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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주발과 주아부: 서한(西漢) 부자명장과 감옥

by 중은우시 2013. 11. 10.

글: 풍점우(馮占宇) 

 

주발(周勃) 은 서한(西漢)의 개국공산이다. 유방을 따라 남정북전(南征北戰), 공성약지(攻城掠地)에 큰 공을 세우고, 강후(絳侯)의 작위에 봉해진다. 주발의 아들인 조후(條侯) 주아부(周亞夫)는 치군(治軍)이 엄명하고, 용병(用兵)에 능한 것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

 

주발의 집은 패현(沛縣)에 있다. 유방의 고향이다. 유방의 반란집단에 참가하기 전에, 주발이 종사한 것은 편직가공업이었다. 죽편(竹片, 대나무), 위초(葦草, 갈대)등 재료를 가지고 잠박(蠶箔)을 짰다. 양잠하는 집에 누에를 담는 기구를 제공한다. 편직기술외에 주발은 퉁소를 잘 불었다. 이 특기를 가지고 그는 겸직을 하게 된다. 상가집에 가서 현장에서 슬프게 연주하는 것이다.

 

난세에는 요얼(妖孼)이 많이 나온다. 당연히 난세에는 영웅도 나온다. 진나라말기의 천하대란때, 주발은 난세에 굴기한다. 그는 고조 유방을 따라 반란에 가담하다. 아주 낮은 지위에서 시작하여, 계속 상승한다. 유방이 관중에 들어간 후, 항우의 앞에서 꾹 참고 인내해야 했을 때, 주발은 위무후(威武侯)라는 작위를 수여받는다.

 

한나라가 건립된 후, 여전히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늘은 이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고, 내일은 저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 유방의 정벌은 끝이 없었다. 주발은 유방의 뒤를 따르며, 그의 전공은 갈수록 높아진다. 마지막에 그는 산서 강현을 주발에게 주고, 팔천일백팔십호의 공양을 받게 한다. 주발은 이렇게 하여 '강후'라는 대칭(代稱)을 얻게 된다.

 

주발은 전투에 용맹할 뿐아니라, 사람됨이 소박하고 충후했다. 유방은 주발의 성격을 잘 알았다 그래서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긴다: "주발은 후중소문(厚重少文)하다 유씨를 안정시킬 자는 반드시 주발이다." 그리고 주발을 태위(太尉, 국방부장관에 해당함)에 임명한다. 주발은 비록 학문은 없지만, 그의 충성심은 절대로 믿을 만하다.

 

여후전권(呂后專權)때, 여씨가족이 창궐사학(猖獗肆虐)할 때, 주발의 태위직은 수행하기가 어려웠고, 그저 암담무광(暗淡無光)하게 지내며 별다른 성취를 얻을 수 없었다. 여후가 죽자, 주발은 즉시 정신을 차리고, 분연히 일어나서, 지휘관 겸 전투원의 신분으로, 교만하고 포악했던 여씨가족을 토벌한다. 유씨에게 정권을 되찾아 준다. 무리를 이끌고 당시의 대왕(代王) 유항(劉恒)을 장안으로 모셔와서 황제에 옹립한다. 주발은 그 자신의 행동으로 유방의 "안한필발(安漢必勃)"이라는 예언을 인증한다.

 

강력한 배경을 갖기 위하여, 동시에 주발이 그를 옹립하는데공을 세웠으므로, 한문제 유항은 취임후, 두번에 걸쳐 주발을 승상에 임명한다. 그 동안, 주발의 직업생애는 가장 휘황된 클라이막스를 맞이한다. 두번에 걸쳐 문무관리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물극필반(物極必反), 성극필쇠(盛極必衰)인 법이다.

