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련해(紀連海)
중국역사상 소인물들이 대인물의 배후에서 밀어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양발(梁發)과 임칙서, 홍수전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대인물이 또 다른 대인물의 배후에서 밀어준 경우도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얘기할 내용이다: 좌종당은 누가 키워주었을까?
1812년 11월 10일, 호남성 상음현 계두포진 신광촌에서 태어난 좌종당은 어려서부터 집안에 연이어 불행이 닥쳤다: 열살 때 조부모, 부모와 형을 잃어 집안에는 그와 둘째형 2 명만 남게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비록 힘든 생활도 좌종당을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이때의 좌종당은 여전히 공부에 뜻을 두고 열심히 글을 읽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이 누구 덕분이었을까? 책을 사는 돈은 어디서 났을까? 스스로 돈을 모아서 샀을까? 도대체 책사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되었을까?
여기까지 얘기했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좌종당이 나중에 그렇게 유명하게 되었으니, 그는 분명히 고인(高人)을 만났을 것이다. 누군가 그를 발탁해주지 않았다면, 좌종당은 아마도 홍수전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고 있다. 홍수전과 좌종당의 이후 운명은 전혀 달라졌다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좌종당이 홍수전과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은 분명 좌종당의 배후에서 누군가 고인이 그를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문제는 좌종당의 배후에 있는 고인이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것이다.
좌종당 배후의 제일고인은 하씨형제 즉 하장령과 하희령(賀熙齡)이다.
1930년 겨울, 한 우연한 기회에, 좌종당은 모친상을 당해 고향 장사로 돌아온 강소포정사(江蘇布政使) 하장령을 만난다. 이 하장령은 어떤 인물일까? 좌종당은 왜 그를 만나러 가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1785년에 출생한 하장령의 조적은 강소 회계인데, 그는 호남 선화(지금의 장사현)에 적을 두었다. 1808년, 하장령은 진사에 합격하고, 나중에 남창지부, 산동, 광서, 강소, 복건안찰서,포정사, 귀주순무, 운귀총독 겸 운남순무등의 관직을 지낸다.
관직에 40년간 있던 하장령은 청나라중기의 저명한 무실파관리이며 경세치용학자이다. 일찌기 같은 호남사람인 강소순무 도주(陶澍)와 함께 당시의 폐혜에 대하여 대거 혁신을 진행하고, 같은 호남사림인 위원(魏源)과 함께 청나라 개국때부터 도광초기까지 사회현실문제와 경시치용에 관한 논문을 골라서 편집하여 <황조경세문편> 120권을 편찬한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우리는 좌종당이 왜 하장령을 만나러 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의 연령은 차이가 크지만, 그들의 마음은 같았다. 그들은 모두 경세치용을 주장하는 무실파(務實派)이다.
좌종당은 일찌기 하장령의 대명을 들었다. 하장령의 학문, 업적과 사람됨을 아주 존경했다. 그래서 하장령이 모친상으로 고항에 돌아와 있다는 말을 듣자 그를 찾아간 것이다.
하장령은 18살의 청년 좌종당을 맞이해서 전혀 그를 멸시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즉시 "국사로 대우해주었다(以國士見待)". 이때의 좌종당은 그저 나이 겨우 18세된 생원자격조차 아직 취득하지 못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하장령은 일찌감치 진사출신에 관직이 강소포정사에 이른 고관이었다. 좌종당이 이렇게 높이 대우받은 것은 그의 경세치용학문의 수준이 이미 하장령이 인정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장령은 이 "독서를 아주 좋아하고, 가난하여 책을 살 돈조차 없는" 청년을 보고는 즉시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나의 서재가 바로 너의 서재이다. 책을 빌리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라. 나는 집에 1년은 머물테니, 내가 직접 너에게 꺼내주겠다."
그후 좌종당은 정말로 하장령의 집을 자주 찾아간다. 책을 한아름 빌려서 돌아간다. 다 본 다음에는 다시 되돌려준다. 당연히 돌려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좌종당이 책을 다 읽고나면, 하장령이 그 책의 내용을 이리저리 묻는다: "이책은 어떠냐. 보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나중에 하장령은 좌종당이 자신에게 빌려간 책들을 모조리 읽어서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고,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다음번 책을 빌려주었다.
이렇게 1년이 흘렀다. 이 1년동안, 좌종당는 "매번 서책을 빌리러 가면, 하장령이 친히 누각을 올라가서 책을 꺼내왔고, 여러번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전혀 귀찮아 하지 않았다." 좌종당은 자주 하장령이 "책을 읽고 얻은 점을 물어보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데, 조그만치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하장령이 '말학을 이끌어주면서 성의있게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고는 좌종당이 크게 감동받는다. 하장령은 자주 좌종당을 격려해주며 말했다: "현재 중국은 막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는 절대로 가난하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일자리를 구하지 말라. 자신의 평생사업을 망쳐서는 안된다. 너는 중국에서 아주 필요한 인재이다. 장래에 앞날을 힘들 것이다. 어떠한 상황하에서라도 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너는 국가의 동량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장래 너의 재주는 반드시 나보다 낫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좌종당이라면 이런 말을 듣고 가슴이 뛰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라 역사상 모든 관리들이 하장령처럼 해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오히려 그 반대로 한 사람은 많다. 예를 들어, 이홍장은 강유위와 손중산에 대하여 냉소하고 조롱했다. 결국, 강유위는 무술변법때 자신이 싫어하던 팔고취사의 과거제도를 폐지시켜 버리고, 손중산은 아예 신해혁명을 일으켜 대청왕조를 무너뜨린다. 이것이 바로 운명의 전기이다.
만일 우리가 현재 생각할 때, 좌종당이 하장령을 만나러 갔을 때, 하장령이 "누구냐? 어디서 온 자인가? 당장 꺼져라."라고 했다면, 좌종당은 대청왕조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품게 되었을까? 다만 이런 현상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난 것은 바로 하장령이 좌종당을 격려해준 것이었다. 당연히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후에 좌종당을 격려해준다. 바로 그들 때문에, 나중에 좌종당이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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