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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대만독립"을 누가 가장 먼저 주장했는가?

by 중은우시 2023. 5. 24.

글: 안창해(顔昌海)

 

현재 중국대륙의 이데올로기지도에서 '대독(臺獨, 대만독립)'은 제1호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식의 자유주의가 종국적인 의미에서는 중국대륙의 최대위협이지만, 미국은 태평양 건너편에 있고, 국내외 민주운동인사들의 반항도 대륙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오직 일의대수(一衣帶水)의 대독은 중국대륙에서 '내정'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실제로 간섭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리하여 대만이 중국대륙에 끼치는 정치적 충격이 가장 크다.

 

대륙에서 공식적으로는 "대독"의 최초기원을 2차대전이후라고 한다. 1946년에 창간된 "대만잡지", 1947년에 성립된 "대만재해방연맹(臺灣再解放聯盟)"의 요문의(廖文毅)를 대표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독'은 1920년대말에 이미 등장했다. 그렇다면 중국대륙을 난감하게 만드는 '대독'은 도대체 누가 시작했을까? 바로 공산당 자신이다. 다만 그것은 당시에 대만공산당(臺灣共産黨)으로 불렸을 뿐이다. 이 명칭은 국공쌍방이 장기간 정치사전에서 사용하였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졌다. 1928년 4월 15일, 대만공산당은 상해의 프랑스조계 하비로(霞飛路)의 한 사진관의 2층에서 정식 성립되었다. 창당대회에서는 임목순(林木順)이 집필한 "정치대강"이 통과되는데, 대강의 중심(重心)은 '대만민족', '대만혁명'개념을 제출하는 것이며 결론으로 '대만공산당이 영도하는 혁명운동의 종국적 목표는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대만공산당은 '대만민족' '대만혁명' '대만독립'의 삼대주장을 기반으로 삼는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반항하고, 대만해방을 추구하는 정치사에서 대만공산당은 유일하게 '대만독립'을 구호로 내세운 정당이었다.

 

"대만독립"의 이론적 근원은 현대공산주의운동의 대부 레닌에게서 나왔다. 1차대전이후, 민족주의사조하에 미국대통령 윌슨이 우파에서, 소련의 지도자 레닌이 좌파에서 모두 민족자결을 극력 고취했다. 레닌은 일찌감치 시월혁명이전에 이미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의 이론구상이 있었고, 이후 더욱 명확하게 식민지사회에서 약소민족이 제국주의의 민족착취와 본국자산계급의 자산착취를 받고 있다고 하면서, 제국주의의 근본을 흔들기 위해서 반드시 식민지혁명을 일으켜야 하고, 동시에 계급과 민족의 이중혁명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의 최고지시는 당시 코민테른의 기본노선이 된다. 1927년, 코민테른은 일본공산당의 지도하에 대만공산당을 성립시키기로 결정한다. 당시 대만은 일본식민지이고, "일국일당"원칙으로 대만공산당은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았고, 대만공산당의 정식명칭은 "일본공산당대만민족지부"가 된다. 같은 해, 일본공산당은 코민테른의 "1927강령"을 받아들여 '식민지완전독립'주장을 지지한다. 위에서 언급한 임목순이 집필한 대만공산당의 '정치대강'은 먼저 일본공산당의 지도자인 와타나베 마사노스케(渡邊政之輔), 사노 마사부(佐野學)이 초안한 것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1928년 시월, 중국공산당측에서도 대만적당원으로 하여금 대만으로 돌아가 "중국공산당대만지부"를 건립하게 한다. 1931년, 옹택생(翁澤生)을 우두머리로 하는 중공이 영도하는 일파가 대만공산당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코민테른과 일본공산당을 따르는 사설홍(謝雪紅)을 제명해서 출당시킨다. 대만공산당의 새로운 당중앙은 급진적인 정치강력을 통과시키고, 동시에 반제반자(反帝反資)의 전면적인 '사회혁명'을 진행하기로 하며, 사회각계층과 연합하여 '식민지혁명'을 진행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이 대중국주의의 대만공산당 신중앙도 '대만민족" "대만독립"의 옛 주장들을 부정한 적이 없다. 사실상, 1928년에서 1943년 사이에 중국공산당도 코민테른의 노선을 준수했고, 한번도 '대만민족'의 독립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만공산당은 세력이 약하여, 잠시 반짝했을  뿐이지만, 대만공산당의 대만독립과 나중의 대만독립간에 직접적인 원류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를 불문하고, 어쨌든 대만공산당은 대만독립을 처음 주장한 정당이다.

 

레닌이 무정하고 효율있는 독재정당을 만들게 되면서, 20세기 전세계 공산주의운동의 모범사례가 된다. 모스크바는 자신들의 손으로 중국대륙에 처음으로 공산당을 만들고 결국 중국대륙에서 최종승리를 거두도록 했다. 음수사원(飮水思源)하자면, 레닌이 없었으면, 소련공산당이 없고, 소련공산당이 없었으면, 중국공산당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레닌주의는 부지불식간에 중국대륙에 역사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레닌은 사상체계에서 여전히 마르크스의 국제주의라는 원래 교의를 계승했고, 이로 인하여, '식민지혁명'이라는 개념을 형성시켰으며, 전세계의 모든 착취당하는 인민들이 각자 들고 일어나 독립을 추구하기를 희망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가 그쪽에 신경을 분산시켜, 공산주의의 고도인 소련에 가하는 압력을 완화시키고, 공산주의혁명이 전세계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도록 촉진하고자 했다. 정통의 공산주의이론에 따르면, 어쨌든 공산주의사회는 조만간 세계대동으로 국가는 소멸한다. 지금 여러 민족이 독립하고, 국가가 분열하고더라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대만독립'강령의 정치적 배경이자 사상적 근원이다. 다만, 레닌이 죽은 후, 진정 그의 국제본위의 공산주의노선을 계승한(계속혁명론) 트로츠키일파가 세력을 잃고, 민족본위 공산주의 노선을 추구하는(일국사회주의) 스탈란이 대권을 장악한다. 오랫동안 스탈린의 영도를 받은 중국공산당도 최종적으로 스탈린식의 민족공산주의로 바뀐다. 이렇게 하여, 중국공산주의의 현실은 레닌주의의 이상과는 반대로 가게 된 것이다.

 

지금 중국대륙을 괴롭히는 대만독립은 기실 중국공산당 자신의 동지들이 처음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