 

주발은 승상의 지위에서 느긋하게 있으면서 영화부귀를 누리고 있을 때, 그는 부득이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작위를 받았지만, 아직 정부부서에서 구체적인 직위를 얻지 못한 공신들은 모두 장안성안에 머물면서 봉지로 가지 않아서, 수도 장안의 자원부족을 조성했다; 그리고 치안에 문제를 불러왔다; 동시에, 봉지의 인력을 낭비하여 장안으로 재물을 운송했다. 황제 유항은 일찌기 여러번 명령을 내렸지만, 작위를 받은 사람들은 철면피로 버텼다.

 

도성은 가장 번화한 곳이다. 제후들은 이곳에 있으면 가장 편안했다. 고품질의 생활을 누릴 수도 있고, 남의 위에 있다는 명예감을 누릴 수도 있었다. 현재 강제적으로 그들이 떠나게 하는데는 힘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항은 주발을 상대로 칼을 든다: "승상, 나는 당신을 아주 중시합니다. 당신이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기실 당시의 정책에 따르면, 주발과 같은 상황, 실제업무가 있는 사람은 자녀만 봉지로 가도 되었다. 이를 보면 유항은 그를 다시 기용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항은 주발의 흉무성부(胸無城府)의 자만을 좋아하지 않았고, 정치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국가기구의 운행을 추진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업무기풍이 보수적이 주발을 버리고자 한 것이다. 그외에 주발은 품격상 치명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쉽게 교만해지고 자만하는 정서이다. 여건이 좋아지면 자고자대(自高自大)하는 버릇이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아들 주아부는 부친의 성격을 그대로 닮았다. 유항은 주발의 천박한 교만에 대하여 불쾌함을 느끼곤 했다.

 

주발은 영광스럽게 면직된다. 더 이상 정부의 직무를 맡지 않는다. 그의 직장생애는 이렇게 끝났다. 그는 그저 짐을 싸고 가솔을 이끌고 자신의 봉지인 산서 강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여유있고, 때때로 놀라고 불안한 노년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주발이 봉지로 돌아간 후, 수중에 권력이 없어지니 이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처벌햇으므로 마음 속으로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아주 취약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주발의 봉지인 산서 강현은 당시에 하동군에 속했다. 군수, 군위와 같은 지방의 일,이인자들이 강현을 지날 때면 주발을 방문하곤 했다. 그때마다 주발은 극도로 긴장한다. 지방관이 그를 붙잡아 죽일까봐. 회견때 주발은 갑옷과 투구를 입고, 마치 양군이 대치하는 것처럼 하고 있었으며, 그의 집안사람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손에 무기를 들고 마치 대적을 상대하는 것처럼 했다.

 

시간이 오래되니 모두 주발의 이상한 거동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중앙정부에 고발한다. 주발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같다고.

 

주발과 같은 원로라면, 약간 개인적으로 돈을 챙기고, 약간 직권을 남용하고, 약간  부정부패하는 것은 큰 관계가 없다. 어쨌든 평생 고생한 사람들이고, 그렇게 많은 공로를 세웠으니까. 당국이 그냥 눈감아줄 수 있고, 크게 추궁하지 않는다. 오로지 반란은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뇌지이다. 건드리면 분신쇄골될 수밖에 없다. 그저 팔다리만 다칠 가능성도 거의 제로이다.

 

유항은 주발을 정위(廷尉)에게 넘겨 재판하게 한다. 정위는 골치아프다고 생각하여 장안의 사법부서에 넘겨서 재판하게 한다. 장안의 사법부서는 주발을 체포한다. 평소에, 주발은 비교적 간언을 잘 들어주었다. 심문과정에서, 주발은 지나치게 긴장하여, 습관적인 버릇이 나오게 된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천천히, 감옥안의 간수(看守)도 약간은 주발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자주 와서 그를 괴롭히거나 모욕을 준다. 네가 승상을 지냈더라도 지금은 감옥에 갇힌 범죄혐의자이다. 이전에는 네가 호랑이였지만, 지금은 순한 양이다. 주발은 이런 낙차를 실로 견디기 힘들었다. 가족에게 감옥의 간수장에게 천근의 황금을 보내고, 간수들에게 잘 돌봐주도록 부탁하게 시킨다. 간수장은 바로 태도를 바꾸어, 주발을 존중해줄 뿐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를 위하여 방법을 강구한다.

