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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종당38

호설암(胡雪巖): 그저 황음한 졸부였다 글: 왕위(王偉) 호설암(1823-1885)의 이름은 광용(光鏞)이고 자가 설암이다. 안휘 적계(績溪)사람이며 호경여당(胡慶餘堂)의 창시자이다. 그는 빈한한 출신으로 장사에 재능이 있었고, 처세술에 능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일대의 거상으로 불리웠다. 서태후는 그에게 황마괘(黃馬褂)를 내리고 “포정사.. 2010. 12. 24.
이홍장은 왜 무능한 자들을 총사령관에 앉혔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고대 중국의 당파싸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기편'만 따지지 '재능'은 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패의 극을 달린 청나라말기에는 이것이 더욱 두드러졌다. 북양수군의 전멸 내지 청일전쟁의 완패는 모두 당쟁과 관련이 있다. 청나라말기에 가장 두드러진 당쟁은 상회(湘淮) 당쟁.. 2010. 2. 11.
누가 호설암을 도태시켰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일홍취사(一紅就死)" 붉어지면 바로 죽는다.(붉어진다는 것은 인기를 얻는다는 뜻도 있음) 이것은 털게(螃蟹)법칙이다. 중국도대 상재(商才)의 도태법칙이기도 하다. 흑도와 백도를 아우러던 호설암(胡雪巖)은 중국상인의 우상이다. 후인들은 그가 권력과 돈을 한 손에 거머쥐고, .. 2009. 9. 11.
왜 이홍장을 명예회복시켜야 하는가? 글: 성시전기(城市傳奇) 청말의 일대중신으로서, 이홍장은 19세기하반기의 중국역사무대에서 시종일관 고금 중외 조야 만한의 각종 모순의 소용돌이중심에 있었다. 그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 배회하던 사람이다. 오늘 우리가 되돌아보면, 이홍장의 이상, 이념은 그와 동시대의 사람들보다.. 2008. 10. 10.
청나라 최고부자 호설암(胡雪巖)의 파산 글: 오효파(吳曉波) 상업역사상 첫번째 중외대전(中外大戰)이 1884년에 발생한다. 중국측 주인공은 당시 최고부자인 호설암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파산이었다. 호설암은 생전에 이미 전설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좌종당(左宗棠)의 군수물자운송으로 돈을 모았다. 20년이라는 .. 2008. 9. 5.
청나라 해군사령부의 탄생비화 글: 뇌이(雷頤) "선견포리(船堅砲利, 선박은 튼튼하고 대포는 날카롭다)" 이것은 근대중국인들이 서방열강에 대한 최초의 인상이다. 그러나, 청나라정부가 근대해군을 만드는 과정은 파란만장했고, 순조롭지 못했다. 제1차아편전쟁에서 직접 영국침략군과 교전한 임칙서는 근대해군의 위.. 2008. 7. 2.
증국번(曾國藩)은 왜 황제에 오르지 않았는가?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난 후, 증국번은 호남에서 상군(湘軍, 상은 호남성을 의미함)을 조직하였고, 상군은 운세를 타고 급속히 세를 불려갔고, 청나라정부가 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군대가 되었다. 증국번도 당시 중국에서 가장 실력있는 인물로 등장했으며,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는 주목을 받았다... 2006. 11. 8.
줘종탕(좌종당, 左宗棠)의 글씨 2006.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