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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설암14

만청상인(晩淸商人)의 세 가지 경지 글: 오구(吳鉤) 만일 지명도가 높은 만청상인(만청은 청나라말기를 가리킴)을 꼽는다면 필자는 호설암(胡雪巖), 성선회(盛宣懷) 및 장건(張謇)의 세 사람을 꼽을 것이다. 호설암(1823-1885)은 사료기록은 풍부하지 않다. 그러나 소설과 TV드라마 <홍정상인>의 영향으로, 호설암의 이름.. 2012. 12. 22.
호설암(胡雪巖): 그저 황음한 졸부였다 글: 왕위(王偉) 호설암(1823-1885)의 이름은 광용(光鏞)이고 자가 설암이다. 안휘 적계(績溪)사람이며 호경여당(胡慶餘堂)의 창시자이다. 그는 빈한한 출신으로 장사에 재능이 있었고, 처세술에 능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일대의 거상으로 불리웠다. 서태후는 그에게 황마괘(黃馬褂)를 내리고 “포정사.. 2010. 12. 24.
백규(白圭): 중국상인의 비조 글: 유계흥(劉繼興) 상(商)나라때부터 청나라말기까지, 중국에는 수많은 상인들이 나타났다. 그중 학계에서 상성(商聖)으로 공인된 사람은 오직 3명 뿐이다: 도주공(陶朱公), 백규(白圭) 그리고 호광용(胡光鏞) 도주공은 바로 범려이다. 호광용은 호설암이다. 이 두 사람의 사적은 모두 낯.. 2010. 3. 20.
호설암(胡雪巖)의 자손들 글: 장영구(張永久) 호설암은 생전에 처첩을 아주 많이 두었고, 구체적으로 몇명인지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13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3남5녀의 자식을 두었다. 장남 호초삼(胡楚三)은 16세때 늠생(廩生)이 되었는데, 19세때 병으로 요절하고, 자손을 두지 못했다. 차남 호함.. 2009. 11. 27.
누가 호설암을 도태시켰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일홍취사(一紅就死)" 붉어지면 바로 죽는다.(붉어진다는 것은 인기를 얻는다는 뜻도 있음) 이것은 털게(螃蟹)법칙이다. 중국도대 상재(商才)의 도태법칙이기도 하다. 흑도와 백도를 아우러던 호설암(胡雪巖)은 중국상인의 우상이다. 후인들은 그가 권력과 돈을 한 손에 거머쥐고, .. 2009. 9. 11.
청나라 최고부자 호설암(胡雪巖)의 파산 글: 오효파(吳曉波) 상업역사상 첫번째 중외대전(中外大戰)이 1884년에 발생한다. 중국측 주인공은 당시 최고부자인 호설암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파산이었다. 호설암은 생전에 이미 전설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좌종당(左宗棠)의 군수물자운송으로 돈을 모았다. 20년이라는 .. 2008.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