 

간수장은 목간(木簡)을 통하여 주발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공주로 하여금 증인이 되도록 하십시오.

 

주발의 큰아들 주승지(周勝之)의 처는 바로 유항의 딸이다. 즉, 주발은 유항과 사돈간이다. 주발은 확실히 멍해진다. 공주라는 인맥자원을 이용하지 않다니,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일깨워주도록 놔두다니.

 

주발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응용까지 한다. 집안사람으로 하여금 유항의 외삼촌 박소(薄昭)에게 부탁하도록 시킨다. 그에게 유항에게 잘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자기집의 며느리야 그냥 일을 시키면 된다. 그러나 박소는 그냥 일해달라고 할 수가 없다. 주씨집안은 주발이 승상에 승진할 때 받은 재물을 박소에게 바친다. 그것은 5천근 황금이다.

 

박소는 돈을 받자, 일을 할 동력이 생긴다. 정신을 모아서 주발사건의 진전을 살펴본다. 그리고 사건이 종결되기 직전에, 박소는 행동을 취한다. 그는 누나 박태후에게 가서, 주발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기실 박태후는 주발이 모반을 일으킬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서서 사람을 풀어주라고 하자, 황제 유항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모든 사법절차는 다 생략한다. 박태후의 개입은 주발이 감옥에서 빨리 나오게 해주었다. 그는 충신의 명예를 회복했을 뿐아니라, 이전의 대우도 회복한다.

 

감옥에서 나온 주발은 황상에게 감사할 여유도 없이 이런 감탄을 내뱉는다: 나는 일찌기 백만대군을 통솔했는데(백만은 과장일 것이고 아마 수십만이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 오늘에야 알았다. 간수가 정말 존귀하다는 것을1

 

간수가 왜 존귀하지 않을 수 없는가. 감옥에 들어가면 그는 마음대로 너의 인신자유를 통제할 수 있을 뿐아니라, 너의 목숨까지도 그의 손아귀에 달려있게 된다. 간수는 계속 존귀하다 그들의 지위는 아무도 움직일 수 없다.

 

인신안전을 얻으면서 많은 재산을 잃은 주발은 그의 봉지로 돌아간다. 7년후, 즉 기원전169년 그는 사망한다. 정부가 그에게 내린 시호는 "무후(武侯)"이다.

 

원래, 주발의 작위를 계승하는 것은 그의 장남 주승지였다. 그러나 이 '관료이세'는 살인을 저질러 형법을 위반한다. 황제 사위라는 신분으로도 그는 완전히 면책될 수 없었다. 그래서 작위는 폐지된다.

 

주씨집안의 작위는 1년여동안 비어 있게 된다. 여러 방면의 조사를 거치고, 종합적인 평의를 거쳐, 주아부가 후계자로 선정된다. 조후라는 작위를 수여한다. 당시의 주아부는 하내군의 군수였다.

 

기원전158년, 흉노가 변경을 침략한다. 중앙정부는 주아부로 하여금 부대를 이끌고 장안을 지키게 한다. 주둔지는 세류영(細柳營)이었다. 한문제가 와서 장병들을 위로할 때, 주아부의 군대는 군기가 엄정하다는 것을 보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후 주아부는 장안에 남아서 중위(中尉, 수도경비사령관에 해당함)가 된다.

 

기원전154년,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든 "칠왕지란"이 발발한다. 조후 주아부는 태위의 신분으로 36명의 장군을 이끌고 전쟁터로 달려가서 반란을 평정한다. 전선에서, 주아부는 늠름하게 지휘하고, 진퇴가 적절하여, 일거에 반란의 핵심역량인 '오초연합군'을 궤멸시킨다. 그후 반란연맹은 와해된다. 이제 '칠왕지란'은 사회에 혼란을 조성하지 않게 된다.

