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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86

스스로 노동자계급에 속한다고 확신하는가? 글: 인멸지성(湮滅之城) 아동절이 금방 지나갔는데, 한 영상이 온라인에 널리 퍼졌다: 허난(河南)의 어느 지방에서 한 대학생이 집안이 가난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해야 해서 공사장으로 가서 철근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날 같은 공사장의 동료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그들은 그를 속여서 철근 아래에서 작업하도록 시킨 것이다. 동료들은 그렇게 한 후에 떠나버였다. 결국 그 대학생은 철근 아래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대학생은 구출되었다. 그리고 그를 놀린 3명의 동료들은 각각 1,000위안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건 순전히 노동자의 장난이다. 단지 장난이 너무 심했다. 왜냐하면, 당사자를 잠재적인 큰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기 대문이다. 만일 아무도 거.. 2023. 6. 15.
"대만독립"을 누가 가장 먼저 주장했는가? 글: 안창해(顔昌海) 현재 중국대륙의 이데올로기지도에서 '대독(臺獨, 대만독립)'은 제1호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식의 자유주의가 종국적인 의미에서는 중국대륙의 최대위협이지만, 미국은 태평양 건너편에 있고, 국내외 민주운동인사들의 반항도 대륙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오직 일의대수(一衣帶水)의 대독은 중국대륙에서 '내정'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실제로 간섭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리하여 대만이 중국대륙에 끼치는 정치적 충격이 가장 크다. 대륙에서 공식적으로는 "대독"의 최초기원을 2차대전이후라고 한다. 1946년에 창간된 "대만잡지", 1947년에 성립된 "대만재해방연맹(臺灣再解放聯盟)"의 요문의(廖文毅)를 대표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독'은 1920년대말에 이미 등장했다. 그렇다면 중국.. 2023. 5. 24.
진독수(陳獨秀)는 왜 모스크바의 초청을 5번이나 거절했을까? 글: 왕우군(王友群) 중국공산당과 모스크바의 연원은 10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1년 당시의 러시아공산당(이후 소련공산당으로 명칭을 바꿈)이 장악하고 있던 코민테른(공산국제)은 러시아공산당의 이익을 위해, 대표를 상해로 파견하여 반드시 러시아공산당의 지시를 듣는 중국공산당을 성립시키고자 한다. 진독수는 중공의 초대 당수(黨魁)로 1921년 중공1대부터 1927년 중공5대까지, 진독수가 중공의 당수를 맡았다. 1927년에 이르러, 코민테른의 극동지부로서 중국공산당이 이끈 '대혁명'이 실패로 끝난다. 중공당수 진독수는 일거에 중시지적(衆矢之的)이 된다.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코민테른은 거듭하여 진독수에게 모스크바로 올 것을 요구하였지만, 진독수는 모두 거절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 2023. 4. 21.
<모택동선집(毛澤東選集)>의 저작권문제 글: 백매(白梅) 1995년 6월 중순, 중공중앙문헌연구실, 중공중앙당사연구실, 중공중앙당교는 중앙서기처와 공동으로 을 제출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의 1권 내지 4권의 160여편의 글 중에서, 모택동이 집필초안한 것은 단지 12편 뿐이며, 모택동의 수정을 거친 것이 모두 13편이고, 나머지 글들은 모조리 중공중앙의 다른 지도자, 혹은 중공중앙판공청 및 모택동의 비서등이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에 수록된 '저작'들은 대부분 중국공산당이 서로 다른 시기에 각종 서신, 전보, 문건, 그리고 지도자의 강연원고를 모아서 완성된 것으로, 원래 '해방구'에서 소책자로 인쇄되어 돌려보던 것이었다. 194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동북해방구'의 하르빈과 같은 도시에서는 이들 소책자를 묶어서 두꺼운 으로 편찬했다. 신.. 2023. 3. 28.
진독수(陳獨秀) vs 모택동(毛澤東): 중국공산당의 초기지도자 글: 오성수행(悟性隨行) 중국공산당 최초의 지도자는 진독수이다. 진독수의 특징은 학술사상분야에서 독립구신(獨立求新), 자신불기(自信不羈), 시야서리(視野犀利), 격정양일(激情洋溢)하며,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좋아하고, 또한 잘 말할 수 있었다. 이런 특징은 현대교육에 종사하거나 방향성과 기치성을 확립하는 인물로서는 더 이상 적합할 수 없다. 그래서 진독수가 중국공산당의 초대 지도자가 된 것은 아주 적합하다. 민주와 과학 덕선생(德先生, Democracy를 말함)과 새선생(賽先生, Science를 말함). 중국의 신문화운동은 모두 진독수가 극력 추진하여 중국의 넓은 대지 위에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스며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그의 한계성이다. 그는 멀리 보고 깊이 보지만, 현실은 도외시했다. 192.. 2023. 2. 1.
