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노신)

노신(魯迅)을 끌어올리면서 왜 호적(胡適)을 끌어내리는가?

중은우시 2007. 2. 9. 13:37

글: 당빙화(唐騁華)

 

최근들어 이택후(李澤厚) 선생이 <<노신이 바로 진정으로 깊이있고 위대하다>>는 글을 썼다. 이선생은 존경받는 학자이고, 그가 노신에 대하여 쓴 글은 모두 가슴에 와닿는다. 그러나, 아래의 말에는 도저히 찬동할 수 없다.

 

"중국근대사상사상 단지 그(노신)만이 진정으로 깊이있었다"

"호적은 말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은 바로 가장 고립된 사람이다'라고. 그러나, 자칭 '치료되지않는 낙관주의자'인 깊이가 얕은 호적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노신만이 진정 온 몸으로 이를 보았고, 탐구했고, 이런 강력한 고독을 드러냈다"

 

이택후 선생이 호적데 대한 태도는 보편적인 것이다. 사빙(謝氷) 선생이 쓴 <<호적인가 아니면 노신인가>>라는 글에서도 호적과 노신에 관련된 논쟁적인 글들을 수집한 바 있다. 자세히 읽어본 후 발견한 것은 일부 노신연구자들은 노신을 찬양하면서 호적을 폄하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호적에 대하여는 악평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았다. 노신을 끌어올리는데 반드시 호적을 끌어내려야 하는 것인가?  설마, 노신과 호적은 빙탄불상용이란 말인가? 적어로 그 학자들의 설득력이 부족한 논증에서 나는 도저히 그렇다는 대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모두 노신을 비난하는 언론이 수십년간 떠들어왔다고 애기하는데, 그게 뭐 새로울 것도 없다. 사실은 호적을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에서는 호적을 비난하는 상투적인 관점에 대하여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보도록 한다.

 

첫번째 관점: 전리군(錢理群) 선생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했다: "노신과 호적의 가장 근본적인 구별은 바로 노신은 체제외에 있었꼬,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호적은 체제내에 있었고, 거들어주는 입장이었다. 호적이 "체제내"라는 것은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다(심지어 임현치 선생은 호적이 입각했다고 적었다). 1929년에 창끝을 국민당정부에 직접 겨냥해서 인권논전을 벌였고 평생동안 항전시기에 주미대사를 맡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관료사회와 절연했던 사람이며, 주미대사기간중에도 그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3만달러의 판공비를 거절했었는데, 이런 조국을 위하여 분연히 있어섰던 사람을 어찌 "체제내"라는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단 말인가? 전리군 선생도 호적이 관료사회의 인물이 아니었던 것은 의식했던가보다 그래서 특히 체제에는 "대학체제를 포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학도 체제라고 칠 수는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의 대학은 관료화와는 거리가 멀었고, 상당히 독립되어 있으며, 호적이 이끌던 북경대학의 학풍을 보더라도 이것은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체제가 그 체제가 아닌데도 전혀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몰아서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체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노신이 철저하게 '체제외비판'의 입장을 고수한 것은 의미가 있다. 호적이 체제를 완비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도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일컬어 '거들어주었다'는 조롱섞인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너무나 경박한 무리라고 볼 수밖에는 없다. 필자는 노신이 국민성개조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제도건설분야에서 남긴 유산은 많지 않다고 본다. 헌정, 법치가 사회의 컨센서스가 된 지금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명확히 인식하고 글을 썼던 호적이 훨씬 풍부하고 두터운 이론적인 자원을 남겼다.

 

두번째 관점: 이택후 선생이 제기한 '깊이가 얕다'는 것이다. 호적이 깊이가 얕으가? 최근들어 그의 많은 작품을 읽어본, 필자의 인상은 호적은 절대 깊이가 얕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말 중 한마디만 인용하더라도 그의 남다른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어떤 사람은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여 국가의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너희 개인의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국가를 위하여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고, 국가의 자유를 얻어내는 것이다'라고. 자유평등의 국가는 노예근성의 무리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급진적인 풍조하에서 소리높여 외치는 것은 쉽다. 그러나 호적처럼 모든 사람이 미쳐있는 상황하에서 맑은 사고와 논조를 유지하였다는 것은 오히려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청년들은 이미 그를 '낙오자'로 취급했었었다.

 

노신이 깊이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만이 '진정으로 깊이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과장되었다. 이것은 노신을 지식인의 유일한 길, 유일한 도덕표준으로 하는 것이며, 그 표준에 맞지 않으면 모두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바로 이런 절대화의 경향으로 오도되어, 일부 학자는 지나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이를 비판하는 사람은 사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고, 오로지 자신만이 고결한 사람이라는 것처럼(왕휘, 광신년등 선생의 글은 특히 강하게 이런 입장을 보인다). 이것은 바로 학술비평과 야만적인 간섭의 본질을 혼동한 것이다.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노신이 위대한 것은 맞지만, 위대한 사람은 노신만이 아니다. 엄복, 양계초, 호적, 전목, 진인각등도 진정으로 깊이있고, 독특한 사상가들인 것이다. 사상가들이 천차만별인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한 사람을 내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반드시 호적의 작품을 읽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공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 이택후, 전리군등의 선생은 노신을 잘 읽어보았으니 노신선생의 주장은 잘 알 것이다. 한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반드시 그의 전집을 읽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