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염(趙炎)
삼국난세의 원인에 관하여 후세인들은 대부분 한영제의 "폐사입목(廢史立牧, 자사를 없애고 주목을 둔 것)"과 동탁(董卓)의 시대를 역행한 조치에서 찾는다. 기실, 전자는 황건적의 난때부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태상 유언(劉焉)이 한 말처럼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나는데, 자사(刺史)는 위엄이 약하여, 막을 수도 없고, 게다가 사람도 잘 못써서 이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권력을 아래로 위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했다. 중앙정부가 충분히 강대했더라면, 주목(州牧)도 위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동탁의 화라는 것은 바로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 근원을 따져 올라가보면 결국 한 여인에 대하여 얘기해야 한다.
광화3년(180년), 한영제의 후궁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다. 누구인가? 바로 도가녀(屠家女) 하씨(何氏)이다.
하씨는 확실히 강한 역할이다. <후한서>에는 그녀에 대하여, "성격이 강하여 후궁이 벌벌 떨었다." 성격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동사라 하더라도 결국은 종이호랑이이다. 그러나 하씨의 강한 점은 주로 그녀의 수완에 있다. 예를 들어, 왕미인이 황자 유협(劉協)을 낳자, 그녀를 즉시 독살해 버린다. 나중에 한영제가 이 일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그녀를 어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시어머니 동씨와의 싸움에서도 거의 완승을 거둔다. 폐장입유(廢長立幼)하려는 동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한영제가 죽은 후, "동태후는 매번 정치에 간여하고자 했지만, 하태후가 이를 막았다." 결국, 동씨는 '우울증과 두려움에 급사하고 만다" 놀라서 죽었을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야사의 기록에 따르면 하태후의 오빠인 하진이 독을 써서 죽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가능성이 크다.
아이큐도 일류이고, 수완도 독랄하다. 하씨가 임조칭제하며 아들을 도와서 강산을 통치하면, 순조롭게 되어야 할텐데, 어쩌다가 동탁이 이익을 취하게 되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수학문제에 부닥친 것이다.
189년, 환관 건석(蹇碩)이 하진을 죽이려다가 미수에 그친다. 이 일은 하진이 환관을 주살하려는 도화선이 된다. "하진은 원래 환관이 천하의 골치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게다가 건석이 자신을 죽이고 조정의 권력을 차지하려 하자, 음모를 써서 그를 주살한다." 원소, 왕윤, 진림등의 문무대신들의 지지를 받아, 그는 나침내 계책을 세우고, 여동생 하태후에게 지시를 요청한다.
이 문제는 원래 별로 복잡할 것이 없다. 환관의 해악은 조야에서 모두 컨센서스가 있었다. 그들을 없애는 것이 천하를 정돈하고, 인심을 수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태후는 그저 "가(可)"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었다. 나머지 일은 사례교위에게 맡겨서 처리하게 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삼대세력중 하나인 환관세력이 없어지게 된다. 외척의 수뇌인 하진은 사대부들과 관계가 양호했다. 이 양대세력은 정치적으로 대립하다가 효과적으로 협력하게 되고, 동한왕조는 질서있게 통치할 수 있는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하태후는 동의하지 않았다. "환관은 황궁의 일을 통할한다. 자고이래로 있었고, 한나라의 옛 법도이므로 없앨 수 없다. 하물며 선제가 금방 죽었는데, 내가 어찌 사인(士人)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표면적으로 보면, 하태후가 내세운 공식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조종가법은 지켜야 하고, 선제는 환관을 후하게 대해주었고, 미망인으로서 그 뜻은 지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환관을 없애버리면 가족이익과 그 관계망에 손해가 올 것이라는 것이다. 먼저, 중상시 곽승은 하태후에게 큰 은혜를 베푼 바 있다. 예전에 왕미인을 독살할 때 만일 곽승이 조충등 환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하씨의 황후자리는 보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외에 곽승은 하진을 도와준 적이 있다; 다음으로, 하씨의 여동생은 장양(張讓)의 아들에게 시집갔고, 모친 무양군, 남동생 하묘(何苗)등도 환관과 관계가 있다. 만일 환관을 없앤다면 그녀는 조상, 남편, 모친, 남동생, 여동생에게 미안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그러다보니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모친이 그녀에게 "대장군이 좌우심복을 함부로 죽이고 권력을 독단하고 황상을 약화시키려한다"고 하자 그 말을 굳게 믿는다.
다만 상식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수학문제를 만났을 때, 공식을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고와 방향이 정확해야 한다. 소위 제목은 사고의 기점이다. 과정은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통과할 수밖에 없는 화염산이다. 하태후의 사고와 방향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다툼이 아직 백열화되지 않았을 때 집단을 애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집단을 보호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절충하고 협상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결과는 남원북철(南轅北轍)이 된다. 오누이간에 상의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불러서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나누게 되면 누구는 죽여야 하고, 누구는 죽이지 말아야 하는지를 따져서 구분해서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아마도 하진이나 그의 부하들도 감히 반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은 하진이 우유부단했고, 박력이 없었다고 책임을 묻는다. 더더구나 지방장군을 부른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그의 고충을 이해해주겠는가?
동한이백년동안 태후의 강세는 공전절후이다. 사서에서는 모두 "본기체"로 적었다. 임조칭제는 형식에 그친 것만이 나이라, 태후가 조서로 허가해주지 않으면, 하진도 황궁을 자유롭게 드나들 권력이 없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소위 병정(秉政)은 대체로 군사를 움직이는 것만이 남는다. 직접 궁중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이건 불가능이다. 그래서 그는 외부의 도움을 구한 것이다. 이는 겁을 주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후한서>에는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한 무리의 환관이 하진의 집을 찾아가서 사죄할 때 그는 말한다: "천하가 흉흉한 것은 바로 그대들을 걱정하기 때문이다.이제 동탁이 오는데, 그대들은 왜 빨리 각자 자신의 봉지로 돌아가지 않는가?" 당시 환관두령은 모두 후작(侯爵)을 받고 있었다. 하진은 그들이 겁먹고 경성을 떠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태후는 수학문제를 접했고, 해답을 잘못 풀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심각했다.
이어서 하진이 피살당하고, 외척세력은 끝장난다. 원소등이 그 기회를 틈타서 권력을 잡고, 환관세력도 끝장난다. 동탁은 빈틈을 노리고 병력을 낙양으로 끌고와서 유변을 폐하고 유협(한헌제)을 황제에 올린다. 하태후는 '역부고지례(逆婦姑之禮), 무효순지절(無孝順之節)"이라는 죄명을 씌워 영안궁으로 옮겨가게 한 다음 '시이붕(弑而崩)'한다. 아무런 존엄도 없이 죽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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