 

만일 오초반군이 순조롭게 서진하여, 중원으로 쳐들어갔다면, '칠왕지란'은 '다왕지란'으로 악화되었을 것이다. 전쟁의 불길은 장성 내외, 대강남북으로 번져갔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을지도 모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아과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주택들이 허물어지고, 얼마나 많은 재물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유방으로부터 나중에 집권한 여후까지, 그리고 유항등의 군신들은 반세기여동안 휴양생식(休養生息)에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알려진 '문경지치'는 아마도 도중에 요절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조후 주아부는 전쟁 하나를 이겼을 뿐아니라, 한 시대를 구했던 것이다.

 

반란을 평정한 공신으로 주아부는 한경제 유계(劉啓)의 총애를 받는다. 얼마 후, 그는 승상에 임명되어 국가정부를 총괄한다.

 

그러나, 군사강자 주아부는 승상의 직위에서는 별로였다. 전혀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주요원인은 바로 황제와 자주 의견출돌이 일어난 것이다. 화해하지 못했다.

 

황제 유계는 아무런 공로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주량은 있는 외사촌형 왕신을 후작에 임명하려 하자, 주아부가 반대한다. 반대의 이유는: 한고조가 정한 법도에 공이 없고 능력이 없으면 후에 봉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유에 유계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나라의 적수인 흉노쪽에서 5명이 도망쳐 온다. 유계는 그들을 후작에 임명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여 더 많은 흉노반도들이 한나라로 투항하게 하려 한다. 승상 주아부는 다시 반대의견을 내놓는다. 이유는: 이 몇 사람은 어떻게 보더라도 반도이다. 만일 이렇게 높은 봉상을 내린다면 그것은 반란을 종용하는 것과 같다!

 

유계도 이번에는 침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개인이익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승상의 건의를 채용할 수 없다. 말을 아주 직접적으로 했고,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지난번에 반대당한데 대한 불만을 그대로 발설했다.

 

승상은 수석대신이다. 그의 의견은 황상이 중시해야 한다. 그런데 황상은 여러 사랃들 앞에서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승상의 자리에 계속 남아있으면 스스로 불편한 짓을 골라하는 것이 아닌가. 주아부는 상하관계가 악화되었다고 여긴다. 그리고 알아서 스스로 사직한다: 자신의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서 휴양하며 병치료를 해야해서 출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아부가 집에서 한동안 지낸 후, 황제 유계가 승상의 직무를 면직시킨다.

 

누구든지 나에게 반대하면 그는 끝장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유계의 인생철학일 것이다.

 

주아부는 출근하지 않을 수 있다. 집에서 편안하게 나날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유계는 그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불쾌하게 한 일도 잊지 않았다.

 

한번은 궁중에서 연회를 거행할 때, 주아부를 유계가 초청한다. 자리에 앉은 후, 주아부는 자신의 대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의 자리에는 산해진미가 놓여 있는데, 자신의 자리에는 그저 고기만 있고 그것도 자르지 않은 것이었다. 더더욱 주아부를 우울하게 만든 것은 도우미들이 그에게는 젓가락을 준비해주지 않은 것이다.

 

쌀이 없으면 밥을 만들 수 없다. 젓가락이 없으면 먹기가 어렵다. 주아부는 몸을 돌려 주연을 책임진 사람에게 자신에게 식사도구를 준비해달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주연책임자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계속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주아부를 쳐다보던 유계가 입을 연다: 조후, 이것들로 만족되지 않으십니까.

 

주아부는 즉시 이해했다. 자신은 사전에 준비된 각본대로 놀림감이 된 것이다. 그는 일어서서 모자를 벗고, 황상 유계에게 사죄한다: "죄송합니다. 황상. 신이 실례했습니다!" 그후 유계가 몸을 일으키는 틈을 타서 빠른 걸음으로 연회청을 떠난다.

