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의관(友誼關)의 역사와 현황
글: 소여자대인물(小女子大人物) 자종실관애(自從失關隘) 국탕무번리(國蕩無藩籬) - 유극장(劉克莊), 중화대지에 있어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관애(關隘)는 험요(險要)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중원을 침략하는 자들을 막는 외에 천하의 대문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긴 강물을 살펴보면, 이들 관애를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은 부지기수이고, 거기에는 강개비장, 음한매골의 이야기가 있으며 오랑캐를 멀리 쫒아낸 역사는 피를 들끓게 만든다. 관애, 성벽에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예전의 칼자국 도끼자국이 남아 있고, 불에 탄 흔적도 있어, 역사의 창상을 보여준다. 이들 관애중에서 특히 산해관(山海關), 안문관(雁門關), 가욕관(嘉峪關)등 9대관애가 가장 치명적이다. 거기에는 지금의 우의관도 포함된다. 그러나 "우의관"이라는..
2022. 5. 25.
왕력(王力): 모택동의 어용문인인 그는 왜 타도되었는가?
글: 왕우군(王友群) 1967년 8월 26일, 상하이를 순시하던 모택동은 당시 중공군대 대리총참모장을 맡고 있던 양성무(楊成武)에게 이렇게 말한다: "왕(王), 관(關), 척(戚)은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을 파괴하니 나쁜 자들이다. 네가 오직 (주은래)총리 한 사람에게만 보고해서 그들을 체포하도록 보고하여, 총리가 책임지고 처리하라고 해라." 왕은 왕력(王力), 관은 관봉(關鋒), 척은 척본우(戚本禹)이다. 당시 왕, 관, 척은 모두 중앙문혁소조의 구성원이고, 문혁초기 모택동과 모택동의 처이자 중앙문혁소조 부조장인 강청의 직접 영도하에 호풍환우하던 인물들이다. 다만, 모택동의 한 마디로 모택동의 3대 붓잡이 왕, 관, 척은 모두 타도되어 버린다. 왕력은 처음에 조어대 국빈관 2호루에 연금되었다. 그후, 북경 ..
2022.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