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작림의 부인.
첫째부인 조(趙)씨. 장녀 관영(冠英), 장남 학량(學良), 차남 학명(學銘)을 낳았으며, 일찌기 사망했다.
둘째부인 노(盧)씨. 차녀 회영(懷英), 사녀 회경(懷卿)을 낳았다. 1974년 5월 천진에서 사망.
셋째부인 헌(憲)씨. 서로 감정이 맞지 않아 결혼후 얼마되지 않되어 집을 떠나 불문에 들어갔다.
넷째부인 허(許)씨. 삼자 학증(學曾), 사자 학사(學思), 삼녀 회동(懷瞳), 오녀 회희(懷曦)를 낳았다. 칠칠사변후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해방후에 중국으로 돌아왔다. 1976년 북경에서 사망.
다섯째 부인 수(壽)씨. 오자 학삼(學森), 육자 학준(學俊), 칠자 학영(學英), 팔자 학전(學銓)을 낳음. 여러 부인중 가장 총애를 받음. 능력있고, 총명하며, 학식이 있었음. 집안의 대소사를 수부인이 처리함. 오랫동안 장학량의 곁에 있었고, 장학량이 사망할 때까지 같이 있었음. 9.18사변후 천진으로 옮기고, 1948년 천진을 떠나 상해로 갔다가 대만으로 감. 1966년 대만에서 사망.
여섯째 부인 왕(王)씨. 자식도 없고, 총애도 받지 못함.
여섯째 부인 마(馬)씨(왕씨 사망후 여섯째부인자리를 이어받음). 원래 수부인 신변의 시녀였음. 육녀 회민(懷民)을 낳음. 평생 수부인 곁을 지켰으며 1948년 대만으로 가고, 1975년 대만에서 사암.
2. 장작림의 딸
장녀. 관영. 마마에 걸려 얼굴에 얽은 자국이 있었음. 길림독군 포귀경의 아들 포육재의 처가 됨. 해방전에 북경으로 옮겼으며 1954년에 사망했다. 2남3녀를 낳았다.
차녀. 회영. 부친인 장작림이 몽고의 다얼한왕의 아들에게 처로 보냄. 남편이 선천적으로 모자라서 생활할 수가 없었음. 결혼후 얼마되지 않아, 다시 장작림의 집으로 와서 거주하고, 장작림이 사망한 후에 이혼함. 이후 진우도에게 시집가서 상해에서 삼. 해방후 천진으로 옮겨왔으나, 자식없이 혼자 삼. 동생인 회경과 같이 살다가 1989년에 병으로 사망.
삼녀. 회동. 조이손(서도독군)의 아들 조천사에게 시집감. 부부간의 금실이 좋았고, 77사변후 미국으로 옮겨감.
사녀. 회경. 장작림에 의하여 장훈(민국초에 복벽을 벌였던 독군)의 아들인 장몽조에게 시집보냄. 장몽조가 정신병을 앓아서 9.18이후 법에 따라 이혼함. 이후 천진으로 옮겼으며, 현재 천진정협위원임.
오녀. 회희. 부친이 근운붕(북양군벌의 총리역임)의 아들에게 정혼시킴. 결혼하지 못함. 장작림사후에 퇴혼함. 77사변후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갔으며, 현재 워싱턴에서 일함.
육녀. 회민. 1947년 북경보인대학졸업. 적문선(전 요녕성성장)의 손자 적원곤과 결혼. 1948년 모친을 따라 대만으로 가서 현재에 이름. 모 대학 가정과 교수.
3. 아들
장남. 학량. 서안사변을 일으킴
차남. 학명. 요부인과의 사이에 딸 1명을 둠. 이름은 여아(閭娥). 장학명출국후 모녀는 천진에 거주.
여아는 천진제2중심의원에서 근무(도서관관리원). 현재 퇴직. 남편 하병환은 천진의료기계공사의 엔지니어이며, 2남2녀를 둠.
학명은 후에 북양군벌 내정부장 주계금의 육녀인 주락균과 결혼. 함께 서구와 미국을 유람. 태평양전쟁이후 학명은 홍콩에서 붙잡혀 귀국당함. 북경에 거주하며 두 아들을 낳음. 장자 윤중은 홍콩에서 사업. 차남 붕거는 천진시정부 공정국에서 근무.
삼남. 학증. 일찌기 영국유학. 2차세계대전후 미국으로 감. 유엔에서 근무. 2남1녀를 둠. 장남 여황은 화학 전공 현재 미국석유연구발전공사 연구원, 차남은 미술을 공부.
사남. 학사. 성격이 솔직하고 정의감이 있음. 일찌기 동북군에서 근무. 국민당에서 있다가 몇번의 곡절을 거치면서 공산당의 혁명에 가담. 해방후 요녕성장을 역임. 해군에서 근무하며 소장까지 진급함. 문화대혁명때 해를 당해서 사암. 처는 사설평으로 연안에서 만나 결혼함. 2남 4녀를 둠. 아들은 선의, 중군, 딸은 효효, 소소, 낙연, 자경.
오남. 학삼. 미국에서 비행기조종을 배움. 광복후 천진경비사령부에서 소령으로 근무. 1948년 대만으로 감. 후에 하와이 등지로 감. 딸 둘을 둠. 여형은 홍콩에서 사업. 방방은 대만에 거주.
육남. 학준. 광복후에 국민당 군계통에서 근무. 1948년 대만으로 감.
칠남. 학영. 일생동안 직업없이 지냄. 1948년 대만으로 갔다가 홍콩으로 감. 1983년 대만에서 사망. 자녀없음.
팔남. 학전. 1943년 동북해방구에 감. 영구세무국에서 근무. 천진해방후 퇴직하고 천진으로 감. 1960년에 주은래 총리의 배려로 55중에서 교사를 함. 퇴직후 구정협위원을 지냄. 아내 마온란과의 사이에 딸 한 명을 둠. 딸의 이름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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