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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초기)

장작림(張作霖)의 신세내력

by 중은우시 2013. 6. 10.

글: 풍학영

 

장작림(張作霖)의 신세내력은 근대사에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장작림 신변의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하여 정리해봤다. 장작림에 대하여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참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장작림의 부친은 이름이 장유재(張有財)이다. 장유재는 도박장을 열어서 운영했다. 하루는 장씨집안의 개가 장유재의 부인(즉, 장작림의 모친)의 끌고 바깥으로 달려갔다. 계속 달려가서 숲 속까지 갔는데, 거기에는 장유재의 시신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장유재는 왕씨성의 도박꾼에게 죽었다. 원인은 그 도박꾼이 장유재의 도박장에서 돈을 잃었는데, 장유재는 그에게 네 마누라로 갚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장유재를 죽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작림 부친에 관한 이 자료는 <길림문사자료선집> 제4집 <장작림청년시대기략>의 조흥덕의 회고이다(주: 조흥덕은 장학량의 사촌형이다)

 

장작림이 어렸을 때, 원래 글을 읽었다. 만일 글을 계속 읽었더라면 아마도 인생의 길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천생 글읽을 사람은 아니었다.

 

장작림이 12살때, 집안에 돈이 없어 더 이상 공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에게 부탁하여, 사숙(서당)선생과 한가지 방안에 합의한다: 장작림이 사숙선생의 밥을 해주고, 이를 보수로 하여 장작림은 무료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사숙선생이 어린 장작림을 혼내게 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장작림은 사숙선생을 두들겨팬다. 선생을 때라고 나자, 장작림은 이곳에서 더 이상 공부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밥을 먹을 수 있다. 글은 내가 읽지 않겠다."

 

사람을 때린 것뿐아니라, 다음 날, 장작림은 사숙으로 돌아와서, 다른 학생들이 공부하러 가는 것을 막았다. 사숙의 교학질서를 완전히 교란시켜 버린 것이다.

 

어린 나이의 장작림은 이렇게 패기를 드러냈다. 그는 효웅이 될 자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장작림이 사숙에 들어가고 퇴학한 이야기도 역시 <길림문사자료선집> 제4집 조흥덕 <장작림청년시대기략>에 나온다.

 

장작림이 16.7세가 되었을 때, 요녕 해성의 "두가점"이라는 여관에서 일을 한다. 그의 업무는 여관에 투숙하는 사람들에 봉사하고, 투숙객을 위하여 말등의 물을 먹이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호텔의 벨보이인 셈이다.

 

한번은 장작림이 도박빚을 지게 된다. 그러자 그는 딴 생각을 해서 손님의 나귀 한 마리를 훔쳐서 팔아버리게 된다. 얼마후 장작림은 고발당한다. "두가점"의 사장은 즉시 사람을 시켜 장작림을 거의 기절할 정도로 두들겨 팬다. 그후 장작림을 갈대밭에 버려버린다.

 

장작림은 요행히 죽지 않았다. 깨어난 후, 비적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유명한 호비(胡匪) 두립산(杜立山)에게 투신한다.

 

장작림이 비적 두립산에게 의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청정부의 비적소탕작전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관청에 체포된다. 그때의 장작림은 겨우 17,8세였다. 키고 왜소하고, 아무도 그가 누구를 죽이거나 하지 않았다고 말하여, 관리는 그를 곤장몇대 치고는 풀어주었다.

 

장작림은 풀려난 후, 회개하지 않고, 다시 무리를 끌어모으고, 다시 장경혜(張景惠)의 무리와 합쳐서 점차 세력을 키운다.

 

장작림이 사회하층청년으로 비적이 되는 과정의 사료는 <길림문사자료선집> 제4집 조용성의 <장작림의 기가>에 나온다.

 

다시 그 이후, 1900년, 북방에서 의화단의 난이 일어나고, 제정러시아는 이를 핑계로 동북의 전지역을 점령한다. 이는 장작림에게 세력을 키울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 때, 동북의 전지역이 제정러시아에 점령된 후, 청정부의 각 지방정부는 문을 닫아버린다. 동북대지는 무정부의 진공상태에 놓인다. 장작림은 토비로서, 이때 더욱 크고 더욱 정정당당한 일거리를 찾는다. 그것은 바로 각 마을로부터 보호비를 거두는 것이다. 각 마을이 토비의 약탈을 당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장작림은 기회를 보아 '토비'에서 '보안'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대형보안회사의 오너가 되었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장작림의 무장역량은 청나라정부에 의하여 거두어진다. 그 본인은 청나라군대의 지방장군이 된다.

 

장작림이 토비에서 보안으로 변신하고, 다시 청나라군대로 들어간 이야기는 당덕강의 <장학량구술역사>에서 볼 수 있다. 장학량의 구술회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