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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문화

중국인들의 해외 직장에서의 삼중 "곤경"

by 중은우시 2023. 3. 15.

글: 이일낙(李一諾)

 

최근 2년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다. 많은 오래된 기억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여러 해가 흘렀지만, 중국인의 해외직장에서의 곤경은 진정한 의미에서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혹은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개선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최근 몇년간의 국제정세의 변화로 처지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해외중국인들은 일간 곤경을 주제로 얘기하면, 가장 큰 곤경이 언어, 피부색, 문화인 것처럼 얘기한다. 다만, 필자의 생각에 그것은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많은 중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반대사례는 바로 인도계이다. 그들도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비지니스계에서, 그리고 학계와 정계에서 그러하다. 대기업의 경영진에서부터 명문대학의 학장, 그리고 주지사, 전 유엔대표에도 모두 인도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는 몇년전에 글을 한편 쓴 적이 있다. 필자가 옛날 맥킨지에서 파트너로 일한 이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는 2012년말에 파트너가 되고, 2013년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미국이 맥킨지에게 가장 큰 시장이었고, 600여명의 파트너가 있었다. 나는 그중 중국대륙의 대학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2명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나는 반으로 쳐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미국에서 파트너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이들중에서 인도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후 미국으로 와서 맥킨지의 파트너가 된 사람은 100명이 넘었다. 그뿐 아니라, 매년 새로 선발되는 파트너중에서 평균 15%는 인도계이다. 중국계는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다.

 

최근 Twitter의 CEO가 된 사람도 바로 이런 전형적인 인도계이다. 1984년에 태어나서, IT(인도이공대학)본과를 졸업하고, 스탠포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하이테크업종에 뛰어들어, 금년에 Twitter의 CEO가 되었다. 유사한 경력의 중국유학생은 매년 수두룩하게 많지만, 중국계가 그런 직위에 오른 다는 것은 지금 보기에 요원한 일인 것같다.

 

그래서, 진정 중국인들을 괴롭히는 곤경은 무엇일까? 이건 나에게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만일 곤경의 근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면, 출로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근원을 알더라도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 발을 뗄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막 맥킨지에 가입했을 때 직장초기의 곤경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그때 기실 내가 동시에 세 개의 '홍구(鴻溝)'를 건너뛰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는 과학연구에서 비지니스계로 넘어온 것이다. 실험실과 맥킨지는 달랐다. 둘째는 언어와 문화이다. 비록 미국에 살고 있고, 영어를 사용하지만, 직장에서 영어를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고, 어떻게 소통해야하는지는 몰랐다. 동시에 미국의 유행문화 예를 들어, 미식축구, 야구같은 것도 모르고, 흥미도 없었다. 셋째는 더욱 은폐된 것이었다. 바로 '시대착위(時代錯位)'였다. 나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나와 미국의 '또래'들은 기실 같은 시대를 산 것이 아니었다. 1970년대에 중국에서 출생한 나는 어렸을 때 양표(糧票)를 가지고 가서 장유(醬油)를 받아왔다. 1970년대에 미국중산층에서 태어난 아니는 3살때 부모를 따라 스키를 탔다. 생활체험에서 천양지차가 있었던 것이다.

 

