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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호설암)

누가 호설암을 도태시켰는가?

by 중은우시 2009. 9. 11.

글: 정만군(程萬軍)

 

"일홍취사(一紅就死)"

붉어지면 바로 죽는다.(붉어진다는 것은 인기를 얻는다는 뜻도 있음)

 

이것은 털게(蟹)법칙이다. 중국도대 상재(商才)의 도태법칙이기도 하다.

 

흑도와 백도를 아우러던 호설암(胡雪巖)은 중국상인의 우상이다. 후인들은 그가 권력과 돈을 한 손에 거머쥐고, 처첩을 무수히 거느리면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점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가 결국 누구에게 당해서 도태되었는지는 생각해 보았는가?

 

호설암의 극성(克星)은 또 다른 이익집단의 상대방인 성선회(盛宣懷)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조정이 받든 털게법칙의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만일 조정이 그를 보호했다면, 성선회는 말할 것도 없고, 당당한 이홍장이라 하더라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털게철학은 "상인을 기르지 않는 것"이다. 비록 기른다고 하더라도, 죽이기 위한 것이다. 털게가 붉어지면, 이제 삶아서 먹힐 때가 된 것이고, 생명이 끝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홍취사" 중국역사상의 '거상'들의 운명은 모두 유사했다. 지주통치집단에 의지하여 살아갔으므로, 전통거상들의 흥망성쇠는 왕왕 고위층 지주의 이익과 연관이 된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기보다는, "도철지야(饕餮之夜, 도철은 재물과 음식을 몹시 탐낸다는 전설상의 동물)"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적당하다. '도철'의 체제 및 철학하에서 지속발전가능한 자본가는 나타나기 힘들다. 황제가 모든 것을 가지고, 천하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고용주이기 때문이다.

 

중국역대의 봉건왕조에서 최고통치자는 농민이 아니면 목민(牧民)이었다. 기껏해야 지주였다. 근본적으로 경제학은 몰랐다. 그들의 본질은 소농(小農)이다. 소농은 토지를 가장 중시한다. 가장 멸시하는 것은 상업이다. 그들은 농업을 '본(本)' 상업을 '말(末)'이라고 불렀다.

 

이외에 생존철학의 각도에서 봉건왕조의 최고통치자는 모든 것을 강탈하는 도적이었다. "진나라이래로 제왕은 모두 도적이다"(<<잠서>> 당견의 말). 자기의 침대 옆에서 다른 사람이 달콤하게 잠자도록 놔둘 수가 없다. 도적의 본질은 강탈이다. 어찌 다른 사람이 강탈을 통하여 살찌는 것을 눈뜨고 용납하겠는가?

 

호설암의 운명은 시종 자신의 손에 달려있지 않았다. 그의 소위 '전설'은 그저 '권력에 빌붙은 것'일 뿐이고, 결국은 그 권력에 잡아먹힌 것일 뿐인 한편의 드라마이다.

 

호설암의 상재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통합능력'이었다. 그는 관료사회, 상인사회, 흑도세력의 각종세력을 통합했고, 대소관료, 조강방파(漕江幇派)와 한 무리가 되어 한때 한손으로 하늘과 통했다.

 

그러나, 그가 하늘과 통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부분의 하늘과 통했던가? 그 하늘의 비호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남정필기>>의 기록을 보면 그것을 엿볼 수 있다:

 

"호설암이 실패하자, 관료들은 돈을 인출하기 위하여 벌떼처럼 몰려왔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좌종당(左宗棠)이 도착했다. 그리고 장부를 친히 조사하며 물었다. 관리들은 '모두 우물쭈물하면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십여만에 이르는 사람이 겨우 1,2천만 인정하는 자도 있었다. 모두 돈의 내력에 대하여 엄히 추궁당할까봐 두러워했던 것이다. 문양(좌종당)도 장계취계로 붓을 들어 지워버렸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수백만의 예금이 삽십여만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원래, 호설암의 하늘은 좌종당이다. 당시 양강총독(兩江總督)의 자리에 있던 좌종당은 비록 위풍당당했지만, 가장 높은 하늘은 아니었다. 조정과 비교하자면, 그는 여전히 '졸개'였다. '두목'이 보호해주지 않는데, '졸개'가 어찌할 것인가?

