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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호설암)

호설암(胡雪巖)의 자손들

by 중은우시 2009. 11. 27.

글: 장영구(張永久)

 

호설암은 생전에 처첩을 아주 많이 두었고, 구체적으로 몇명인지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13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3남5녀의 자식을 두었다.

 

장남 호초삼(胡楚三)은 16세때 늠생(生)이 되었는데, 19세때 병으로 요절하고, 자손을 두지 못했다.

 

차남 호함삼(胡緘三)은 호내균(胡乃鈞)이라고도 하는데, 성격이 호방하고, 사람들을 널리 사귀었다. 한번은 말을 타다가 부주의하여 떨어졌고, 다리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동씨(董氏)와 결혼하여, 2남1녀를 낳는다.

 

삼남 호품삼(胡品三)은 호대균(胡大鈞)이라도 하는데, 품성이 고아하고 그림, 서예를 좋아했다. 주씨(朱氏)를 처로 삼았는데, 선비집안출신이고 시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4남을 둔다.

 

호함삼의 장남은 호국경(胡菊卿)인데, 호사기(胡士琪)라고도 부른다. 대학졸업후 스위스 제네바대학, 영국 런던대학, 미국 코넬대학에 유학했고, 세 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는다. 2차대전기간동안, 미국에서 국제협력학원의 교무처장을 맡고, 국민정부중앙설계위원회 위원, 국제무역위원회 부주임을 맡는다. 3남1녀를 두는데, 장남 호영육(胡英育)은 1927년에 영국에서 태어난다. 은퇴하기 전까지는 산서 태원에서 한 국영기업의 경영진으로 있었다; 차남 호미육(胡美育)은 미국 국적의 화교이다. 미국에 회사를 차렸다; 삼남 호삼(胡森)은 은퇴전에 국영기업의 경영진이었다. 딸 호만평(胡曼平)은 국내 모대학의 교수로 있었고, 은퇴후에는 미국으로 가서 살고 있다.

 

호함삼의 차남 호무경(胡茂卿)은 결혼도 하기 전에 요절한다.

 

호품삼의 장남 호악경(胡卿)은 일본에 유학한 적이 있고, 동경에서 손중산의 동맹회에 가입한다. 처는 대영예(戴泳霓)인데, 강남의 유명한 화가 대희(戴熙)의 손녀이다. 총명하고 능력이 뛰어나서 집안 일을 잘 처리했다. 홍루몽에 나오는 왕희봉과 같은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상이 보수적이었다. 남편이 길거리에서 강연을 하고, 변발머리를 잘라버리자, 그녀는 문을 걸어잠그고, 호악경이 다시는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가규(家規)를 정해서, 자녀들에게 서양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한다. 호악경의 장남 호아광(胡亞光)은 호문구(胡文球)라고도 하고, 호는 몽접루주(夢蝶樓主) 혹은 안정거사(安定居士)였다. 1901년에 지원(芝園)에서 태어나고, 유년기에 장율광에게 중국화를 배운다. 젊었을 때는 절강미술회장의 직을 역임하기도 한다. 호아광이 이름을 얻고 난 후에 호씨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가 쓴 <<안정유문>>은 호설암의 후손이 쓴 호설암에 관한 유일한 역사자료이다. 호설암을 깊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호품삼의 차남 호준경(胡俊卿)은 1녀를 두었다.

 

호품삼의 삼남 호죽경(胡竹卿)은 4남을 둔다.

 

호품삼의 사남 호위경(胡渭卿)은 2남을 두는데, 장남이 호문정(胡文)이고, 차남이 호문영(胡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