직장초기 많이 고통스러웠던 나에게 이 3중의 곤경에 대한 인식은 곤경을 직시하는 출발점이었다. 그리하여 서서히 최초의 직장적응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 어떻게 견뎌냈는가?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나와 미국동료간에 어디가 다른지, 내가 어디를 보충해야 하는지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다른 점과 보완이 필요한 점이라는 기초 위에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장점을 찾으려 한 것이다. 이건 기나긴 과정이었다. 그러나 '첩경(지름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후 경력이 쌓이면서 나는 서서히 당시에 스스로 느끼기에 '심도있는' 인식이, 모두 아주 '표면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만일 표면의 '피부색, 언어, 문화, 시대'를 벗겨버리고 다시 그 깊은 속을 보게 되면, 미국직장의 중국인들이 직면한 진정한 곤경을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몇 단계의 더욱 은폐된 층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1층": 서로 다른 역사서술로 인하여 세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대부분 출국하는 중국인들은 이공계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중국에서 받은 교육은 고도로 '학과화' 되어 있어서, '문사철(文史哲, 문학, 사학, 철학)'은 이과와 대응되는 학과일 뿐이다. 이공계를 공부하는 경우에는 문사철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문사철은 '상식교육'의 일부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대부분 중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수리화(數理化, 수학, 이학, 화학)'를 배우면 천하를 돌아다니는게 겁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국역사나 세계역사에 대한 인식이 표면적이고 편면적이다. 그리하여 미국직장에서 한동안 지낸 후에 기술과 업무외에 동료들과 더 이상 깊이있는 대화를 할 바탕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출국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유의해서 살펴보면, 중국에서 받은 역사에 관한 교육(세계역사와 중국역사를 포함해서)이 출국이후 보는 것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를 들어보자면, 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팔국연합군이 중국을 침입한 것은 근대사상 아주 굴욕적인 사건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과 선교사들이 일찌기 중국에서 선교하면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만든 일과의 관계를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화단이 대사관을 포위공격한 일이나 중국신도들을 해친 일의 관계도 얘기하지 않고, 청나라조정이 보호를 거절한 일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국의 대사관은 자신의 군대를 불러서 자신의 대사관을 보호한 것이라는 것도 얘기하지 않는다.

 

미국의 발전사도 전형적인 역사공부의 사례이다. 미국의 건국역사를 보면, 비록 주류흐름은 명확하지만, 계속하여 여러 측의 이해분쟁, 충돌, 약탈 및 타협의 역사가 있다. 19세기부터 얘기하더라도, 부정부패가 횡행하던 "Gilded Age(금박시대, 도금시대)"에서 나중의 "진보주의시대"까지, 중간에는 너무나 많은 스캔들과 폭력이 있었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흑인, 인디안 그리고 나중에는 중국인들까지 여러 인종집단들의 비참한 처지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그 이름도 유명한 스탠포드대학의 창립자인 스탠포드 선생은 바로 그 'Gilded Age'떄 각종 사업에서 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폭리를 취했다. 한편으로 추악하고 피비린내로 충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체, 탐사기자의 개입으로, 법제가 점차 완비되었고, 현재의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이런 역사를 보면, 미국학자들이 자신의 역사와 자신의 '조상'에 대하여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비판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미국인들을 보면서 금발벽안(金髮碧眼)을 '순종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기실 만일 Thomas Sowell이 1981년에 출판한 <Ethnic America>을 보개 되면 각종 인종의 유입, 충돌과 융합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일랜드의 기근에서 유럽 및 기타 국가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흘러들어온 원인을, 서로 달느 국가의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온 이후의 충돌을, 서로 다른 인종들간의 '적대시하는 관계'를, 최초의 일본인과 중국인이 미국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의 역사를, 그리고 나중의 배화법안(排華法案)까지 그 책에서는 모두 얘기하고 있다. Thomas Sowell 자신은 아프리카계미국인이고, 지금도 건재하게 살아있다. 92세이다. 많은 작품은 영향력이 크다. 이 책을 보면 기실 모든 '미국인'들은 모두 자신의 인종배경에서 '외래'에서 '융합'의 역사와 특수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역사서술이 왜 중요한가? 왜냐하면 역사에 대한 공통의 이해는 사람들간에 효과적으로 소통하게 만드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표준답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발전은 기실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그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배워야하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완전한 것인가? 수정을 거친 것인가? 일부분만 편면적으로 취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또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현상이 형성된 것은 모종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러나 또한 타협과정에서 원칙이 나타나고, 그것이 법률, 가치관이 된다. 이런 물음, 이런 질문, 이런 원칙문제에 대한 사고가 미국의 문화 속에는 곳곳에 스며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하2층": 사회제도가 달라서 인식의 차이를 가져 온다.

