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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50

정릉(定陵): 차마 돌아볼 수 없는 고고발굴의 비애 글: 악남(岳南) 정릉(定陵)의 발굴은 1956년부터 시작한다. 북경시부시장 오함(吳晗)은 주은래 총리에 보고를 해서, 명십삼릉을 발굴하겠다고 하였다. 오함은 유명한 명나라역사학자이다. 문혁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이 인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쓴 <<해서파관(海瑞罷.. 2009. 12. 24.
호적(胡適)의 총통경선풍파 글: 시초(翅楚) 1948년 3월 29일에서 5월 1일까지, 국민당은 남경에서 제2기 국민대표대회를 소집개최했다. 주요의제는 총통, 부총통 선거였다. 호적은 국민대회대표로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회의기간동안 호적을 총통후보로 세우려는 풍파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학.. 2008. 10. 28.
청나라때 국비외국유학생들은 어떤 시험을 치렀는가? 해외유학은 일찌기 청나라말기부터 있었다. 당시에는 아주 새로운 경향이었고, 경쟁은 지금보다도 훨씬 치열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로 인하여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호적(胡適) 선생은 해외유학파인 선배로서 <<호명복을 추억함>>이라는 글에서 일찌기 자신이 겪었던, 국비유학생시험에 관.. 2007. 11. 16.
조원임(趙元任)과 양보위(楊步偉) 1930년대를 살아본 사람들은 당시 유행했던 <<내가 어떻게 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 가르쳐달라>>는 노래를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노래의 작곡자가 조원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원임은 박학다식한 인물이다. 그는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를 거쳐 나중에 언어.. 2007. 4. 25.
노신(魯迅)을 끌어올리면서 왜 호적(胡適)을 끌어내리는가? 글: 당빙화(唐騁華) 최근들어 이택후(李澤厚) 선생이 <<노신이 바로 진정으로 깊이있고 위대하다>>는 글을 썼다. 이선생은 존경받는 학자이고, 그가 노신에 대하여 쓴 글은 모두 가슴에 와닿는다. 그러나, 아래의 말에는 도저히 찬동할 수 없다. "중국근대사상사상 단지 그(노신)만이 진정으로 .. 2007. 2. 9.
북경정변(北京政變) 북경정변이 무엇인지 우선 진욱록이 주편한 <<중화민국사사전>>을 뒤져보자. 북경정변: 1924년 10월 제2차 직봉전쟁(직예군벌과 봉천군벌의 전쟁)기간동안 원래 직예군벌계통의 토역군 제3군총사령관인 풍옥상이 국민당의 조곤, 오패부를 공동으로 타도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여, 열하의 전선에.. 2006.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