 

한경제는 주아부가 떠나는 등을 바라본다. 그가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탄식한다: 이렇게 불만을 가진 사람은 나이어린 군주의 신하가 될 수 없다. 한경제는 이미 자신의 아들의 미래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한경제는 주아부에게 와서 고기를 먹으라는 것이 아니었다. 주아부의 앞에 하나의 문제를 낸 것이다. 만일 장량 혹은 진평이었더라면, 분명히 황상이 만족할만한 답안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아부는 주아부이다. 그는 전쟁터를 종횡하고, 천군만마를 거느렸던 사람이다. 이렇게 머리를 굴려야 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한경제는 주아부가 겸허하지 않고 만족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이때부터 그는 마음 속으로 주아부를 완전히 버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아부에게 일이 터진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의 아들이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주아부의 아들은 효성이 지극했다. 부친을 위하여 사후의 일을 준비했다. 주아부는 아직 잘 살아있는데 이런 일을 준비하는 것은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닌가? 아니다. 효심이다. 만일 보통백성이라면, 시간을 얼마 들이지 않고도 관만 준비하면 그만이다. 골치아플 것도 없다. 상층인물은 다르다. 황제는 일반적으로 부임하자마자 능침을 파기시작한다. 주아부와 같은 고관대작도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유비무환이다. 그래야 사후에 완벽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주아부의 아들은 부친이 일찌기 직업군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았다. 황실제조공장에서 사적으로 오백개의 갑옷과 방패를 사서 부친의 무덤에 부장품으로 넣으려 한다. 주아부는 저승에 가서도 병사를 거느리게 되는 것이다.

 

황실제조업체는 황실을 위하여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주아부의 아들이 이를 구매한 것은 제도와 예법에 어긋난다. 효심은 칭찬할 만하지만, 행위는 지나쳤다. 봉건예법상 이런 지나친 행위는 "참월(僭越)"이라고 한다. 비판을 받거나 처벌을 받을 일이다.

 

한 가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황실제조공장의 제품을 어찌 주씨집안에서 살 수 있었을까? 주씨집안은 어떻게 살 수 있다고 확신했을까? 보기에 돈이 작용을 한 것같다. 제조공장의 직원들은 담량이 어둑 컸다. 그들은 이익을 획득한다. 아마도 이것은 당시 상류사회의 지하산업체인일 것이다. 

 

그러나 운반했던 일꾼들은 아주 가련했다. 힘들게 땀을 흘리며 일을 마쳤는데, 그들은 임금을 받지 못했을 뿐아니라, 주아부의 아들에게 학대까지 당했다. 주아부는 자녀의 교육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인도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몇 번의 교섭을 거친 후, 임금을 받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일꾼들은 아주 분노한다. 그래서 주아부의 집을 고발한다. 그들은 알았다. 주씨집안이 사서 순장하려는 것은 황실전용이라는 것을. 이런 전용품을 사용하는 것은 그 성격이 극히 엄중하다는 것을.

 

이들 일꾼들이 주아부의 아들을 고발한 죄명은 아주 공포스러운 것이다: 모반.

 

주아부의 아들은 제3대귀족이다. 분명 평소에 우월감이 너무 강했을 것이다. 인민군중에서 떨어져 인애의 마음은 옅어지고, 하층 노동계급의 힘을 무시했다. 그래서 화를 입게 된 것이다. 운반하던 일꾼들은 크게 움직였다. 주아부도 연루된다. 마지막으로는 한경제 유계까지 놀라게 만든다.

 

사법부서에서 주아부를 체포하러 갔을 때, 그는 자살하려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말렸다. 사정을 잘 얘기하면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 한선제는 주아부의 사건을 보통관리에게 넘겨서 심리하게 한다. 주아부는 협력하지 않는다. 관리는 고발장의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주며 주아부에게 사실확인을 하려 했지만, 주아부는 고개를 높이 들고,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는다.