 

사회제도는 그 아래의 많은 중요한 문제를 포함한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문제, Rule of Law, 민주원칙등등.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없으니 여기에서는 오직 하나의 각도에서만 얘기하기로 한다. '지역참여'

 

미국은 고도자치의 사회이다. 무수한 풀뿌리의 자치조직과 지역사회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기초이다. Civil Society, Community Based Organization이 곳곳에 있다. 만일 사회가 유기체라면 지역은 바로 그런 하나하나의 세포이다. 

 

다만 이 개념과 사회운용방식은 "위에서 아래로" 사회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이다.

 

미국은 한 주택단지의 HOA(주택소유주협회)부터, 축구클럽, 보이스카우트, 그리고 학교의 학부모위원회, 도시의 각종 위원회는 모두 자원봉사자에 의존하여 유지되는 조직이다. 축구코치는 모두 학부모들이 한다. 보이스카우트를 이끄는 대장도 학부모이고, 도시의 각종 위원회, 이사회도 모두 자원자들이지 높은 직위의 '고위관료'가 아니다. 이들 조직은 모두 여러 해동안 형성한 원칙과 틀로 사람들의 행동을 구속한다. 또한 법률이 마지노선을 형성한다. 이 범위내에서 조직은 완전히 자치이고, 어떤 분야는 '위에서 아래로' 기준과 검사를 하지만, 법률을 이들 관리감독기관의 권한범위에 대하여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한편으로, 중국인들은 미국에 역사가 없다고 여기는데, 기실 미국의 보이스카우트같은 조직은 이미 백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계속하여 지역의 자발적 조직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축적은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른 각양각색의 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 여러 교회는 지역센터로서의 기능을 한다. 신종코로나기간동안 공립학교와 교회는 지역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조직형식이었다. 신분을 조사하지 않고 누구든지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 당연히 각양각색의 공익조직, 시민사회조직도 있다. 그러므로, 지역참여와 자원봉사는 미국생활의 핵심구성부분이 된다.

 

미국은 자선활동도 많이 발전되어 있다. 기실 그것은 단순히 착한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초 반독점법통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반독점법의 통과는 '탐사기자'(백년전에는 탐사기자라는 업종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들이 석유재벌 록펠러의 독점기업내에 각종 혼란상과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태를 폭로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미국의 역사는 매체, 기업, 시민조직, 법제가 상호관련되고 제약해온 발전사이다. 이 역사는 자중균(資中筠) 선생의 <20세기의 미국>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런 시민사회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직장문화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전제이다. 우리는 직장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 직장문화의 뒤에 사회자치의 기초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 세대의 중국인들은 어렸을 때, '지역사회감'이 아주 강했다. 어른들은 모두 '단위(單位)'가 있었고, 많은 아이들은 같은 관사단지에 거주한다. 모두 수업이 끝나면 열쇠를 가지고 집으로 간다. 집안의 아빠엄마가 바쁜 경우에는 이웃집으로 간다. 실제로 당시는 국유기업체제로 조직한 지역사회의 모델이었다. 다만 지난 몇년간 신속히 도시화하면서, 수십년동안 수억명이 도시화되었고, 이런 유기적인 지역사회는 파괴되었다. 그리고 이런 유기적인 사회가 파괴된 후에 새롭게 재건되지 않았다.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많은 단지, 많은 동, 모두가 이웃이지만, 모두가 집을 사서 온 것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들간에 유기적인 연결은 없다. 그리하여 '부근'을 잃어버리게 된다. 비록 모두 물리적으로는 '부근'이지만 심층적인 연결이 없는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역사회는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환경하에서 자란 사람이 미국에 오면, 기실 다시 어떻게 '지역사회'내에서 생활해야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서로 교류하는 규칙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여 이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지하3층": 신앙과 문화

 

이 문제는 심도있는 것이어서, 여기서 깊이있게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포인트만 얘기하기로 한다:

 

1. 신앙은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하는 것이다. 다만 많은 중국인에게 있어서, 우리의 성장배경과 교육배경으로 신앙은 성년이 된 후에 다시 구축하게 된다. 이 구축은 반드시 무엇을 '믿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주의'를 넘어선 인생추구와 가치관, 세계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유물주의와 실용주의를 숭상한다. 이것도 당연히 기능이 있다. 다만 만일 이것뿐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무신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신론'이라는 미명하에 숨겨진 '무인론(無人論)'이다. 즉 우리는 진정한 사람을 보지 못하고, 그저 사람의 사회속성만 본다. 무슨 일을 하고, 돈을 얼마나 벌고,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사람의 자아, 꿈과 추구를 보지 못한다. 이 층을 보지 못하면, 직장에서 기껏해야 도구일 뿐이다. 장족의 발전을 할 수가 없다.

