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사회/중국의 민족

위구르와 돌궐의 역사적 연원

by 중은우시 2013. 4. 13.

글: 백작(伯爵) 

 

위구르족이 독립을 주장하면서 왜 신강을 동투르키스탄(東突厥)이라고 부를까?  위구르족이 돌궐족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런 관계는 1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원래 몽골고원의 흉노, 선비등 민족이 서진(西晋)을 멸망시키고, 속속 남으로 이주한다. 그래서 몽골고원은 진공상태가 된다. 이때 원래 시베리아에서 활동하던 유목민족인 철륵(鐵勒)의 각부족이 몽골고원으로 진입한다. 철륵인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주로는 3 갈래이다: 한 갈래는 철을 단련하는데 능숙하며 돌궐(突厥)이라고 불린다; 다른 한 갈래는 9개성의 철륵이 연합한 것으로 회흘(回紇)이라 부르는데, 위구르족의 조상이다; 나머지 한 갈래는 설씨(薛氏)와 연타씨(延陀氏)로 구성되어 설연타(薛延陀)라고 부른다. 그들은 처음에 유연(柔然) 부족에 정복당하여, 유연칸국에서 노역에 종사한다. 6세기 전기에 돌궐인들이 먼저 반란을 일으켜, 유연국을 멸망시키고, 돌궐칸국을 건립한다. 돌궐인은 비록 회흘, 설연타와 친척관계이지만, 그들은 건국한 후에 유연과 마찬가지로 형제민족들을 탄압했다.

 

7세기전기,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회흘과 설연타는 돌궐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설연타는 칸국을 건립한다. 당태종후기, 당나라와 회흘은 공동으로 설연타칸국을 멸망시킨다. 당고종(7세기후반)시기에, 후돌궐칸국이 건립되고, 회흘은 다시 돌궐의 노예로 전락한다. 744년, 회흘인은 수령인 골력배라(骨力裴羅)의 지휘하여 다시 반란을 일으켜 돌궐의 노역에서 벗어나고 칸국을 건립한다. 얼마후, 회흘인은 후돌궐칸국을 멸망시키고 몽골고원의 주인이 된다. 대부분의 돌궐인들은 통치받기를 원치 않아서, 서쪽으로 이주한다. 소아시아반도까지 이주한 한 갈래가 오스만투르크제국을 건립한다. 바로 오늘날 터키의 전신이다. 이때부터 돌궐인, 회흘인의 주체는 연결이 끊긴다. 회흘은 788년 회골(回鶻)로 개칭한다. 848년 회골칸국은 힐알스(黠戛斯, Kiryiz)인들에게 멸망당한다. 그리고 신강, 감숙으로 이주한다. 몽골족이 강대해진 후에는 그들을 외올아(畏兀兒)라고 부른다. 바로 오늘날 위구르(維吾爾)족이라는 명칭의 유래이다. 1865년이후, 위구르의 봉건군주 김상인(金相印)은 호한국(浩罕國) 군벌 아고백(阿古柏)의 침입을 받아 철덕사이국(鐵德沙爾國)을 건립한 후, 위구르족은 비로소 돌궐인과 다시 관계를 건립하기 시작한다. 철덕사이국은 투르크제국의 번속국이 된다. 다만, 이런 번속관계는 좌종당이 신강을 수복한 후 해제된다. 그들은 둘 다 이슬람교를 받아들여서, 서로 길은 달랐지만 같은 곳으로 갔다.

 

이전의 역사를 보면, 위구르족과 돌궐족은 원래 모두 하나의 민족, 철륵에 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1천여년전의 분화와 격리를 거쳐, 이미 서로 다른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역사상 이 두 민족간의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게였고, 망국의 한이 있었다. 그들의 과거교류경력은 어쨌든 유쾌하지 않은 것이다. 비록 그들의 언어, 종교는 아주 가깝지만,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친척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