 

호설암이 도산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湘, 호남, 증국번 좌종당등), 회(淮, 안휘, 이홍장)의 양파간 다툼의 결과인 것처럼 보인다. 호설암은 마치 이홍장이 "좌종당을 밀어내려면 먼저 호설암을 밀어내야 하고, 좌종당을 무너뜨리려면 호설암을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는 전략의 희생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호설암은 일찌감치 조정이 침을 흘리든 큰 털게였다.

 

비록 청나라말기에 통상이 대외개방되었지만, 최고통치자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지주이고, 그들은 '말업'은 탄압하는 태도이고, 일개 호설암이야 지방관리가 아무리 보호해준다고 하더라도, 무너뜨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서태후가 영을 내려 삭탈관직하고 가산몰수를 하며, 엄히 죄를 추궁한다. 청나라조정의 호설암에 대한 최종처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이 최대상인을 전혀 보호해주려 하지 않았다.

 

거상은 털게와 같다. 거상은 돼지와 같다. 모두 살찌게 기른 다음에 도살하는 것이다. 관상도 상인이다. 본질이 상인인 호설암은 이렇게 당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주로 봉건왕조의 통치철학에서 결정된 것이다. 도적대왕은 창조에는 능하지 않지만, 빼앗는데는 능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독점했고, 상인이 무한히 커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조정의 비호하에 성장한 경제동물은 필히 조정이 명절을 지내기 위하여 필요로 하면 잡게 되는 것이다. 도철의 체제하에서 호설암식의 성공은 한바퀴 또 한바퀴 정치와 사회 부패의 눈덩이를 굴리는 식이다. 결국은 증발될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고이래로 지주와 상인은 세불양립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제기반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봉건사회에서, 지주계급의 주요상대편은 농민계급이다. 지주계급과 농민계급의 모순이 주요모순이다. 이 두 계급간의 투쟁이 주요투쟁이다. 다만, 이 두 계급은 상호의존적이다. 이 두 계급은 모순통일체의 두 대립면이다. 농민계급은 지주계급의 대립면이지, 봉건사회의 기반을 파괴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는 농민계급은 새로운 생산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대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옛날의 생산관계를 바꿀 수가 없다. 옛날의 경제기초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성격도 바뀌지 않는다. 중국봉건사회에서 여러번의 농민의거가 있었고, 몇번은 성공적으로 당시의 황제를 몰아냈다. 그러나 결과는 그저 왕조가 바뀌는 변혁 뿐이었다. 중국사회의 성격이 바뀌지는 않았다. 봉건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넘어가지를 못했다.

 

<<수호전>>에서 가장 급진적인 인물은 흑선풍 이규이다. 그도 그저 동경으로 쳐들어가서, "조관가(조씨황제'를 무너뜨리고, "송공명형님(송강)"을 황제로 만들려는 것이 꿈이었다. 당연히 이것은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도 역사를 반영한다. 역사에서, 황소, 주원장, 이자성도 모두 이러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당시 농민들의 계급의식이 없어서도 아니고, 정치수준이 낮아서도 아니다. 그저 역사의 발전규율이 그러했던 것이다.

 

봉건사회의 파괴자중 하나는 상인이다. 봉건사회에서 그들은 계급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계급의 전신이다. 그들은 잠재적인 자본가이다. 자본계급이 지주계급을 대신하여 사회의 통치계급이 된다. 그러면 사회의 성격도 변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봉건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인 것이다.

 

상인은 국가경제기초를 변경시킬 수 있다. 상부구조를 전복시키고 강산을 바꿀 수 있다. 자고이래로, 중국의 경제기초는 소농경제였다. 그래서 황제는 지주가 아니면 농민이었다. 중국상인은 생존하려면, 그저 그들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국에는 표준적인 상인이 없다. 본질적으로 지주집안의 중개인일 뿐이다. '거상'이 되면 최고통치자 그 최대의 지주이자 유일한 고용자에 도적대왕인 그는 너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십사사에서의 '상재'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