 

2. 위의 '지하1층'으로 되돌아가서 '역사서술'을 얘기해보자. 신앙과 종교는 기실 서방의 역사와 문화발전의 핵심라인이다. 로마제국중기이후의 서방역사는 일정한 정도로 종교의 발전과 충돌의 역사이다. 비교적 가까운 사례를 들어보자면, 마틴 루터가 16세기부터 시작한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형성되면서 천주교와 충돌한다. 이것이 현대 서방세계판도를 형성한 바탕의 유인이다. 이런 이해가 없으면, 현대서방세계의 국면이 형성된 역사적인 연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차를 몰고 길거리로 나가더라도, 각종 Church의 겉으로 보기에 여러 기괴한 명칭과 그것이 대표하는 신앙, 집단과 서브컬쳐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3. 문화에 관하여, 중국인들중의 주류견해는 '서방문화'와 '동방문화'는 구별되고 충돌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것은 거짓명제이다. 겉으로 보면, 당연히 다른 점이 많다. 다만 진정한 중국문화의 정수는 기실 세계적인 것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단지 많은 중국인들이 중국의 진정한 전통문화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필자를 포함해서,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가지 주변의 사례를 들어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은 <성경>이고, 두번째로 많이 번역된 책은 <도덕경>이다. 다만 중국인 자신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말 <도덕경>을 공부하고 이해했을까? 유투브에서 "도덕경"을 검색해보면 기본적으로 '비중국인'이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도 아주 좋다. 그것이 하나의 증거이다. 유가의 개인수양층면에서의 사상, 노장의 세계관, 위진의 문인풍골, 이백의 낭문주의와 두보의 우국지심은 기실 모두 시간은 오래 흘렀지만 지금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보편성과 현대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문화곤경'은 서방과 동방의 충돌이 아니라, 현대중국인들이 서방도 이해못하면서 동방도 이해못하는 것때문에 일어나는 '충돌'이다.

 

이 '지하'의 3중곤경은 기실 대부분 해외의 중국인들이 직면하는 곤경의 본질이다.

 

이들 곤경은 비교적 은폐되어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나 자신을 포함해서)이 겉으로 보기에는 구미의 학교에서 박사,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비교적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 마치 '융입(融入)'되는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생활과 사업상황을 보면, 항상 자신은 '외인(外人)'이라고 느껴진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언어, 분야, 시대의 차이가 있는 것같지만, 실제로 더욱 깊은 곳에는 역사서술, 사회제도, 신앙문화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곤경이 있는 것이다.  

 

이런 밑바닥의 곤경은 기실 100년전 미국에 유학했던 지식인들보다 크다. 혹은 더욱 정확히 말하면 훨씬 크다. 모두 임휘인(林徽因), 양사성(梁思成)과 Wilma Fairbank간의 영문서신, 혹은 호적(胡適)의 영문문집과 강연을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지식인이고, 우리는 그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다만 만일 '대지식인'이라는 것만 본다면 우리 시대에도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가뭄에 콩나듯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가 버려야할 생각은 바로 우리가 이전 세대사람들보다 '강'하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때보다 '진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밑바탕의 문제에 있어서 기실 이전 사람들이 도달했던 수준에 우리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문제에 대한 사고에서 기실 우리는 진정한 의미로 진보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아마도 당신은 의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직장내에서 발전의 병목을 겪는 것은 간단한 '직장방법'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들 '심층곤경'을 이해하고 돌파해야만 비로소 직장내에서 장족의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