빈곤은 독재자의 낙원이다. 글: 홍박학(洪博學) 미국인들이 중공에 수십년간 기망을 당한 후, 상무부는 최근 미국투자자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중국기업이 미국에 가서 해외 IPO(상장)을 해서 돈을 조달하는데, 그중 90%는 사기이다. 이 말이 현재 아직까지 중국에 남아 있는 외국자본, 외국투자자에게 어느 정도 경고작용을 할 지는 알 수가 없다. 현재도 여전히 30%의 사람들이 떠날 수 없는 원인은 공장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고,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은 시진핑이 계획경제의 옛날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코로나사태가 끝난 후에는 세계공장으로서 여전히 기능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마도 모두 잊고 있는 것같다. 중공은 거짓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조폭집단이다. 정상국가가 아니다. 개혁개방후에 시장경제를 학습했지만, '자유'라.. 2022. 12. 9.
무엇이 "경외세력(境外勢力)"인가? 글: 노전(老錢) 공삼마규수(孔三媽叫獸, 규수는 敎授를 비하하는 말이며, 북경대학의 孔慶東을 가리킴)의 6.4천안문사태에 관한 TV인터뷰를 보았는데, 나는 정말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를 '공삼마'라고 비하해서 부르는 수밖에 없다. 며칠전에 그에 관한 뉴스가 올라왔다. 6.4를 지지하여 공경동(콩칭둥)의 웨이보가 폐쇄당했다는 것이다. 그가 강의때 학생들에게 6.4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아예 폭란(暴亂)은 없었다. 너희(중공)가 총을 쏘아서 인민민중을 유혈진압한 후에 죄를 거꾸로 뒤집어 씌운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하여 약간의 호감을 가졌다. 양심이 아직 남아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계속 그의 TV인터뷰를 보았다. 6월 5일, 내 기억에 한 글에서 본 것같은데, 다음 날은 그.. 2022. 7. 29.
중국공산당 건당(建黨)의 내막 글: 방주자(方舟子) 중국공산당이 상해에서 제1차전국대표대회("1대")를 개최한 것을 중국공산당 성립의 표지로 본다. "1대"는 7월 1일에 개최된 것이 아니다. 이 날짜가 공산당건립기념일로 정해진 것은 모택동이 임의로 지정한 것이다. 공산당이 성립된 초기에는 도망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에 매년 건당을 경축하지도 못했다. 1938년 공산당이 섬서북부에 근거지를 마련 하고, 안정되고난 후에 비로소 모택동은 매년 건당을 기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만, 모택동이 비록 1대 대표이고, 기록을 책임진 대표이기는 하지만, 자신도 "1대"를 도대체 언제 개최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연안에는 또 한명의 "1대"대표인 동필무가 있었다. 모택동은 동필무를 찾아가서 물어본다. 동필무도 구체적으로 어느 날에 개최했는지.. 2021. 12. 23.
중국의 당위서기(黨委書記)는 몇명이나 될까? 글: 간중국(看中國) 최근, 청두대학 당위서기 마오홍타오가 웨이신의 단체방에 절필신을 남기면서 교장 왕칭위안과의 권력투쟁압박을 고발한 후, 16일 경찰에 의해 익사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당위서기는 중국대학의 '1인자'이다. 지위는 교장보다 높다. 그런데, 교장이 당위서기와 싸워서 당위서기가 자사라게 만들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은 예상 밖으로 중공당이 사회에 빌붙어 존속하는 흑막까지 밝히게 된다. 중국은 얼마나 많은 중공의 당위서기를 먹여살리고 있었는지가 관심이 대상이 된 것이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중국에서 중국백성들은 각국에 모두 있는 정부관리를 먹여살릴 뿐아니아, 위로부터 아래까지의 당무인원도 먹여살리고 있다. 그리고 당은 정부보다 크고, 왕왕 문외한이 전문가를 지시하게.. 2020. 10. 21.
주중미국대사 브란스타드 돌연 사임의 내막 글: 이운(李韻) 시진핑의 친구이자 미국의 주중대사였던 브란스타드(Terry Branstad)가 돌연 사직을 선언했다. 그는 10월초 이임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임하게 된 내막에 대하여 여러 추측이 떠돌고 있다. 어떤 평론가는 브란스타드가 처음에 중국으로 간 것은 그와 시진핑의 관계를 활용하여 미중관계를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런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시진핑은 일찌감치 예전에 그가 알던 그 시진핑이 아니었다. 9월 14일, 미국 주중대사관은 성명을 발표하여 브란스타드가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에서 이 결정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10월초에 베이징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트위터에 브란스타드가 미중관계의 평형을 맞추어 이 관계를 대등, 호혜와 공.. 2020.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