 

이 소식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자, 한선제는 진노한다. 그는 이를 악물며 욕했다: 나는 너의 진술이 없어도 너를 죽일 수 있다.

 

이어서, 한선제가 모두에게 선포한다: 주아부 이 자는 내가 이후에 그를 기용하지 않을 것이다.이전에 한선제는 마음 속으로 주아부를 멀리 했다. 지금, 그는 결별의 말투로 주아부에 대한 태도를 나타냈다.

 

한선제의 직접적인 보살핌하에 주아부사건은 정위에게 넘겨진다. 최고사법관리가 심리하게 된다. 

 

정위가 주아부에게 묻는다: 당신이 이렇게 한 것은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인가?

주아부가 반박하여 말한다: 내가 산 것은 부장품이다. 어찌 반란을 생각한다고 하는가.

사법관은 이 해석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반박하여 말한다: 네가 살아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면, 지하에서라도 반란을 일으키려 했단 말인가? 

 

지하반란. 보기에 이는 그냥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후, 영혼도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대에도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80년대말에 항간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근대의 2개 대립당파의 혁명영수가 지하에서 반세기동안 전투를 멈춘 후, 지하에서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상에서 병사를 징용한다. 만일 지하로 가서 복역하고 싶지 않다면, 복숭아통조림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지하에 가서 복역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상점의 복숭아통조림은 바닥이 난다.

 

이 유언비어가 반드시 복숭아통조림공장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누가 했는지를 추적하여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지하반란설'은 봉건시대의 전용이 아니다. 언제든지 시장이 있다. 이런 주장을 비판하는 동시에 약간의 이해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사법부서이 태도는 명백했다. 주아부모반사건을 확실히 굳히고자 했다. 이것이 한경제 유계의 태도이다. 감옥의 인원도 주아부에 대한 태도가 갈수록 악랄해진다. 심문의 강도도 갈수록 올라간다.

 

주아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아예 단식으로 항쟁한다. 그는 필사의 마음으로, 사신이 오기를 기다렸다. 단식 5일째, 주아부는 많은 선혈을 토하고, 호흡을 정지한다. 일대명장이 이렇게 간 것이다.

 

그는 생명으로 치욕을 씻었다. 주아부가 이렇게 되고 있을 때, 한선제는 외사촌 왕신을 개후(蓋侯)에 봉했다.

 

주아부가 죽은 후, 그의 봉지인 경현(景縣)의 군중과 그의 원래 부하들은 당시의 정치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하여 묘를 만들어 주아부를 기념했다.

 

주아부와 그의 부친 주발은 모두 감옥에 갇힌 적이 있다. 부친 주발은 아무 일 없이 출옥했다. 부자 두사람의 결과가 달랐다. 모두 모반죄로 수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서로 달랐다. 그 원인을 따지면, 중요한 것은 3가지이다:

 

첫째, 부친 주발은 비교적 탄력적이었다. 간수에게 돈을 보낼 줄도 알았다. 간수는 괴롭힘을 멈추고, 그에게 방향과 해결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들 주아부는 비교적 고집스러웠다. 죽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둘째, 부친 주발은 박태후의 보호를 받았다. 한문제 유항도 확고하게 주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석방될 수 있었다; 아들 주아부는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양왕 유무는 주아부가 '칠왕지란'을 평정할 때, 그의 도성을 지원해주지 않았다고 하여 그를 극히 원망하고 있었다. 태후의 앞에서 아마도 나쁜 말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두태후는 주아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경제 유계는 주아부가 비협조적이고, 지지하지 않으며, 겸허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를 퍼린다.

 

셋째, 가장 중요한 점은 주발이 만난 사람은 인자하고 통이 큰 한문제 유항이었다. 그러나 주아부가 만난 한경제 유계는 품성이 악독하고 무정한 측면이 있었다.

 

주아부와 부친 주발은 모두 한나라의 절대충신들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이 했다. 실로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