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50 100년전 중국 지식인들의 기개 글: 굴강적아아(倔强的丫丫) 채원배(蔡元培): 자유가 없는 대학교장은 하지 않겠다. 채원배는 일생동안 여러번 사직했다. 그중 북경대학 교장으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전후로 여러번 사직했다. 그는 1917년 1월 4일 북경대학 교장직에 올랐는데, 7월 3일 여원홍(黎元洪) 총통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여, 장훈(張勛)의 복벽(復辟)에 항의했다. 1923년 1월 17일 채원배는 다시 분노하여 사직서를 제출한다. 다음 날 그는 에 북경대학 교장직무를 사임한다는 성명을 싣는다: "채원배는 인격을 지키려는 생각에서, 사법독립과 인권에 간섭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교육당국과는 더 이상 연락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미 총통에게 국립북경대학 교장의 직을 사임하겠다고 하였다. 오늘부터 더 이상 학교 업무를 보지 않겠다. 이에.. 2021. 12. 2. 오함(吳晗): 한 역사학자의 비극 글: 왕우군(王友群) 오함은 에 이렇게 썼다: "그물이 다 펼쳐졌다. 포위망은 점점 줄어들었다. 창응(蒼鷹)은 하늘을 맴돌고, 사냥개(獵犬)는 땅위에서 추격한다. 호각소리가 들리고, 고함소리가 들리고, 매를 부르고 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그물에 걸려든 문인(文人)들은 하나하나 목이 잘리고, 가슴이 깨져 핏물 속에서 신음한다." 이 내용은 1949년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문인들을 대하는 생생한 모습이기도 하다. 오함은 스승을 버리고 중공에 투신한다. 오함은 절강 금화 의오(義烏) 사람이다. 1928년 가을, 상해중국공학(上海中國公學)에 입학하여 호적(胡適)의 제자가 된다. 얼마 후, 호적은 상해를 떠나 북경대학 교장이 된다. 오함도 그를 따라 북상한다. 그러나 북경대학에는 불합격하고, 청화대.. 2020. 10. 17. 그녀는 문혁때 모욕을 참지 못하고 강물이 투신한다. 그의 아들이 종남산(鍾南山)이다. 글: 이대야(二大爺) 1. 1957년 9월 21일, 당산철도학원 '마르크스레닌부'의 역사 강사인 '우파'로 낙인찍힌 호사두(胡思杜)는 '자살'한다. 그는 당형인 호사맹(胡思孟)에게 유서를 남긴다: "현재 나는 가족이 없습니다. 오직 형뿐입니다. 제가 남긴 600위안이 돈은..... 형님의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해서 사회주의를 위해 공을 세우기 바랍니다." 1948년 12월, 북평(북경)은 이미 포위되었다. 당시 북경대학 도서관에서 일하던 호사두는 부모와 함께 타이완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절하고 북평에 남기를 고집했다. 그는 "내가 무슨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 후의 운동에서, 가정배경이 부담을 가진 호사두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적극.. 2020. 10. 16. 중국의 부득이한 전략: "고탱대변(苦撑待變)" 글: 정효농(程曉農) 최근 중국은 돌연 미군과 해상 혹은 공중에서 대치할 때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不開第一槍)'고 선언했다. 이 소식은 1주일전에 공개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중국이 미중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도광양회(韜光養晦)'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만일 정말 '도광양회'로 돌아간다면, 얼마의 기간을 생각하는가? 3년? 10년? 실제로 중국은 겨우 80일동안만 고탱대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대통령선거에서 바이든이 당선되기를 기다리며 힘들게 버티는 것이다. 다만, 80일간 버틴 후, 미국선거에서 중국이 원하는 것처럼 되지 않는다면, 중국고위층은 기실 아무런 대책이 없다. 만일 트럼프가 연임한다면, 중공은 다시 4년을 힘들게 버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런 '고탱'은 구세주.. 2020. 8. 24. 호적(胡適)의 천년일탄(千年一嘆) 글: 사상(史翔)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저 결과만 있을 뿐이다. 지금 70년전 장개석의 '창구학인계획(搶救學人計劃)'을 되돌아보면, 확실히 중공의 호구에서 '학인을 구해낸 것'이다. 대륙이 중공에 점령되기 전에 대륙을 떠난 지식인 호적, 부사년(傅斯年), 전목(錢穆)은 여전히 자유사회에서 자유사상을 전승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대륙에 남았던 걸출한 지식인들은 '반우' 문혁'으로 거의 모두 박해를 당했고, 환상을 깨지고, 악몽만 남게 되었다. 1948년 회해전역(淮海戰役)이 시작되었을 때, 국민당군대는 전투에서 불리했다. 장개석은 좋지 못하다고 예감하고, '창구학인계획'을 제정하기 시작한다. 명단에는 모두 국내에서 탁월한 성취를 거둔 걸출한 지식인들이었다. 그 때는 그들 주에 대다수는 의식하지 못했었다.. 2020. 8. 16. <홍루몽>작자: 효렴공(孝廉公)과 조설근(曹雪芹) 글: 토묵열(土默熱) 호문빈(胡文彬) 선생의 <부상담홍류유고(扶桑談紅榴遺稿) - 황준헌(黃遵憲)과 일본우인의 홍루몽필담>이라는 글에서, 청나라 광서4년 무인년(1878년) 중국근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대시인이며 당시 일본대사관 참찬으로 있던 황준헌이 대사관직원인 매사(梅史), 칠.. 2020. 1. 16. 이전 1 2 3 4 5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