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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16

왕윤(王允)은 어떤 인물인가? 글: 시습사사(時拾史事) 동탁의 난정(亂政)으로 거의 국가가 무너질 뻔했다. 초평3년(192년) 사월 이십삼일, 사도 왕윤은 여포(呂布), 사손서(士孫瑞) 등과 공모하여 동탁(董卓)을 죽이고, 한왕조의 정권을 빼앗아 오고, 왕윤이 조정을 주재하기 시작한다. 동탁이 죽자 동한의 각 세력은 서로.. 2016. 1. 10.
하태후(何太后)의 수학문제 글: 조염(趙炎) 삼국난세의 원인에 관하여 후세인들은 대부분 한영제의 "폐사입목(廢史立牧, 자사를 없애고 주목을 둔 것)"과 동탁(董卓)의 시대를 역행한 조치에서 찾는다. 기실, 전자는 황건적의 난때부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태상 유언(劉焉)이 한 말처럼 "사방에서 반란이 .. 2015. 11. 2.
여포는 기실 선량한 사람이다. 글: 이치아(李治亞) 후세인들이 삼국연의를 읽으면 여포에 대하여 욕을 해 마지 않는다. 무슨 반복무상(反復無常)이라고 말한다든지, 장비가 말하는 것처럼 '삼성가노(三姓家奴)이며, 가장 신의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기실 다른 사람이 삼국연의를 볼 때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예를 .. 2015. 2. 10.
십상시(十常侍)의 수수께끼. 글: 우후양광(雨後陽光) <삼국연의> 제1회의 첫페이지에 소위 "십상시"가 등장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당시에 환관 조절(曹節)등이 권력을 농단해서, 두무(竇武), 진번(陳蕃)이 그들을 주살하려고 모의했다. 그러나, 기밀이 누설되어 오히려 피살을 당한다. 환관들은 이때부터 더욱 .. 2015. 1. 15.
한소제(漢少帝): 환관묘에 묻힌 유일한 황제 글: 문재봉(文裁縫) 고대인들은 사후의 묘를 쓰는 것을 아주 중시하였다. 백성의 집안들도 그러했으니, 황실귀족은 더욱 그러했다. 이치대로라면, 황제의 묘는 설사 금벽휘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신경써야 할 것이다. 다만, 한소제가 죽은 후, 그저 아무렇게나 환관의 묘에 묻어버린다.. 2014. 12. 15.
황건적의 난 이후의 5년 (3): 흔들리는 한영제와 떠오르는 영웅들 한영제는 역사적으로 혼군(昏君)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점에 관하여 얘기한 사람은 너무 많다. 동탁마저도 한 마디를 했다: "매번 한영제를 생각하면, 분독(憤毒)하게 된다"(<후한서.원소열전>)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 한영제에 대하여 개관논정(蓋棺論定)한 사람으로 가장 뛰어.. 2014.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