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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량29

왕정위(汪精衛)는 매국노인가? 글: 양각목염자(楊康穆念慈) 어떤 사람은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인구, 자원, 공업생산능력에서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미국에 전쟁을 건 것은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짓이라고 본다. 그런, 그런 생각은 일면적이고, '사후제갈량'이다. 전쟁의 승리는 단순히 '물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2013. 6. 10.
장작림(張作霖)의 신세내력 글: 풍학영 장작림(張作霖)의 신세내력은 근대사에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장작림 신변의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하여 정리해봤다. 장작림에 대하여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참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장작림의 부친은 이름이 장유재(張有財)이다. 장유.. 2013. 6. 10.
중국의 성씨(姓氏) 글: 여이위(余以爲) '전국공민신분정보시스템"의 도움으로 어떤 사람이 중국공민의 이름에 대하여 통계를 내본 적이 있다. 그는 지역적인 특색에 주목했다. 북방도시에는 왕(王)씨성이 가장 많고, 상해에는 장(張)씨성이 가장 많으며, 광주에는 진(陳)씨가 가장 많았고, 서녕에는 마(馬)씨.. 2012. 3. 27.
소미낭(蕭美娘): 수양제의 황후 글: 장계합(張繼合) 어렸을 때 평서(評書)를 들을 때, 단전방(單田芳)의 <수당연의(隋唐演義)>에 푹 빠졌다. 와강채(瓦崗寨)의 초망영웅(草莽英雄)들은 황음하고 포악한 수양제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수양제는 의관금수(衣冠禽獸), "육단지군(六短之君)"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 2012. 2. 19.
민국사공자(民國四公子)는 누구인가? 글: 법제일보 민국사공자에 관하여 여러가지 서로 다른 버전에 전해져 내려온다. 4공자중 하나로 불리던 장백구(張伯駒)는 <<속홍헌기사시보주>>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근대사공자는 첫째가 한운(寒雲, 袁克文을 가리킴)이고, 둘째가 나이며, 셋째가 장학량(張學良)이며, .. 2010. 11. 7.
장학량의 대만에서의 유폐생활 글: 이청(李菁). <<삼련생활주간>>2007년 제13기. 장학량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된 것은 1970년대였다. "그 때 그에 대한 감시감독도 천천히 풀어졌고, 만나보도록 허용한 사람도 많아졌다. 학백촌(&#37085;伯村)등의 일부 노인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자주 함게 모였고, 서로 초청하고, 만나는 일이 .. 2007. 4. 6.
조사소저(趙四小姐)와 장학량(張學良) 출처: 삼진도시보(三秦都市報) 장학량 장군의 홍안지기(紅顔知己)인 조사소저는 일생동안 여러개의 아름다운 이름들을 사용했었다. 조사소저의 조적(祖籍)은 절강성 난계시의 영동향 동원촌이다. 그녀는 1912년 홍콩에서 태어났는데, 이로 인하여 "조향생(趙香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가 태어날.. 2007. 1. 18.
서안사변: 장학량은 왜 장개석을 남경으로 모시고 갔는가? 작자: 초술굉(焦述宏) =================== 서안사변은 1936년 12월 12일 장학량(張學良)과 양호성(楊虎城)이 "병간(兵諫, 무력을 동원해서 간언하는 것)"을 일으켜 장개석을 감금한 날로부터 12월 24일 장학량이 장개석을 모시고 남경으로 간 때까지의 기간이다. 기본적으로 시간은 약 반달이며, 최종적으로 평.. 2006. 8. 20.
장작림(張作霖), 장학량(張學良)의 가족 1. 장작림의 부인. 첫째부인 조(趙)씨. 장녀 관영(冠英), 장남 학량(學良), 차남 학명(學銘)을 낳았으며, 일찌기 사망했다. 둘째부인 노(盧)씨. 차녀 회영(懷英), 사녀 회경(懷卿)을 낳았다. 1974년 5월 천진에서 사망. 셋째부인 헌(憲)씨. 서로 감정이 맞지 않아 결혼후 얼마되지 않되어 집을 떠나 불문에 들어갔다. 넷째부인 허(許)씨. 삼자 학증(學曾), 사자 학사(學思), 삼녀 회동(懷瞳), 오녀 회희(懷曦)를 낳았다. 칠칠사변후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해방후에 중국으로 돌아왔다. 1976년 북경에서 사망. 다섯째 부인 수(壽)씨. 오자 학삼(學森), 육자 학준(學俊), 칠자 학영(學英), 팔자 학전(學銓)을 낳음. 여러 부인중 가장 총애를 받음. 능력있고, 총명하며, 학식이 있었음. 집안의 .. 2006.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