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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50

원위시(袁偉時): 진실된 말을 하고, 자기의 말을 하라. 원위시, 중산대학 철학과 은퇴교수, 중국근대사 전문가. 2010년 12월 15일, 중산대학 철학과 은퇴교수 원위시의 80세 생일이었다. 자칭 "80후"라는 이 노소년은 자신의 생일에 이런 말을 남겼다: "소간진효(笑看塵囂), 해설취설(該說就說)!"(소란스런 속세는 웃어넘기고, 해야할 말은 하도록 하자). 원위시는 같은 세대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정신과 사상의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후 철학을 공부했다. 그후에는 근대사상, 근대사를 연구했다. 한걸음 한걸음 분야를 개척하면서, 목소리를 냈고, 최종적으로 학계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원위시의 진정한 학술생애는 '문혁'이후부터 시작된다. 는전체 사상문화사분야를 개척한다. 은 전통학계의 근현대사.. 2023. 5. 4.
모벽강(冒辟疆): <홍루몽>의 진정한 작자 글: 주한경(周漢卿) 먼저, 가장 먼저 모벽강이 의 작자라고 주장한 사람은 계림재자(桂林才子) 증절명(曾節明) 선생이다. 증절명 선생의 문학적 소양은 아주 뛰어났다, 그는 의 내용을 통하여 모벽강이 진정한 작자라고 판단했다. 필자는 비록 십여년전에 의 작자가 모벽강이라고 추측했지만, 필자는 교과서에 도전할 용기가 없었다. 오늘 증절명 선생이 필자와 거의 비슷한 견해를 가진 것을 보고나서, 이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필자는 증절명 선생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사람됨이 정직하고, 인생의 추구가 있으며, 오성(悟性)이 아주 뛰어나다. 필자가 모벽강이 의 작자라고 판단한 것은 논리로 추론하여 얻어낸 것이지, 문학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 필자의 문학적 소양은 증절명 선생의 십분의 일에도 못미친다. 필자가 을 읽.. 2023. 4. 22.
중국인들의 해외 직장에서의 삼중 "곤경" 글: 이일낙(李一諾) 최근 2년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다. 많은 오래된 기억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여러 해가 흘렀지만, 중국인의 해외직장에서의 곤경은 진정한 의미에서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혹은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개선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최근 몇년간의 국제정세의 변화로 처지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해외중국인들은 일간 곤경을 주제로 얘기하면, 가장 큰 곤경이 언어, 피부색, 문화인 것처럼 얘기한다. 다만, 필자의 생각에 그것은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많은 중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반대사례는 바로 인도계이다. 그들도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비지니스계에서,.. 2023. 3. 15.
오함(吳晗): 평생 중공에 충성하였으나, 중공의 감옥에서 죽은 어용학자 글: 진뢰(秦雷) 오함(吳晗)은 청빈한 집안 출신으로 자신의 근면함과 노력으로 호적(胡適)에게 인정을 받아, 1931년 청화대학 사학과에 합격하고, 1934년 청화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는다. 재능이 출중하여 1937년에는 겨우 28살의 나이로 운남대학 교수로 채용된다. 1940년 오함은 서남연대(西南聯大)로 옮겨 교수가 되고 그때부터 공산당과 접촉하게 된다. 오함의 부인 원진(袁震)은 중공원로 동필무(董必武)의 제자이고, 두 사람은 함께 중경으로 가서 동필무를 만난 적도 있다. 1943년 7월, 오함은 곤명(昆明)에서 중국민주동맹(中國民主同盟)에 가입하고, 공산당이 조직한 "서남문화연구회"등에서 활동하면서, 완전히 호적의 "독서구국(讀書救國)"론을 포기하며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받으며, .. 2023. 2. 25.
장백령(張伯苓): 남개대학(南開大學)의 창립자, 그리고 주은래(周恩來)와의 관계 글: 임휘(林輝) 당금 중국대륙의 명문대학중에서 천진의 남개대학은 역사가 깊은 곳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이 대학에서 주은래가 공부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다. 남개대학의 창립자인 장백령은 남개대학을 창립했을 뿐아니라, 남개중학, 남개여자중학, 남개소학, 중경남개중학등 남개시리즈학교들을 창립하여, 민국시기 중국 사립학교의 모범이 되었다. 장백령은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장점이랄 것도 없다. 내가 평생 노력하여 자그마한 성취를 이룬 것은 내가 교욱에 대하여 신앙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와 일찌기 남개대학을 다닌 적이 있는 주은래간의 이야기도 중공의 당매체에서 계속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옛날 주은래는 장백령에게 제적당.. 2022. 7. 22.
영씨가족(英氏家族): 백년 문화명문가의 맥이 끊기는가? 글: zhongkang 1. 2022.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