 수가 없다. 이것이 여덟째이다."

 

여섯째 설은 한나라에서 흉노에 투항한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러므로 국내의 사람들이 친척에게 의탁하러 가게되면 국내의 노예수량이 줄어들까와 걱정했다. 이것은 통치자에게 있어서 아주 큰 손실이다. 일곱째는 더욱 적나라하다. 변경의 노비는 생활이 힘들어 시시때때로 방법을 강구하여 관을 넘어 도망치려고 한다. 저쪽은 낙토라고 생각하고 흉노에 가서 행복한 생활을 보내려고 한다. 한나라의 변방 방비가 엄격하여, 도망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여덟째 이유는 범죄자가 중국을 벗어나 도망칠까와 우려한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에 불안정요소가 된다.

 

한원제는 그의 말을 듣고 아주 즐거워한다. 그래서 "거기군(車騎軍)을 보내어 선우(單于)에게 구두로 말을 전했다: 중국에도 관량이 있고, 이는 외적을 방비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중국의 간사한 자들이 방종하여 밖으로 나가 도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도로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호한사는 그 말을 듣고는 원래 그랬구나라고 알게 된다. 그래서 더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항상 자랑으로 여기는 장성의 큰 작용이다. 오랫동안, 교과서는 우리에게 말해왔다. 장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기 위하여 만들었따고. 그러나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외적의 침입을 막는 효과는 좋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지 않다면, 유목민족이 여러번 중국을 쳐들어와 정권을 차지했겠는가? 기실 장성의 더욱 주요한 기능은 바로 : 내외 재산 및 차단이다. 안의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재물이든 인구이든 외부의 사람들이 도망쳐오든지 말든지 그것은 마음대로 해도 되었따. 듣기거북하겠지만, 그것은 주로 노예를 가둬놓는 울타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