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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50

호적(胡適)의 천년일탄(千年一嘆) 글: 사상(史翔)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저 결과만 있을 뿐이다. 지금 70년전 장개석의 '창구학인계획(搶救學人計劃)'을 되돌아보면, 확실히 중공의 호구에서 '학인을 구해낸 것'이다. 대륙이 중공에 점령되기 전에 대륙을 떠난 지식인 호적, 부사년(傅斯年), 전목(錢穆)은 여전히 자유사회에서 자유사상을 전승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대륙에 남았던 걸출한 지식인들은 '반우' 문혁'으로 거의 모두 박해를 당했고, 환상을 깨지고, 악몽만 남게 되었다. 1948년 회해전역(淮海戰役)이 시작되었을 때, 국민당군대는 전투에서 불리했다. 장개석은 좋지 못하다고 예감하고, '창구학인계획'을 제정하기 시작한다. 명단에는 모두 국내에서 탁월한 성취를 거둔 걸출한 지식인들이었다. 그 때는 그들 주에 대다수는 의식하지 못했었다.. 2020. 8. 16.
<홍루몽>작자: 효렴공(孝廉公)과 조설근(曹雪芹) 글: 토묵열(土默熱) 호문빈(胡文彬) 선생의 &lt;부상담홍류유고(扶桑談紅榴遺稿) - 황준헌(黃遵憲)과 일본우인의 홍루몽필담&gt;이라는 글에서, 청나라 광서4년 무인년(1878년) 중국근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대시인이며 당시 일본대사관 참찬으로 있던 황준헌이 대사관직원인 매사(梅史), 칠.. 2020. 1. 16.
호적(胡適)은 <홍루몽>의 작자를 어떻게 고증했는가? 글: 지진재주(至眞齋主) 모든 책에는 작자가 있다. 그러나 어떤 작자는 실명을 드러내기 실어서 가명을 쓴다. 그리하여 어떤 책은 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lt;금병매&gt;의 작자는 '난릉소소생(蘭陵笑笑生)'이다. 이 이름은 보기에도 가명인 것을 알 수 있다. 작자가 .. 2019. 10. 12.
홍루몽작가의 수수께끼: '조설근은 조인의 손자'라는 설의 문제점 글: 송초(松樵) &lt;홍루몽&gt;의 원작자가 누구일까? 현재 갈수록 많은 연구자들은 호적(胡適)이 고증한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이다"라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호적의 &lt;홍루몽고증&gt;에서는 홍루몽의 작자가 조인(曹寅)의 손자인 조설근(曹雪芹)이라고 본다. 현재의 홍학가들은 보.. 2018. 11. 22.
오치휘(吳稚暉): 민국제일매장(民國第一罵將) 글: 채휘(蔡輝) "출판계에서, 요 칠년간 2,3부 이상 볼만한 책이 없다....나중에 내가 찾고 찾다가 겨우 오치휘 선생의 &lt;상하고금담(上下古今談)&gt;을 얻어서, 무호로(蕪湖路)로 가져가서 읽었다. 나는 이런 괴현상을 보고는 정말 방성대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중국인이 배가 고프.. 2018. 10. 24.
명십삼릉의 정릉(定陵): 가장 참혹한 고고학적 비극 글: 이상국(理想國) 지나간 세월에서 고고학은 일찌기 영웅의 사업이었다. 그리고 일찌기 적막한 사업이었다.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은 휘황한 인생경력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그들에게 있어서, 상상할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이런 감정은 많은 기적을 만.. 2018. 9. 27.
여사면(呂思勉)의 "폄악숭진(貶岳崇秦, 악비를 내리고 진회를 올림)" 풍파시말 글: 곽금창(郭金昌) 지금 만일 중학교 교과서에 악비와 진회를 이렇게 묘사하면 어떤 논쟁이 벌어질 것인가? "악비는 그저 언성(郾城)에서 한번 승전했을 뿐, 언성 이외의 전적은 모두 불명확하다. 가장 웃기는 것은 완안종피(完顔宗弼)이 도강할 때, 악비는 시종 강소에 숨어 있었다. 송고.. 2018. 8. 4.
민국사공자(民國四公子)중 하나인 장효약(張孝若)피살사건 글: 채휘(蔡輝) "우리나라 공상업계를 이끌고, 실업계의 거목으로 유명하며 고찰구미실업전사를 역임한 청나라때의 장원인 남통 장계직(張季直, 즉 張謇) 선생의 장남 장효약씨가 어제 여명 여섯시 십분, 전날 남통에서 상해로 온 옛하인이자 안휘사람인 오의고(吳義高)의 총에 저격을 당.. 2018. 7. 11.
장신부(張申府): 중국공산당의 3대 창시자중 한 명 글: 유계흥(劉繼興) 장신부는 중국공산당의 주요 창시자중 한 명이다. 그의 지위는 진독수(陳獨秀)와 이대쇠(李大釗)의 바로 다음이었다. 지금 갈수록 많은 사람들은 그를 당의 3대 창시자중 한 명이라고 부른다. 그가 북대도서관에서 일할 때는 일찌기 당시 북대도서관에서 조리원으로 .. 2018. 7. 2.
"밀고자001호"의 최후 글: 유효(劉曉) 중국공산당이 1949년 정권을 차지한 후, 중국전통문화교육과 서방민주사상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에 대하여 가장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 지식인에 대한 개조운동을 시작한다. 전종서(錢鍾書)의 처인 양강(楊絳)이 말한 바에 따르면, "세조(洗澡)"이다. 이 .. 2018.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